대빙하의 생존자
Time of the Great Freeze

로버트 실버베르그 Robert Silverberg 지음

머 리 말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착륙했다가 지구로 돌아온 지금, 인류가 화성에 또는 금성에 우주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은 결코 꿈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계가 발달하고, 콤퓨터가 무엇이든 계산하여 처리할 수 있게 되더라도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역시 인간이다. 그 어떤 위험한 일을 당하더라도 기계는 인간처럼 무서워하거나 당황하지 않는 대신에, 최후까지 포기하지 아니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스스로 희생까지 해가며 힘을 써주는 의지는 없다.
   태양계를 비롯하여 온 우주에 수없이 펼쳐진 신비의 세계로 향한 인간의 꾸준한 도전과 노력은 이제 그 실현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SF(공상과학소설)는 공상과 모험을 즐기려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손에 땀을 쥐게 할 것이고 마음속으로 무한한 감동과 용기를 북돋우게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무어라 하더라도 인간만이 이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인간들을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이야말로 참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서기 1981년 4월 일
   서영출판사 편집국
  
  

1. 빙하의 도시

  
   지구가 탄생한 후 수십 억 년 동안에 몇 번인가 빙하시대가 찾아왔었다. 기온이 몹시 내려가서 지구 전체가 두꺼운 얼음으로 싸이게 되는 것이다.
   옛 빙하시대―빙하기 때의 일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약 100만 년 전부터 지구는 다시 빙하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가 나타나고 성장해 온 시대이기도 하다.
   이 빙하기 중에서도 특히 기온이 더욱 내려간 시기를 빙기라고 부르는데 학자들은 그 동안 빙기가 네 번 반복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빙기와 빙기 사이를 간빙기라 한다.
   때는 간빙기가 지나고 제5빙기가 방문한 27세기였다.
   빙기를 맞은 사람들은 지하로 들어가서 그들이 살 도시를 만들어야 했다. 얼음으로 뒤덮인 지상으로 나올 수 없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도시들과 격리된 채 오랜 세월을 살아 오고 있었다.
   지하도시는 엄청나게 큰 빌딩을 지하에 묻은 것처럼 아래로 아래로 층계를 만들어 갔다. 층계란 사람들이 1층 2층이라고 불렀던 같은 것으로서, 뉴우요오크에서는 층계를 레벨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레벨A, 레벨B, 레벨C, 레벨D…… 라는 식으로 불렀다.
   지하도시에는 낮도 밤도 없다. 그러나 하여간 지하도시 뉴우요오크의 낮 시간이 지났다.
   레벨C의 통로에는 희미한 불이 켜져 있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뜸해졌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미 자기 방에 들어가서 편안히 쉬고 있었다.
   짐 바안즈는 가까스로 거주구에 들어가서 텟드 캬리슨의 방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바로 문이 열리고 작지만 딱 바라진 체격의 사나이가 나타났다. 텟드였다.
   "늦었군, 짐."
   "굉장히 서둘러서 온 것인데 이렇게 늦었습니다. 아버지는 와 계시지요?"
   "그래, 10분쯤 전에……. 동료들은 모두 모였어. 방금 런던과 무선 연락을 하던 참이야."
   짐은 방으로 들어섰다. 텟드가 문을 잠궜다.
   방에 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짐을 돌아보았다. 잘 아는 얼굴들이다.
   짐의 아버지 레이몬드 바안즈 박사, 변호사 로이 비이더, 비교언어학의 연구가 댐 핸논, 대식가이자 동물학자인 체트 판린튼, 작은 몸집에 성미가 급한 기상학자 데이브 엘리스, 화를 잘 내는 전자공학 기술자로 이 방의 주인인 텟드 캬리슨.
   그리고 짐을 합쳐서 일곱 명. 짐은 키가 크고 빨간 머리의 17세 소년이다. 보기엔 키만 큰 것 같지만 튼튼한 몸에 힘이 장사다. 지금은 흙과 태양광선을 사용하지 않고 물만으로 식물을 기르는 수재배 기술 양성소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도이다.
   짐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실내의 긴장된 분위기에 위축감을 느꼈다. 심장의 고동이 빨라져 갔다. 그것도 무리가 아니다. 동료들이 텟트의 방에서 하고 있는 무선 교신은 법률로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어서 짐도 공범자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7개월쯤 전의 일이다. 기상학자인 데이브가 지표 원격측정기로 지상의 상태를 조사했던 결과 빙기도 이제 지나고 해빙기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안즈 박사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여섯 명의 동료들에게 말했다.
   "이것은 뉴우요오크 80만 지하시민이 다시 지상의 태양 아래서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거네. 아니, 이 도시뿐이 아니지. 온 세계의 동굴 생활 인간들이 지상으로 나갈 날이 멀지 않았다는 거야. 물론 아무리 가깝다 해도 우리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실현되지 못하겠지. 그러나 우리는 후세대를 위해서 지금부터는 준비해야 되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빨리 이웃 지하도시와 연락을 취해야 돼. 우리들의 첫 행동계획은 고립된 다른 도시와 연락을 취하는 일이야. 그것이 성공되면 우리가 제일 먼저 지상으로 나가서 빙하를 횡단하여 다른 도시를 방문하는 거야. 거듭 말해 두겠는데 이것은 법을 어긋나는 일이므로 체포될 각오도 돼있어야 해. 어떠한 일이든 그렇지. 개척에 희생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네. 우리들은 이 도시에서 정하고 있는, 이웃 도시와는 일체의 교류도 하지 못한다는 법칙에는 전부터 반대해 왔었어. 우리들은 지상세계를 동경하고 있는 공상가 그룹이라고 할 수 있지. 기회를 붙잡지 못하면 한 평생 이 어두운 구멍에서 탈출하지 못해!"
   이 때부터 그들의 모임의 목표가 결정되었다. 그리고 6개월 동안 이웃 도시와 연락을 취하기 위하여 비밀 공작을 진행해 온 것이다. 우선 레벨G의 창고에서 수십 년 동안 팽개쳐 두었던 무선기를 꺼내 왔다. 그것을 텟드가 1개월 이상이나 걸려서 완전히 수리하고 교신할 수 있도록 준비를 했다. 일곱 명의 사나이들은 매일 밤 텟드의 방에 모여서 다른 도시에 무선송신을 계속해 왔었다.
  
   그리고 지금은……
   텟드가 다루고 있는 무선기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잘 들리지 않는다. 뉴우요오크! 좀더 큰 소리로 말하라!"
   "런던에서 오는 소리야."
   로이가 귀를 곤두세우고 있는 짐에게 속삭였다. 마침내 런던과 연락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텟드가 신중하게 다이얼을 조절했다.
   바안즈 박사가 다가와서 마이크를 붙잡았다. 혈색이 좋은 역사학자로서 아들, 짐처럼 여윈 체격이었으나 그와 달리 굵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조급히 런던을 불렀다.
   "그 곳은 런던이오? 여기는 뉴우요오크요, 들리시오?"
   "아아, 이제 들립니다, 뉴우요오크. 그 쪽 사투리 때문에 이상하긴 해도 알아들을 수는 있습니다."
   "나는 레이몬드 바안즈. 그래 바안즈. 그 곳의 토머스 위컴과 이야기하고 싶소. 바꿔 줄 수 없겠소?"
   그러자 런던 쪽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에 다시 목소리가 나왔다.
   "톰은 죽었소. 레이몬드……."
   상대방의 소리는 아주 희미했다.
   "뭐라고요? 죽었다니?"
   "톰은 운이 나빴소. 사고사였소……."
   잡음이 한동안 심했다. 잠시 후에 갑자기 잡음이 그쳤다.
   "……나는 톰의 사촌인 노엘 헌트. 그런데 용건은? 뉴우요오크!"
   "용건? 이제 새삼스레 용건은 무슨 용건. 런던과 뉴우요오크 사이에 공식 연락이 끊긴 지 수백 년이나 되었소. 양 도시의 연락을 재개하기 위해서이오!"
   바안즈 박사는 상대방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연락이 끊긴 지 수백 년이 지났다고 했지 않았소. 서기 2300년 이후 통신이 단절돼 왔소. 들리오, 런던?"
   "으음, 들리오. 우리도 많이 송신했었소. 응답이 전혀 없었소."
   "이 곳 수신장치가 고장이 났었소. 그러나 앞으로는 교신을 계속할 수 있소. 그런데 노엘 헌트, 내 말을 잘 들으시오. 이 곳 조사로는 지상의 빙하가 전면적으로 기세가 약해지기 시작한 것 같소. 인간이 다시 지상으로 나갈 시기가 온 거요! 여보시오. 듣고 있소, 런던?"
   "듣고 있소. 그럼 그 곳에서는 벌써 지상으로 나가서 얼음 상태를 확인했단 말이오, 뉴우요오크?"
   노엘의 목소리에는 조심성이 섞여 있었다.
   "아니오. 아직 확인은 못했소. 그러나 곧 지상에 올라갈 생각이오. 우리는 가까운 장래에 대서양을 횡단하여 그 쪽으로 갈 계획을 세우고 있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오. 그 때는 적극 협력을 해주기 바라오, 런던!"
   "이 곳에는 왜?"
   "양 도시의 연락 재개를 위해서라고 하지 않았소!"
   "여보시오. 그런 말 마시오, 뉴우요오크……. 이 곳은 지금 상태로 만족하오. 이대로 내버려 두시오. 간섭하지 말라는 소리요."
   "간섭이라니 ? 무슨 말을 하는 거요! 그럼 연락할 뜻도 없이 왜 송신을 했소?"
   "내가 조립해 놓은 게 아니오. 톰이 해놓은 거지. 그 녀석은…… 괴상한 망상에 사로잡혀서…… 지금은 죽었지만……."
   잡음이 섞여 들려 왔다. 상대는 뭐라고 중얼거렸으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런던에서의 송신이 끊겼다.
   방 안이 물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바안즈 박사는 마이크를 놓고 몸을 일으켰다. 텟드도 일어서며 얼굴을 긴장시켰다.
   "쳇, 끊어지고 말았어. 다시 한 번 송신해 보았으면 좋겠는데……. 노엘이란 녀석, 마음이 내키지 않는 말투였어."
  
   "텟드의 말이 맞아. 노엘은 겁에 질린 것 같았어. 그의 사촌인 톰 위컴과는 아주 다르군. 톰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오히려 이 쪽을 격려해 주기도 했었는데 말이야."
   텟드의 말에 이어 바안즈 박사가 말했다.
   "누군가가 송신하는 내용을 감시하고 있을 거라는 걱정이 노엘에게 있었던 게 아닐까요?"
   데이브가 물었다.
   "믿음직했던 톰이 사고로 죽었다니……."
   짐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사고가 아닐 거야. 톰은 틀림 없이 누구에게 살해된 거지."
   로이가 분명하게 잘라 말했다. 그러자 짐이 놀라며 물었다.
   "그럼 타살이란 말이죠, 로이 씨?"
   "그렇지. 우리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옛날의 지상세계에서는 있었어. 살인사건 따위는 그다지 보기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네. 그런 일이 아직도 런던에는 남아 있는 것 같아. 하여간 톰은 사고로 죽은 게 아니야. 톰은 우리들에게 중대한 것을 전해 주려고 하다가 누구에겐가 당한 게 분명해."
   "그런 일이 있을 수로 있겠지."
   바안즈 박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리고 텟드에게 물었다.
   "재교신의 가능성은?"
   "틀렸습니다, 박사님. 런던 쪽에서 끊어 버린걸요."
   텟드는 절망적으로 말했다.
   "주파수를 변경해서 다른 지하도시를 불러 보지."
   체트가 다리를 꼬면서 그렇게 제안했다.
   "안 될 거야. 다른 곳은 모두 교신을 하고 있지 않아요, 체트."
   "그러지 말고 하는 데까지는 해봅시다."
   체트가 힘을 내자며 말했다.
   체트는 무릎을 꿇고 여기저기 다이얼을 돌리며 찾기 시작했다. 아무 소리도 들려 오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곧 몹시 일그러진 얼굴을 들었다. 뺨에 경련이 일었다.
   "시간 낭비야. 집어치워야겠어. 그리고 이 방 안의 공기가 견딜 수 없단 말이야. 숨이 답답해서 못 견디겠어. 그 곳에 있는 공기 조절기의 밸브를 좀 틀어 주지 않겠나, 짐? 일곱 사람이나 있는데 단 두 명 분의 공기밖에 들어오지 않으니, 원!"
   짐이 공기 조절기 쪽으로 가려고 하자 아버지가 말리는 눈짓을 했다.
   "하지만 텟드 씨의 말이 맞아요, 아버지. 공기가 너무 적어요."
   "할 수 없어, 짐. 그러다가 우리들이 이렇게 몰래 회합하고 있는 것을 남에게 들키면 어떻게 되지? 이 방의 공기 유입 미터 바늘이 7인분으로 뛰어오르고 그것을 누군가가 보게 되면 큰일나지 않겠니?"
   텟드가 느닷없이 주먹을 불끈 쥐고 공기 조절기를 향하여 획 돌아섰다.
   "빌어먹을! 우리는 마음대로 공기도 호흡하지 못하는 건가! 1분 1초라도 빨리 이 구멍 속에서 나가고 싶어. 지상세계를 이 두 눈으로 보고 진짜 공기를 한없이……"
  
   "그렇게는 할 수 없어, 텟드. 지상은 아직도 딱딱한 얼음으로 두껍게 싸여 있단 말이야."
   댐이 말을 막고 설득했다.
   "아니야. 점점 기온이 올라간다고 했잖아. 거짓말 같으면 데이브에게 물어 봐."
   데이브는 자신 없는 듯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그야 확실히 해빙기의 징조가 있고 따뜻해질 것은 틀림 없어. 그러나 지표의 평균 온도는 50년 전보다 1도 상승했을 뿐이야. 그렇게 초조해 하면 곤란하단 말이야."
   그 말에 텟드는 힘이 빠지는 듯 입을 다물었다. 짐도 마찬가지였다. 50년 동안에 겨우 1도라니! 갑자기 텟드의 불만이 터졌다.
   "우리 조상이 인디언의 거주구에 갇혀 있었던 것도 괴로왔겠지만 그래도 이보다는 나았을 거야. 나는 이런 구멍 속에 갇혀서 태양과 구름도 보지 못하고 평생을 보내야 하다니, 정말 견딜 수 없어. 이젠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단 말이야!"
  
   성미 급한 데이브가 느닷없이 끼어들었다.
   "처음 있는 일이군. 자네가 옛 조상을 쳐들어 떠드는 일은. 오늘 저녁 회합은 이것으로 끝내기로 하지.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 신상에 해롭지 않겠어. 그대로 더 있다간 자네가 그 얼굴을 인디언처럼 칠하고 우리들의 머리 가죽을 벗겨서……."
   "뭐라고!"
   텟드가 버럭 화를 냈다. 그는 뒤돌자마자 데이브의 양 어깨를 꽉 붙잡고 흔들어댔다.
   "이 자식! 건방지게!"
   "야! 이거 놓지 못해! 너는 그 성질 좀 고쳐!"
   "그만 둬요!"
   바안즈 박사가 사이에 끼어들어서 떼어 놓았다. 체격은 가늘지만 힘은 아주 세었다.
   "공기가 희박해선지 두 사람 다 머리가 이상해졌어."
   로이가 안됐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데이브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잡혔던 어깨를 문질렀다. 텟드도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다시 다이얼을 돌렸다.
   짐은 텟드와 데이브의 기분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들이 화를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희박한 공기 때문만은 아니다. 매일 밤 비밀 회합의 지루함이라든가, 무선연락이 언제나 실패로 끝나는 절망감이라든가, 땅 속에서 일생을 지내야 하는 운명 등, 원인은 여러 가지였다. 그런 괴로움은 물론 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 때문도 아닌, 모두가 지표를 싸고 있는 그 얼음 때문이다.
   텟드가 무선기의 스위치를 뺐다.
   "응답이 없어. 그만둬야겠어. 런던과 교신을 해본 것이 오늘의 유일한 수확이야."
   "런던의 톰은 정말 훌륭한 사람이었어. 그토록 이 곳 사정을 들어 보려고 했는데 그만 죽다니……."
   데이브는 우물쭈물하며 말을 흐렸다.
   "그렇지만 사촌인 노엘은 틀려먹었어요. 겁장이 같아요."
   짐이 말했다. 그러자 텟드가 얼굴을 내밀면서 대꾸했다.
   "그럴 수도 있는 거야. 노엘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어. 다른 사람이 장치해 놓은 무선기로, 수백 년 동안 끊겨 있던 다른 도시의 통신을 받은 거잖아. 우리가 진심으로 연락을 재개하려고 노력하긴 해도, 그로선 그것을 그대로 믿을 수 있겠나 ? 믿어지지 않는 거야. 목소리가 들릴 뿐이지 실지 어디에 있는 어떤 놈인지 어떻게 알겠어. 그 쪽에서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만약 엉뚱하게 상대가 공격을 해온다면 어떻게 되겠나? 혹시 감쪽같이 속이고 중요한 원자연료를 훔쳐가기라도 한다면 정말 큰일이 아닌가. 겁내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그로서는 충분히 그런 의심을 가질 수 있어."
   "그렇지만 텟드 씨. 죽은 톰은 이 쪽을 완전히 신용해 주지 않았습니까?"
   짐이 말했다.
   "그러니까 로이가 말한 것처럼 톰은 살해당했을 거야. 톰은 틀림 없이 시의회나 아니면 다른 회의장에 나가서 뉴우요오크에 송신했다고 보고했을 거고. 그런 말은 아직 할 때가 아닌데 말이야. 그 결과 도시간 절교주의자들의 무리에게 당한 거야. 런던이든 뉴우요오크든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돌머리들만 모여 있어. 정말 한심한 일이야."
   바안즈 박사가 한숨을 쉬었다.
   "그건 그렇고, 텟드. 즉시 교신이 되지야 않겠지만 한 시간쯤 후에 내게 연락을 해 주지 않겠나? 다시 한 번 런던과 교신된다면―아니, 다른 도시라도 상관없이―나에게 알려 주게!"
   "알겠습니다."
   텟드가 대답했다.
   "오늘 밤은 이만 끝내지."
   바안즈 박사가 폐회를 선언했다.
   비밀집회는 해산되었다. 일동은 각기 레벨C 동부지구에 할당되어 있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바안즈 박사와 짐―체격이 아주 비슷한 이 부자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통로를 빠져나갔다. 몹시 실망한 두 사람은 내내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지난 주에 일곱 명의 그들은 지하도시, 런던에 사는 토머스 위컴이란 사람과 무선 연락을 했었다. 레시버로 들려온 목소리는 토머스―즉 톰은 믿음직하고 용감한 사람 같았다. 그는 암흑의 공간을 타고 날아오는 전파를 분명히 환영했었다.
   그리고 오늘 밤 일곱 사람은 톰의 목소리가 무선기에서 들려올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 사나이는 갑자기 죽었다는 것이 아닌가. 짐은 생각해 보았다.
   '어떻게 된 것일까? 왜 톰은 죽었을까? 텟드와 로이는 입을 모아 런던의 도시간 절교주의자들에게 죽음을 당했을 거라고 했는데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우선 뉴우요오크와 런던의 지하도시에 퍼져 있는 미치광이 '두더지주의자'들을 쳐부수지 않는 한 인간이 지상으로 나갈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처음 들은 노엘이란 사람의 목소리는 몹시 겁을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쪽을 의심하여 그런 것 같기도 했지만 하여간 양 도시 사이의 연락을 바라고 있지는 않았다. 내버려 두라고 분명 말했겠다. 그냥 내버려 두라니…….'
   부자가 자기들 방 앞에 왔을 때 짐이 입을 열었다.
   "실망하셨지요?"
   바안즈 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문에 붙어 있는 표찰에 손을 댔다. 개폐 반응기가 박사의 지문을 확인하더니 문이 열렸다.
   실내는 좁고 천정은 머리가 닿을 듯 낮았다. 지하도시에는 넉넉한 면적이 있는 주택을 만들 공간이 없다.
   뉴우요오크라고는 하지만 지난날 마천루나 자유의 여신상이 우뚝 솟은 뉴우요오크가 아니다. 대서양 연안에서 160킬로미터나 내륙으로 들어간 지점에 지하 깊숙히 파들어간 지하도시이다.
   지하 뉴우요오크에는 80만 명의 시민이 살고 있다. 과거 300년간 이 인구에서 1퍼센트의 증감도 없었다.
   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좋으나 증가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새로운 지하통로를 건설하고 레벨을 한 단 더 만든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지하 뉴우요오크에서는 인구 제한법 이상으로 엄격한 법률은 없다.
   바안즈 박사는 아들 짐과 단둘이 살고 있었다.―짐의 어머니는 짐이 어렸을 때 사별하였다. 방 안은 마이크로필름의 리일로 가득차 있었다. 박사는 제5빙기가 몰아닥친 23세기의 역사를 집필중이었는데 마이크로필름은 그 자료였다.
   박사와 짐이 돌아온 지 잠시 후에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짐이 문을 열자 밖에는 데이브와 텟드가 서 있었다. 좀 전의 말다툼 따위는 언제였느냐는 듯 밝은 얼굴이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두 분이 함께 오시다니…… 런던과 교신이라도 됐나요?"
   "아아니, 그게 아니고 데이브와 나에게 좋은 생각이 떠오른 거야. 그래서 박사님께 그 말을 꼭 하고 싶어서 왔어."
   텟드가 말했다.
   마이크로필름을 조사하고 있던 박사는 손길을 멈추고 그들을 맞았다. 데이브가 먼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실은 말이지요. 나와 텟드는 런던에 무선 연락이나 취하는 것으로는 해결이 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무선으로 연락한다는 것은 너무 까마득한 일입니다. 그것보다는 우리가 지금 곧 런던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지상으로 올라가서 대빙원을 횡단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런던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자아, 얼음이 녹기 시작했다. 우물쭈물할 때가 아니야!'라고 말해 주는 것입니다. 동결의 고비는 넘었으니까요. 어떻습니까, 박사님? 우리들은 완벽하게 장비를 갖춘 빙상 원정대를 조직해서 조속히 유럽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찬성! 정말로 최상의 방법이에요, 아버지!"
   짐이 신이 나서 외쳤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런던까지는 장장 4천 800킬로미터나 되네. 몇 세기 동안 그런 대모험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뉴우요오크를 떠나서 코 앞에 있는 필라델피아까지도 간 사람조차 없는 형편이야."
   "그렇지만 아버지, 이것은 누군가가 해내야 할 일이 아닙니까?"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법으로도 외부 도시와의 연락은 엄중히 금지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일도 실은 불법행위가 아니냐? 우선 두더지주의에 골몰하고 있는 시의회의 회원들이 그런 계획에 찬성을 해줄 리 없지 않겠니? 안 그러냐?"
   바안즈 박사는 가장 중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데이브가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박사님. 우리들도 시의회에다 지상여행을 후원해 달라고 사정할 생각은 아닙니다. 그저 출발 승낙만 해달라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밖으로 내쫓아 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장비 정도는 신세를 져야 할 것 같아요. 그것만 해준다면 그 다음은 우리가 어떻게든 해서 런던으로……."
   데이브가 갑자기 말을 끊었다. 누가 또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짐은 문을 열러 갔다.
   '이 시간에 누가 왔을까?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데…….'
   짐의 예감은 맞았다. 문 밖에는 경찰관 완장을 두른 네 명의 키 큰 사나이들이 서 있었다.
   짐은 그 중 한 사람, 어깨가 넓고 금발의 청년 카알 보우링과 아는 사이였다. 카알의 아버지인 피이터 보우링은 수재배 기술자로 짐이 다니는 학교 선생님으로 있었다.
   그런데 아주 최근에 피이터 선생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 아들 카알에게 조문을 간 일이 있었다.
   그러나 카알은 그 조문에 대한 답례로 온 것이 아니라, 경찰관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금발 청년은 자신의 난처한 임무를 괴로와하는 듯했다.
  
   네 명의 키 큰 사나이는 실내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바안즈 박사시죠? 당신을 체포합니다. 그리고 짐 군, 자네도…… 시의회 본부까지 연행합니다."
   한 경찰관이 그렇게 말하면서 마비총을 의미 있게 만지작거렸다.
   "점잖게 동행해 주시겠지요, 박사님?"
   또 한 사람의 경찰관이 텟드와 데이브를 수상하다는 듯 훑어보았다.
   "당신들은 누구요?"
   "텟드 캬리슨."
   "데이브 엘리스."
   "아, 당신들이었군. 마침 잘 되었소. 당신들의 체포영장도 가지고 왔는데 함께 갑시다."
   텟드의 팔 근육이 얇은 샤쓰 위로 불쑥 솟아오르는 것을 짐은 보았다.
   '저 성미 급한 사람이 덤벼들면 큰일인데!'
   짐은 슬그머니 손을 내밀어 텟드의 굵은 손목을 잡고 '참으세요'라고 속삭였다.
   텟드는 입 속으로 불만스러움을 중얼거렸으나 다행히 사건을 일으킬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바안즈 박사가 경찰관에게 물었다.
   "우리들은 체포되어야 하는 이유를 알 권리가 있소. 안 그렇소?"
   나이가 제일 많은 듯한 경찰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체포 이유는 반역죄입니다."
  

2. 반역자의 형벌

  
   엘리베이터는 계속 내려갔다. 각 레벨을 차례로 지나갔다. D, E, F, G, H, I, J……
   마지막 거주구를 통과하고 그 아래의 공업구역도 지나갔다. 다시 더 내려가서 뉴우요오크 제일 밑바닥인 레벨 M에 가까와졌다. 엘리베이터의 속도가 떨어졌다.
   레벨 M은 공무 외에는 아무도 갈 수 없는 지하도시의 통제관리지구이다. 뉴우요오크의 전기능을 한 손에 쥐고 있는 대제어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또 컴퓨터, 물순환기, 공기발생공장, 인조식료품 제조공장, 수재배농장 등도 있었다.
   그리고 뉴우요오크 행정을 관리하는 시청이 있고 시장과 9명의 시의회 의원이 시정을 담당하고 있었다.
   짐은 몇 년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내가 열두 살 때의 일이었지. 학교에서 사회과 수업을 위해 레벨 M을 견학한 일이 있었어. 뉴우요오크의 심장부를 처음 보고 난 무척 감탄했었어.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그 곳에 가고 있는 것이다. 견학차 가는 어린이가 아니라 반역죄 용의자인 짐 바안즈를 말이다. 이런 일이 있을 줄이야…….'
   엘리베이터가 멎었다.
   "나와!"
   경찰관 우두머리가 말했다 네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나오자 전자 로울러 카아가 대기하고 있었다. 일행을 태운로울러 카아는 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큰 통로와 교차하는 좁은 통로의 입구에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표지 램프가 빛나고 있었다. 그 곳을 지나 잠시 더 가자니 원자로의 기호가 있는 빨간 램프가 나타났다.
   빨간 램프가 있는 통로에 들어가다가 들키면 경비원들로부터 그 자리에서 강력 마비총의 광선 세례를 받게 된다. 시당국의 특별허가가 없는 한, 일반 시민은 절대로 원자로에 가까이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
   로울러 카아는 소리도 없이 전진했다. 이윽고 전방에 시커먼 시청 건물이 나타났다. 입구에 열 명 정도의 경찰관이 서 있었다. 로울러 카아가 정지했다.
   "내려!"
   네 사람은 두 손을 머리 위에서 깍지낀 채 내렸다.
   시청 정문을 들어서자 내부는 전등빛으로 눈이 부셨다.
   짐은 사회과 견학 때에 주름 투성이인 호우크스 노시장의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때의 시장은 웃음을 띠고 소년들을 반갑게 맞아 주었었다.
   '그런데 오늘은 사정이 좀 다르군. 시장은 쓴 미소조차 띄지 않을 게 분명해.'
   짐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 방으로 들어가!"
   경찰관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정사각형의 넓직한 방이었다. 밝게 빛나는 조명등이 다른 곳과 달리 여러 개가 매달려 있었다. 정면에는 단이 있고 긴의자와 낮은 책상이 놓여져 있었다.
   이미 다른 동료들―로이, 댐, 체트―도 와 있었다. 세 사람 모두 침울한 표정이었다. 이제 얼마 전에 텟드의 방에서 런던으로부터의 연락을 받았던 전원이 모인 것이다.
   그러자 곧 뒤에 있는 문이 열리고 열 명의 노인들이 나란히 들어 왔다.
   "주름 투성이 늙은이들만 용케도 모아 놓았군."
   텟드가 곁눈질을 하면서 중얼거렸다.
   호우크스 시장이 선두에 서서 비틀거리며 걸어왔다.―파랑색의 시장 관복을 입고 차양이 달린 모자를 썼으며 목걸이에 권위의 상징인 뉴우요오크 시장의 금메달을 달고 있었다.
   노시장은 39년 전인 2611년부터 뉴우요오크 시장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미 90세가 멀지 않은 늙디늙은 노인이었다. 밝은 전등불 아래 주름이 유난히 많은 이마, 매부리코, 늘어진 뺨, 뾰족한 턱, 노인 특유의 기미가 더욱 드러나 보였다.
   시장 뒤에서 9명의 노인 위원이 따라왔다. 제일 젊은 의원이라도 70세는 됨직해 보였다.
   시의회 의원은 10년마다 임기가 일단 끝나게 되어 있으나 그것은 법률일 뿐 전원 유임이었다. 고작 최연장자 의원이 사망한 후에야 보결로 새 의원이 뽑히는 것에 불과했다. 게다가 노인들은 건강해서 죽을 것 같지도 않았다. 현재 100세를 넘은 의원이 두 명이 있는데 두 사람 모두 영원히 살 것처럼 건강했다.
   지하도시, 뉴우요오크의 권력자들은 단상의 긴의자에 나란히 자리잡았다. 열 쌍의 반짝이는 눈이 앞에 서 있는 일곱 명의 사나이들에게 쏠렸다.
   바안즈 박사가 시장을 노려보았다.
   "시장 각하. 이 뜻밖의 체포 이유는 무엇입니까?"
   "반역죄 용의요."
   호우크스 시장은 녹슬은 문이 삐걱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들 일곱 명은 뉴우요오크 시의 안전을 위태롭게 했다는 고발이 들어왔소. 혐의를 벗을 만한 증거라도 있으시오?"
   "그러면 이게 재판이오?"
   "그렇고 말고."
   "변호인도 증인도 없이? 그리고 재판관도 배심원도 없이 한단 말이오?"
   호우크스 시장은 로이 비이더 쪽으로 눈을 돌렸다.
   "당신들 가운데 변호사가 한 명 있소. 그 사람이 변호하면 될 거야. 재판장은 내가 맡지. 배심원은 의원 전원이 맡을 거고. 그 밖에는 필요 없어."
   로이가 항의하기 시작했다.
   "시장 각하. 우리들에게는 공평한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 피고가 변호역을 맡다니 그런 엉터리 재판인 어디 있습니까? 우리들은 당연히……."
   바안즈 박사가 말렸다.
   "그만 두게, 로이. 우리들은 체포됐고 자유를 빼앗긴 입장이니까……."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주장하겠습니다. 시장 각하! 이것은 시민의 기본적인 인권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피고인에게는 항변권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시겠습니까? 당신에게는 재판을 행할 권한은 부여되지 않았습니다. 시장은 시의 행정을 관장할 뿐이지 재판은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텟드가 짐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로이가 아무리 항의해도 소용 없어. 이 노인들은 자기들이 하고 싶은대로 다 하는 자들이니까. 이 재판은 시작도 되기 전에 끝나는 직석재판이야."
   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어떻게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힘이 빠졌다.
   '이 단상에 있는 노인들은 도대체 시민헌장이나 법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이러고도 시민의 대표란 말인가? 마치 독재자 같지 않나?'
   노시장은 누렇게 뜬 주름진 얼굴을 로이에게로 향했다.
   "로이 비이더 변호인에게 경고해 두겠소, 재판 도중에 이의를 제기하면 즉시 퇴장을 명하고 그대만은 궐석재판을 할 것이오. 알겠소? 반역죄 용의자는 조속히 처단해야 하는 게 원칙이니까. 그리고 오늘은 벌써 밤도 늦었고……."
   텟드가 시장의 말을 받아 크게 외쳐댔다.
  
   "맞아! 노인들에게는 수면이 중요하니까. 그러니 빨리 침대 속에 들어갈 수 있도록 빨리 결말을 내는 게 어때?"
   그러나 텟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옆구리에 마비총의 총구가 쿡 닿았다.
   실내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시장이 손을 들어 신호를 했다. 문이 열리고 경찰관 한 명이 들어왔다.―텟드가 수리한 예의 무선기를 메고 들어온 것이다.
   시장은 경찰관이 탁자 위에 놓은 사각형 물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용의자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들은 이 무선기를 사용해서 외부의 도시와 연락을 취했소. 그리고 런던과 교신했소. 그게 사실이오?"
  
   "사실입니다."
   로이가 대답했다.
   "당신들은 공모해서 뉴우요오크 시의 안전을 위협했소. 동시에 시정을 어지럽히려고 꾀했지. 사실이지?"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시장 각하!"
   로이가 대답했다.
   "사실이 아니라고? 이의는 받아들일 수 없어.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있단 말이오."
   "물적 증거가 있다면 전부 제출해 보십시오. 피고인은 고발을 받은 범죄 용의의 증거품을 볼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법의 첫째 원칙이 아닙니까?"
   "그럴 필요는 없어. 우리가 이미 증거품을 검토했으니까. 반역자들! 당신들은 뉴우요오크의 적이야!"
   그러자 이번에는 로이 대신 바안즈 박사가 한 마디 한 마디 힘을 주어 말하기 시작했다.
   "반역자?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억지도 정도껏 하시오. 우리들은 런던과 무선 연락을 한 사실을 부인하려는 것은 아니오. 여기에 있는 데이브 엘리스가 원격측정기를 사용하여 지표의 상태를 조사하던 중 기상 상태가 변하고 있음을 알아냈소. 얼음이 녹기 시작한 거요. 아시겠소? 인간이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서 살 수 있게 되는 것이오. 그래서 우리들은 다른 곳의 지상 표면 상태를 확인해 보기 위해서 이웃 지하도시와 연락을 취하려고 했던 것이오. 그것뿐이오. 그런데 반역자라니? 뉴우요오크의 적이라니? 엉터리도 한도가 있는 법이오."
   노시장은 의연하게 고개를 저었다.
   "적이고 말고! 당신들은 평온무사한 뉴우요오크의 사회 질서를 혼란하게 만들려고 꾀하고 있어. 분명히 반역죄가 성립돼. 배심원 여러분의 판결을 구하는 바요."
   "유죄! 유죄! 유죄!"
   아홉 명의 노인 의원이 까마귀 짖어대는 소리처럼 일제히 외쳤다.
   노시장의 주름진 입술에 차가운 미소가 떠올랐다.
   "평결은 유죄로 결정되었소. 그럼 밤도 늦었으니……, 형의 선고는 내일 아침에 하도록 하지. 피고인들을 데리고 가. 오늘 밤은 이만 폐정한다!"
   재판놀이는 10분으로 끝이 났다.
   짐은 로이, 데이브, 체트와 함께 한 감방에 넣어졌다. 천정이 낮고 음침한 감방이었다. 바안즈 박사, 텟드, 댐은 옆 감방에 들어갔다.
   짐은 감방 안을 초조한 마음으로 왔다갔다 했다. 다른 세 사람은 벽에 붙여서 만들어 놓은 침대에 들어가서 누웠다.
   유죄 평결은 짐에게는 의외가 아니었다. 외부 도시와의 무선 연락은 위법이었고 반역행위로 간주된다는 것도 그 전부터 알고 있었다.
   짐이 분하게 생각한 것은 피고의 입장을 무시한, 노인들의 일방적인 엉터리 재판이었다.
   '몇 시간 후에는 좋건 싫건 형이 언도되겠지. 설마 사형 언도야 내리지 않겠지…….'
   뉴우요오크에서는 중대한 범죄는 거의 없었다. 절도나 강도사건은 극히 드물었다. 지하도시에서는 개인 소유의 재산이란 극히 적은 것이어서 금전욕에서 생기는 범죄는 거의 없었다. 살인사건은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텟드와 같이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폭력사건은 자주 일어났다. 그러한 죄에 대해서는 그 나름대로의 벌이 내렸다.―자유시간의 이용 정지, 거주지를 나쁜 장소로 옮기거나 강제노동 등이었다.
   '그 정도의 죄라면 아버지와 함께 하수도 청소정도 시킬 텐데. 하지만 그런 가벼운 벌로 다스려지지는 않을 거야.'
  
   날이 밝았다. 짐은 밤새 뜬 눈으로 새웠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노인들의 엉터리 재판에 화가 치솟았던 것이다. 보기도 싫은 노인들의 얼굴이 겹치면서 여러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언제였든가? 텟드의 방에서 목적지도 없이 여기저기에 그냥 전파를 보내고 있을 때, 동료들이 지하도시의 불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 때 그들의 대화의 대략은,
   "……무기력한 거지 뭐. 시민은 굴 속에 틀어박혀서 무사히 있기만 하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어. 보수주의고 무슨 주의고 아무 소용이 없어. 그저 이것 저것 전부 다 금지래. 구멍 속에서 지상으로 나가려고 하는 사람은 틀림 없이 위험인물이라고 반역자로 몰고 말 거야."
   그렇게 말한 사람은 짐의 아버지였다.
   "그렇지만 박사님. 머지 않아서 결국 우리는 태양 쪽으로 나가게 될 겁니다. 그렇지요, 이 구멍은 임시 숙소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상의 빙하가 후퇴할 때까지 문명을 지키기 위해서 참고 견디는 장소가 이 구멍인 것입니다. 영구히 이 곳에서 살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텟드가 말했다.
   "맞아. 어떻게 하든 빨리 지상생활을 재개해야 할 텐데. 이 지하에서 오래 살다간 인간의 근성이 게으름으로 변할 거야. 기계설비는 완벽하지, 할 일은 할당되어 있지, 인구는 제한되어 있지. 그러니 생존경쟁은 없잖아. 이렇게 되어 가다간 인간 본래의 활동력을 잃고 무기력하게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야."
   짐의 아버지 바안즈 박사가 말했다. 그러자 체트가 묘한 비유를 했었다.
   "타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놈들은 모양은 멋진 새지만 날지 못하는 새입니다.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면 모래 속에 머리를 파묻고 허우적거립니다. 이 곳 시민은 타조입니다."
   짐 역시 타조와 다름 없다고 생각했다.
   지하도시 뉴우요오크는 아마 앞으로 몇 천 년은 이렇게 지하에서 지낼 것이다. 아무도 지상의 얼음 지옥에 나가는 자는 없을 것이다. 틀어박혀 있기 좋아하는 사람들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지상을 잊고 살 수는 없다. 누군가가 선두에 서서 밖에 나가야 한다. 그 어려운 일을 텟드와 짐 부자, 그리고 다른 네 사람이 하려고 했던 것이다.
   최소한 이 일곱 사람은 앞으로의 인생을 어둠침침한 땅 속에 틀어박혀서 살 수 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서든 지상세계로 나가야겠다고 마음을 합쳤다. 더군다나 밖은 동결이 이미 풀리기 시작하여 해빙기를 맞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곳의 지하도시에도 그런 사실을 전해줘야 한다…….
   일곱 사람은 행동을 개시했다. 창고에서 무전기를 훔쳐다가 수리했다. 비밀 송신이 시작되었다. 몇 개월 걸려서 겨우 런던에 한두 번 연락을 취했다가 일제히 검거! 정 말로 뜻밖의 일이다.
   그리고 지금은 형의 선고를 기다리는 몸들이 되었다.
   앞으로 3시간만 지나면 아침이 된다.―로이, 체트, 데이브 등 세 사람도 몇 번이나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동이 트고 나서야 짐은 침대에 올라갔다. 머리 속이 복잡해서 잠깐이라도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이런 난감한 처지가 된 것도 결국은 지상의 얼음 때문이었다. 인간을 지하로 쫓아보낸 빙하가 죄인 것이다. 짐은 아버지와 데이브에게서 들었던 대동결의 역사를 더듬으며 생각했다…….
  
   과거 수백 만 년 동안에 4회에 걸친 빙하가 지구를 덮게 된 원인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태양복사열의 변화, 대기 속의 탄산가스 증가, 양 극지방의 온도 변화 등……. 그러나 정확히는 단정짓지 못하고 있다. 다만 정확한 것은 어떤 원인으로 지구를 싸고 있는 대기권이 차가와지고 양 극 지방에서 빙하가 덮쳐 왔다는 사실뿐이다.
   서기 2200년쯤부터 세계는 차츰 차가와지기 시작했다. 평균 온도가 조금씩 하강해 갔다. 지구는 서서히 대동결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해가 바뀜에 따라 겨울이 길어졌고 봄이 늦게 찾아왔다. 여름이 짧아지더니 첫눈이 내리는 시기가 빨라졌으며 강설량이 굉장히 늘어갔다.
  
   얼마 후에는 북극지방에 여름이 완전히 그 자취를 감추었다. 녹지 않는 얼음이 수십 미터의 두께로 싸여 갔다.
   그것이 제5빙기의 초기 변화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 대동결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그저 고개를 갸우뚱하며 겨울이 길어지고 무척 추워졌다 하는 한가로운 인사말만 주고 받을 뿐이었다.
   빙하가 남하하기 시작하고 하얀 마수가 스웨덴, 캐나다, 알라스카의 마을과 도시를 덮쳤다.
   그리고 서기 2300년―
   온 세계의 사람들은 그제야 중대한 사태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기온이 점점 떨어져 가는 까닭을 안 것이다.
   거대한 우주진의 구름이 태양과 그 혹성군을 온통 둘러싸고 말았다.
   그것은 지구로의 태양의 복사열을 가로막은 것이다. 그러나 육안으로는 하늘의 변화를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하늘은 여전히 파랗고 하얀 솜구름은 한가롭게 떠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진이 태양을 둘러싸고 중요한 온기를 빼앗아 가고 있는 것이 틀림 없었다. 더구나 우주진이 모인 구름은 굉장히 큰 것이었다. 태양계의 혹성군이 그 구름을 완전히 돌파하는 데는 아마 몇 세기는 걸리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제5빙기로 접어들었다.
   지구의 온도는 계속 내려갔다. 빙하가 맹위를 떨치며 온 세계로 엄습해 왔다. 세계의 태반이 얼음 밑에 묻히고 말았다.
   물론 인간은 가만히 서서 손만 부비고 있을 수는 없었다. 갖가지 빙하 격퇴 계획이 마련되었다. 원자력 이용 초고열 공장을 만들어 빙하를 녹인다면? 등등 여러 가지 안이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하찮은 노력에 불과했다. 맹렬히 쳐들어오는 빙하기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대자연에는 이길 수 없다며 나약한 인간들은 공포에 떨 뿐이었다. 23세기의 인류도 차디찬 이 하얀 괴물에는 대항할 방법이 없었다.
   빙하는 도저히 막을 수 없다―고 하면 인류는 도망치는 길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빙하전선이 쳐들어오기 전에 수백만 명의 인간들이 남쪽으로 남쪽으로 피난했다.
   "적도지방으로 이주하자!"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브라질, 콩고, 나이제리아, 인도네시아 등의 나라가 세계의 새로운 세력권을 형성했다. 러시아, 중국, 북아메리카는 빙하에 휩싸여 국력을 잃고 말았다.
   반대로 열대지방의 나라가 활력을 띠게 되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쾌적한 기후가 계속되자 농업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의 조건이었다.
   사하라 사막에 비가 쏟아지고 꽃이 피었다. 대아마존 분지에 밀의 싹이 텄다.
   그러나 열대지방 사람들은 북쪽에서 밀려오는 피난민에게 몹시 냉정한 태도였다. 국경에서 한 발자국도 들여놓지 못하게 하면서 그들은,
   "우리는 당신들을 받아들일 수 없으니 그대로 돌아가시오."
   라고 한 마디로 거절했다.
   이렇게 해서 열대지방의 신흥 강대국은 눈부신 성장을 했는데, 지난날 빙하기 전의 선진국 세력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갖게 되었다.
   온대지방의 사람들은 차츰 절망에 빠져들었다. 추워짐에 따라 점점 난폭해져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피투성이 폭동―식량 폭동, 일자리를 뺏는 폭동, 분노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 없는 폭동―으로 죽어 갔다. 출생률도 급속히 저하했다.―미국의 인구는 30년 동안에 4천만으로 줄었다. 그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미 인간이 평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빙하 격퇴책은 한 가지도 없고, 동결의 위협에 직면한 각 나라 사람들은 하는 수 없이 땅 속으로 들어갔다. 미국에서는 원자력을 이용한 자급자족의 지하도시가 속속 건설되었다. 유럽에서도 수많은 도시가 지하로 옮겨졌다.
   서기 2297년. 지구가 우주진의 구름 속에 들어간 지 약 1세기가 지나서 지하도시 뉴우요오크가 탄생되었다. 그러나 그 때는 지상 뉴우요오크에 150만 명의 인구밖에 남아 있지 않았었다. 그리고 50만 명도 안 되는 사람이 새 뉴우요오크로 들어갔다. 지하도시는 입구를 막았고 그 위를 대빙괴가 덮쳤다.
   그리고 현재 서기 2650년. 80만의 뉴우요오크 시민은 꿀벌집과 같이 땅밑에 주거지를 만들고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 이미 300년 이상이나 외부세계와의 연락을 끊고 있는 것이다.
  
   짐은 머리에서 30센티밖에 안 되는 천정을 올려다 보았다.
   '이렇게 낮은 천정 밑에서는 질식하고 말겠어. 내 키가 190센티나 되는데 이런 지하도시에는 맞지가 않아. 아무래도 지상으로 올라가는 수밖에 없어.'
   감방 문이 열렸다. 벌써 환한 아침이 찾아왔다. 경찰관이 엄한 말투로 명령했다.
   "나와!"
   "아침 식사는?"
   체트가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호강스런 소리 마. 잠자코 따라오기나 해!"
   일곱 명의 사나이는 통로로 집합했다. 짐이 아버지에게 고개를 끄덕여서 인사하자 바안즈 박사는 안색이 좋지 않은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박사도 잠을 이루지 못한 탓인지 눈이 푸석푸석 부어 있었다.
   어제 들어갔던 법정에는 이미 열 명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호우크스 노시장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목소리는 표정 같지 않게 찌렁찌렁 울렸다.
   "당신네들은 위험인물의 집단이오. 뉴우요오크의 평화를 혼란하게 만들려고 음모를 꾀했소.
   그런데 당신들을 처분하기가 여간 곤란한 게 아니오. 사형을 시키자니 심한 것 같고, 그렇다고 그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소. 도화선에 불이 붙은 폭탄을 자기 방에 놓아둘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우리들은 어떻게 판결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몇 시간 동안 협의했소. 그리고 결론을 내린 거요. 바안즈 박사. 그대는 바깥 세계를 탐색하기 위해 다른 도시와 연락을 하고 싶다고 했었죠? 좋소. 원대로 해주지. 나는 그대들 전원에게 뉴우요오크 추방형을 내린다. 12시간 이내에 이 지하도시에서 나가야 한다. 알겠나? 돌아오거나 하면 침략자로 간주하고 극형에 처하겠다……."
   "시장! 우리들을 차라리 원자로에 집어던지는 게 어떻겠소? 지상으로 내쫓는 것보다 그 편이 나을 거요."
   노시장이 차가운 눈초리로 텟드를 노려보았다.
   "그대들은 늘 지상세계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충분한 장비를 갖추어서 나가게 해주시오. 벌거벗은 채 쫓겨나는 것은 극형과 다름 없소."
   "내가 언제 그대들을 벌거벗겨서 내쫓는다고 했나? 그렇다면 사형이나 다를 바 없지. 걱정할 것 없어. 전원에게 충분한 장비를 줄 테니까. 그러나 한 마디 해두겠는데, 그대들이 지상에 나가서 죽는다 해도 내 책임은 아니야. 우리는 무자비한 인간은 아니다. 단지 뉴우요오크의 평화를 위해서 그대들을 내쫓을 뿐이야."
   노시장은 미소를 띠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곧 손을 들어 신호를 했다.
   "죄인들을 끌어내라!"
  

3. 드디어 지상으로

  
   일곱 명의 사나이는 레벨 M에 있는 큰 창고로 끌려갔다. 그 곳에서 장비를 마음대로 택하라는 것이다. 바안즈 박사가 말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어. 반역죄는 뉴우요오크 추방을 당하게 되어 있거든. 뉴우요오크 시의 기록에도 그렇게 남아 있는걸."
   "그러나 그 법률은 수십 년 동안 실시되지 않았잖습니까? 그런데 우리 전의 마지막 추방형은 언제 있었나, 로이?"
   데이브가 말했다. 변호사 로이가 즉시 대답했다.
   "서기 2593년이야. 스탠튼이란 사람이 반역죄에 몰려서 추방형을 받았지. 이 50년 동안에 뉴우요오크를 추방당한 사람은 그 사람뿐인데 아마 지상에 나갔던지 아니면 나가려다가 죽었는지 모르지. 그가 살아 있을 가망성은 희박해."
   "어쩌면 우리들도 스탠튼의 경우와 똑같이 될지 몰라."
   데이브는 공포심에 사로잡혀 중얼거렸다. 짐이 데이브를 위로하기 위해 그 옆으로 다가갔다. 데이브가 말했다.
   "내가 어제 밤 말한 것은 완전 장비를 갖춘 원정대를 가리키는 말이었어. 짐, 몇 개월씩 걸려서 세밀한 계획을 세우고 편성한 탐험대를 말이야. 지상 상태를 출발 전에 충분히 조사하고, 휴대용 식료품 등도 충분히 준비하지 않으면 안 돼. 사전에 아무 조사도 없이 지상으로 올라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야. 무모하기 짝이 없어. 주어진 시간은 단 12시간! 그 사이에 무엇을 한담."
   "해보는 거야, 데이브! 처음부터 포기할 건 없잖아? 힘 을 내세!"
   바안즈 박사가 데이브를 격려했다. 텟드도 고개를 끄덕 이며 거들었다.
   "마음 약하군, 데이브. 정신차려! 이렇게 된 이상 무슨 수를 써서라도 런던에 가는 길밖에 없어. 4천 800킬로라고 했지? 하루 30킬로쯤 걸으면 6개월 전에 도착할 수 있어."
   침울해 있던 댐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납득이 가지 않아. 왜 꼭 런던까지 가야 한다는 거지? 더 가까운 도시가 두 군데 나 있는데 말이야. 보스톤, 필라델피아……."
   "그 두 지하도시는 200년 전에 전멸됐답니다. 지금 그 곳의 상태는 전혀 알 길이 없어요. 아마 생존자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런던 사람들은 살아 있잖아요. 무선으로 통화가 됐으니까 그건 분명한 거죠. 하여간 나는 텟드 씨 의견에 찬성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런던에 가야 합니다."
   짐이 말했다.
   "4천 800킬로! 도저히 불가능해."
   데이브가 자신이 없다면서 중얼거렸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거야!"
   텟드가 외쳤다.
   "이렇게 공론만 한다고 해서 우리에게 좋은 일이 생기는 건 아니잖아. 혹 쓸 만한 장비가 있는지 창고 속을 잘 찾아 봅시다. 출발시간은 다가오고 있어."
   바안즈 박사가 말했다.
  
   시의회 쪽에서도 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10명의 노인들은 죄인들을 죽게 내버려 둘 생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창고에 먼지로 덮인 빙상 탐험 장비를 가지고 가라고 그들 나름대로 배려를 한 것이다.
   스탠튼 이후로 뉴우요오크에서 지상으로 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방한복, 텐트, 신호탄 등이 창고에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다. 그것들은 지하도시의 시민들에게는 아무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두 대의 빙상썰매가 발견되었다. 태양전지로 제트 추진의 동력을 내게 하는 뜻밖의 승용물이었다. 이것만 있으면 대빙원을 걸어서 횡단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나이프, 손도끼, 선글라스, 자석, 육분의, 6개월 분의 고형식, 열선발사기 등도 갖추었다. 7인의 죄수는 빙하 위에 벌거숭이로 내쫓기는 셈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상의 그 추운 곳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지하도시의 인간은 온실에서 자란 화초와 다름 없는데. 영하 수십 도의 추위를 겪어 보지도 못했거니와 1킬로도 걸어 본 일이 없어. 그런 우리가 무서운 지상에 올라가 살아 갈 수 있을까? 캄캄한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어린아이와 다름이 없는데…….'
   짐은 출발시간이 다가오자 초조와 불안으로 안절부절을 못했다.
   드디어 뉴우요오크를 떠날 시각이 닥쳐 왔다. 바안즈 빙상 원정대―부르기 좋게 말한다면―는, 지하도시 최상부인 레벨 A로 올라갔다. 그리고 얼음에, 뒤덮인 지표로 올라가는 수직 터널의 해치 옆으로 전장비를 날라 갔다.
   레벨 A는 옛날의 지표에서 불과 30미터 밑이었다. 그러나 그 지표 위에는 천 미터 아니, 그 이상의 두꺼운 얼음이 덮고 있었다.
   호송 경찰관들 속에 카알 보우링도 끼어 있었다. 짐이 텐트를 해치 쪽으로 끌고 가려고 하자 카알이 옆으로 다가왔다.
   "내가 도와 줄까?"
   "괜찮습니다. 나 혼자 해보겠어요."
   "사양하지 말게."
   짐이 접은 텐트 앞을 들고 카알이 뒤를 들어 함께 운반했다. 카알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자네가 부럽네. 나도 함께 가고 싶어. 그러나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이 도시의 고용인이거든. 그리고 탈주자란 오명을 쓰기는 싫어. 나는 경찰관이고 법의 집행자이니까. 그런데 그 법이라는 것이……."
   "……우리들을 추방하고 있소."
   짐이 덧붙였다.
   카알은 유감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나도 가고 싶은 마음은 태산 같지만 갈 순 없고……. 나는 뉴우요오크 경찰관 양성소를 나왔고 이 도시를 지킬 의무가 있어."
   "그러니까 지하도시에 있으면 될 게 아닙니까?"
   해치를 통하여 녹슨 터널 밖으로 짐을 운반하는 데 1시간이나 걸렸다. 두 대의 썰매를 옮기는 것이 제일 힘든 일이었다.
   "전부 운반했나?"
   호송대 대장이 물었다.
   바안즈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곱 명의 추방자들은 해치 건너편 연락구로 이동했다. 세 명의 건장한 경찰관이 철문을 닫기 시작했다. 철문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구부러진 레일 위를 미끄러져 갔다. 짐의 가슴에 고동소리가 높아졌고 숨쉬는 것이 괴로와졌다. 앞으로 1.5미터이다. 철문이 완전히 닫히면 일곱 명의 사나이는 영원히 뉴우요오크에서 쫓겨나는 것이다. 아아……
   "기다려!"
   누군가가 외쳤다. 사람 그림자 하나가 철문 틈으로 나와서 이 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그는 카알이었다. 이 젊은 경찰관은 대담하게 결단을 내린 것이다.
   해치 저 쪽에서 경찰관들이 철문을 닫는 금속성이 들려왔다. 철문 개폐는 안에서 밖에 할 수가 없다. 이제 이들 중에 아무도 뉴우요오크로 돌아갈 수는 없다.
   "데리고 가 주십시오!"
   카알이 말했다.
   바안즈 박사는 빙긋이 웃었다.
   "이렇게 된 이상 함께 갈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런데 자네는?"
   "카알입니다. 일전에 세상을 떠나신 수재배 기술자 피이터 보우링의 아들입니다."
   "저와 아는 사이입니다. 카알이라면 잘 해낼 겁니다."
   짐이 끼어들었다. 카알의 용기에 감동했는지 그는 자신도 이상할 정도로 카알을 두둔했다.
   "글쎄. 하여간 우리 티임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돼. 우리는 게으른 사람을 돌보고 있을 그런 처지가 아니니까. 그런 각오는 꼭 해두게."
   짐은 이렇게 차가운 아버지의 말투가 뜻밖이었다.
   텟드가 머리 위 터널의 어두운 속을 올려다 보았다.
   "엘리베이터에 장비를 운반하지."
   짐은 즉시 장비 운반에 끼어들었다. 눈과 얼음의 지상은 공상 속의 세계였다. 짐 부자는 물론 조상들도 그 지상을 엿볼 기회조차 없었다. 동료들 가운데 지상세계의 일부를 본 사람은 데이브뿐이었다. 그것도 원격측정기의 렌즈가 잡은 희미한 영상을 텔레비젼 화면으로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공상의 세계로 마침내 올라가는 것이다!
   '무사히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 엘리베이터가 도중에서 고장이라도 난다면?'
   "전장비 적재 완료!"
   로이가 보고했다. 전원이 머리 위의 어둠을 지켜 보았다.
   이 터널은 지하도시 건설 때 자재 운반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엘리베이터는 이 터널을 상승해 간다. 엘리베이터는 운전 보턴과 미터기가 달려 있을 뿐 천정도 없는, 두꺼운 철판에 지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상승!"
   바안즈 박사가 명령했다. 텟드가 시동 보턴을 눌렀다. 수십 년 동안 멎어 있던 모우터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모우터 소리가 높아졌다고 생각했을 때 텟드는 상승 보턴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진동을 시작했는데 기저부의 완충장치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 같지는 않았다.
   도르래의 회전부가 녹슨 것이 아닐까? 아니면 엘리베이터에 실은 장비가 너무 무거워서일까?
   "2톤 이상이나 실었으니 그럴 만도 해. 사람은 2회로 나누어서 올라갈까?"
   댐이 제안하고 있는데 갑자기 충격이 왔다. 엘리베이터가 기저부에서 떨어져서 부르릉거리며 지상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8명의 사나이들은 지붕 없는 철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이미 몸은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들의 피부에 찬 소름이 돋았다.
   "36미터 올라왔음. 이제 빙하 속에 들어왔을 겁니다."
   텟드가 파랗게 빛나는 미터를 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머리 위를 비추게."
   바안즈 박사가 명령했다. 라이트가 터널 상부의 금속벽을 따라 지나갔다. 적어도 머리 위 수십 미터는 보였지만 그 위는 캄캄했다.
   엘리베이터는 계속 상승했다. 120미터 지점에서 텟드가 정지 보턴을 눌렀다.
   "위가 캄캄한데!"
   바안즈 박사가 라이트를 비춰 보자, 터널을 덮고 있는 철 해치 때문임을 알았다.
   수백 년 전 지하도시 건설 당시, 기술자들이 머리 위로 빙괴가 낙하해 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장치해 놓은 것이 틀림 없다. 이 튼튼한 해치를 어떻게 연다지?
   라이트가 해치 바로 아래의 금속벽에 달려 있는 스위치 판을 비추었다. 긴급회의가 열렸다. 해치의 개폐 스위치라는 것이 모두의 의견이었다.
   텟드가 스위치를 넣자 해치는 서서히 좌우로 움직이더니 이윽고 머리 위에 있는 통로가 열렸다. 엘리베이터가 상승했다. 해치를 통과하니 그 곳에도 스위치 판이 있었다. 텟드가 스위치를 넣자 아래에 있는 해치가 닫혔다.
   다시 120미터 정도 올라가자 두 번째의 해치에 부딪혔다. 이 곳도 좀 전과 같은 요령으로 통과했다. 3, 4, 5번째의 해치를 빠져 나갔다. 이미 뉴우요오크의 레벨A에서 800미터 올라왔다.
   계속 상승했다. 6, 7번째 해치도 무사히 통과했다. 그런데 8번째는 인공 해치가 아니었다. 엘리베이터 통로를 얼음 천정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는 얼음 천정 4미터 아래에서 정지했다. 짐이 썰매 위로 올라가서 까치발로 서서 얼음에 손을 대 보았다.
   "차요!"
   "차겠지. 이 터널 속에서 우물쭈물하다가는 전원이 더 차가운 상태로 빠져 버릴 거야. 얼어 죽는단 말이지. 열선발사기를 준비!"
  
   바안즈 박사가 명령했다.
   로이와 체트가 냅자크에서 4개의 금속 통을 꺼냈다. 그것은 길이 30센티 길이의 열선을 발사하는 기구이다. 유감스럽게도 유효 발사거리는 겨우 10미터 이내이다.
   바안즈 박사는 머리 위의 쐐기를 발견했다.
   "저 얼음 바위를 어떻게 뚫는다지? 시험 삼아 천정 모서리 쪽을 녹여 봅시다."
   박사는 열선발사기를 한 개 건네 받았다. 그것을 천정 모서리를 향하여 보턴을 눌렀다. 녹색 열선이 얼음의 표면에 닿았다. 마치 용이 불꽃을 내뿜는 것처럼 얼음은 김으로 피어올랐다. 터널의 냉기로 녹은 얼음의 증기가 금방 응고되어 물방울이 되었다.
  
   여덟 명의 사나이들은 난생 처음 빗소리를 들었다. 백여 미터 아래의 7번 해치 철판에 물방울이 떨어져서 커다란 굉음으로 울려 울려퍼졌다.
   "들어 봐, 저 소리! 어때, 드럼 통을 100개나 두드리는 소리 같잖아."
   텟드가 외쳤다.
   얼음 천정 모서리에 둥근 끌로 뚫은 것 같은 구멍이 뚫렸다. 직경이 2미터, 길이가 6미터 정도는 됨직 했다. 그러나 얼음 쐐기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데이브가 말했다.
   "그 사람 얘기 알지? 뉴우요오크에서 쫓겨난 스탠튼이란 사람 말이야. 지금까지 올라오던 도중의 해치에서 그 사람의 뼈를 발견하지 못했어. 그렇다면 그는 이 곳을 지나갔다는 말이 되잖아. 그러니까 머리 위에 덮여 있는 얼음은 불과 60년분……, 그 이하일 거야."
   "그렇다면 얼음의 두께는 어느 정도일까, 데이브?"
   박사가 물었다.
   "글쎄요. 현재 이 지방에는 연간 2미터 정도의 눈이 내리는데 녹지 않는 눈의 양을 계산한다면 년간 60센티미터의 눈은 쌓일 것입니다."
   "그러면 머리 위에 있는 얼음은 2, 30미터밖에 안 돼. 좋아, 전원 장비를 갖추도록. 어쩌면 물에 흠뻑 젖을지도 몰라."
   박사는 명령을 내리고 다시 한 번 열선발사기를 겨누었다. 열선이 빛났다. 얼음이 녹고 또 한 개의 구멍이 뚫렸다. 차디찬 물방울이 묘한 리듬을 만들며 떨어졌다.
   계속해서 열선이 얼음을 쏘았다. 조금 전까지도 얼음 지붕이었던 머리 위에 직경 6미터, 길이 6미터 정도의 구멍이 뚫렸다. 그러나 얼음 쐐기는 아직 끄덕도 하지 않는다.
   '얼음이 4, 500미터 정도 쌓여 있으면 어떻게 하지?'
   짐은 불안해졌다.
   "텟드, 엘리베이터를 조금만 더 상승시키게. 열선이 닿지 않아."
   박사가 명령했다.
   엘리베이터는 열선이 뚫어 놓은 얼음 공간을 서서히 올라가서 정지했다. 다시 열선 발사! 머리 위의 어둠 속에서 녹색 빛이 번쩍임과 동시에 얼음의 반사 광선이 교차된다. 물방울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엘리베이터는 조금씩 조금씩 상승했다.
   그 순간 커다란 얼음 덩어리가 조각이 나서 떨어졌다.
   "얼음 덩어리가 떨어져요!"
   짐이 외쳤다. 그러나 곧 얼음의 집중 낙하는 멎었다. 바안즈 박사가 외쳤다.
   "전원 부상은 없나? 잘했다. 뜻대로 얼음 천정을 부쉈어."
   짐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얼음의 쐐기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터널의 양 쪽에는 아직 얼음의 쐐기가 부분적으로 붙어 있었지만 직경 7미터의 구멍이 뚫린 이상,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뚫려진 구멍 위 끝 공간에 무수하게 빛나는 점과 은빛으로 빛나는 쟁반 같은 것이 보였다.
   밤하늘이다!
   달빛이다!
   별무리가 반짝인다!
   바안즈 박사가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
   "엘리베이터 상승!"
  

4. 은백색의 사막

  
   차디찬 침묵의 세계!
   끝없이 펼쳐진 하얀 세계!
   밤하늘에 가득 수놓인 별무리!
   짐이 터널 가장자리를 빠져나와서 지상으로 첫 발자국을 내디뎠다.―그 순간 눈에 들어오는 새로운 세계의 장엄함에 숨이 막혔다. 대빙원의 광대함에 너무나 놀라워 가슴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어둠침침한 지하 주거지의 구멍 속에서만 살던 인간의 감각으로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꿈속에서도 상상 못한 광경이었다.
   이 새하얀 빛깔! 설원에 반사하는 달빛의 눈부심! 지상의 세계는 온통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동료들이 차례로 터널 속에서 올라왔다. 카알은 나오자마자 눈 앞의 은백색 사막을 바라보고 믿어지지 않는 듯 넋을 잃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는 선글라스를 끼더니 '추워, 너무 추워'를 연발했다.
   데이브가 불안스런 표정으로 올라왔다. 로이, 체트, 댐, 바안즈 박사가 뒤를 이어 올라왔다. 텟드가 제일 뒤에 쳐졌다가 나왔는데, 건강한 인디언의 후손도 이 엄청난 광경에는 기가 죽었는지 입을 열지 못했다.
  
   데이브가 말했다.
   "그것이 눈이라는 걸세. 15센티 정도의 두께로 얼음 위에 쌓여 있지? 지금은 봄철이기 때문에 겨울 눈은 거의 녹아서 빙하의 일부가 되었거든."
   텟드가 두 손으로 눈을 들어서 뿌려 보았다. 눈은 달빛을 받고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며 날렸다.
   바안즈 박사가 주의를 주었다.
   "장갑을 껴라. 우리 피부는 이 기온에 견디지 못해."
   데이브가 온도계를 꺼냈다.
   "대단한 추위는 아닙니다. 영하 10도군요. 따뜻한 봄철 밤입니다."
   짐은 몸을 떨었다. 차가운 돌풍이 날카로운 칼로 살을 에이듯 몸 속으로 파고들었다. 두꺼운 방한복이 얇은 내의처럼 느껴졌다.
   '이 정도가 따뜻한 봄날의 밤이라. 어쨌든 봄날이기가 다행이다. 우리의 행운이야. 데이브 씨의 말로는 겨울은 영하 20도에서 영하 50도 사이를 오르내린다고 했는데, 영하 50도! 생각만 해도 끔찍해.'
   그러나 짐은 당분간 추위를 잊을 수 있었다. 그들이 정신을 차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두 대의 썰매와 장비를 옮기는 작업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몸을 움직이고 있으면 조금은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 짐은 열심히 작업을 했다.
   텟드와 로이가 천막을 쳤다. 출발하기 전에 태양전지를 충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아침이 되기까지는 움직이지 말아야 했다. 이 곳에서 한 잠 자고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짐은 이 이틀 동안 잠을 편하게 자지 못했기 때문에 머리가 무겁고 몸도 나른했다. 그러나 백색의 세계에 들어선 흥분으로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흥분을 가라앉혀 보려고 천막 밖을 걷기 시작했다.
   진짜 공기가 폐 속 깊숙히 들어왔다. 새로 터트린 와인처럼 부드럽고 상쾌하고 달았다. 방한화가 눈 속에 파묻혔다. 그는 못박힌 듯 넋을 잃고 서 있었다.
   그 옛날에는 이 지방이 굉장히 광활한 대지였었다. 기복이 심하지 않은 농촌지대로서 언덕과 골짜기가 있었고 숲이 있었으며 밭 사이를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짐은 옛날 지상의 사진을 본 적이 있으므로 언덕, 골짜기, 시냇물 등이 어떤 것인지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그림자도 없었다. 빙하가 거대한 짐승처럼 뒤덮고 있고 모든 것이 얼음 밑으로 숨어 버린 것이다. 옛날에는 미국의 동부였던 이 곳이 지금은 1.5킬로미터 이상이나 되는 빙괴에 뒤덮인 빙원으로 변했다.
   그러나 수천 킬로 서쪽에는 험준한 산맥이 빙하를 가로지르며 치솟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동쪽 끝은 점점 경사가 되어 바다에 면해 있을 것이다.
   대서양도 얼어붙었을까? 런던까지 4천 800킬로미터! 생각조차 하기 힘든 까마득한 거리다. 과연 대서양을 횡단하여 유럽에 도착하고 최후의 목적지인 런던까지 갈 수 있을까?
   뒤 쪽에서 눈을 밟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돌아다 보니 카알이었다.
   "카알 씨. 지상에 올라온 감상이 어떻습니까?"
   "아무렇지도 않아. 그저 놀라울 뿐이지."
   "뉴우요오크에 남아 있는 게 나을 걸 그랬지요?"
   "무슨 소리야! 잘 왔다고 생각해."
   "그런데 당신은 언제나 그렇게 생각나는대로 결정을 해 버리나요, 카알 씨?"
   카알은 피식 웃었다.
   "그렇지는 않아. 나는 오래 전부턴 생각해 왔어. 무엇인가 정열을 쏟을 만한 일이 없을까 하고. 그러나 나는 경찰관인 이상 그 일밖에는 할 수가 없었지. 그야 한 사회에는 경찰관도 중요한 자리이긴 하지. 하지만 난 그것보다 더 큰 일을 하고 싶었어."
  
   "그건 지나친 생각이지요. 사회의 질서를 지켜 줄 사람도 꼭 필요하잖아요."
   "그건 그래. 하지만 나는 경찰관이 싫어졌어. 더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뉴우요오크에는 가족이 아무도 없어. 그 때부터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자네들과 함께 지상으로 나가야겠다고 별러 온 거라네. 철문을 닫는 그 순간, 나는 이 때를 놓치면 모든 것이 허사라고 결심한 거야."
   카알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 계속 손을 부볐다. 얼굴이 추위로 빨갛게 얼어 있었다.
   "그런데 짐, 우리는 진짜 런던으로 가는 거야?"
   "네, 정말이에요. 대서양을 횡단하는 겁니다."
   "런던까지 백만 킬로미터쯤 되나?"
   "아아뇨. 불과 4천 800킬로미터밖에 안 돼요."
   "나에게는 백만 킬로나 마찬가지야. 그런데 런던에는 왜 가는 거지? 목적이 뭐야?"
   "그 곳 시민을 만나기 위해서이죠."
   "지하시민이 다시 지상시민이 되는 날이 올 겁니다. 그래서 그 협력을 구하기 위해 가는 거지요. 얼마 후에는 전세계의 얼음이 녹을 거예요."
   "이 엄청나게 많은 얼음이 녹는단 말이야? 나는 믿어지지 않는데."
   "지금 당장 녹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데이브 씨가 동결은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지구가 우주진의 구름에서 벗어났다던가요. 나는 자세한 것은 모르겠지만 앞으로 150년만 지나면 미국에 얼음이 없어진다는 거예요."
   "150년? 아이구! 그럼 우리들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야."
   "우리 시대에 희망이 없더라도 후대를 위해 준비를 해야 합니다. 구멍 속에 사는 인간이 언젠가는 지상에서 살 수 있도록 말입니다. 마치 옛날에 지하도시를 건설한 사람들이 50년, 100년, 앞을 내다보고 계획한 것과 같이요. 그 따위 게으른 시장에게 맡겨 두었다간 인류는 지하에서 썩어 가고 맙니다. 그러나 미래의 희망을 품고 모험을 한다면 머지 않아 이 미국이 에덴의 낙원으로 될 것입니다."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군. 어쨌든 따라온 것은 잘한 일이야. 저렇게 멋진 달도 볼 수 있으니 말이야."
   짐도 밤하늘에 걸려 있는 은빛의 원반을 바라보았다.
   '인간은 아주 옛날 저 달의 지면을 걸어다녔었어. 화성도 금성도 정복했었지. 그러나 뉴우요오크 사람들은 과거 300년 동안에 인류의 우주과학이 어느 정도 진보했는지, 그 누구도 알려고도 하지 않아. 열대지방의 나라에서는 지금도 우주 정기 로켓을 발사하고 있을까? 아니 어쩌면 열대지방까지 빙하가 밀려가서 우리와 같은 운명에 처해졌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우주여행은 그들에게도 한낮 꿈에 지나지 않는 일이야…….'
  
   짐은 달에서 시선을 옮겨, 끝없이 펼쳐져 있는 은백색 사막으로 돌렸다. 그리고 앞으로 일행이 겪어야 할 고난의 길을 떠올렸다.
  
   처음으로 태양을 본 사람은 카알이었다.
   "아침이다!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어!"
   짐 등은 일제히 일어나서 천막을 뛰쳐나갔다.
   "태양……."
   바안즈 박사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하얀 지평선 위로 붉은 태양이 서서히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였다. 짐은 목이 타는 것 같았다.
   '얼마나 멋진가…….'
   침을 꿀꺽 삼키며 짐은 생각했다.
   태양은 무서운 힘으로 솟아올랐다. 붉은 빛이 황금빛으로 변하자, 푸른 하늘에 간간이 떠 있는 구름을 핑크 빛으로 물들였다. 대빙원 위에 금빛 광선이 한 줄기 뻗어왔다.
   공기는 차가와서 피부를 찢는 듯했다. 짐은 코가 시렵다 못해 어찌나 아픈지 밤 사이에 코가 떨어지지나 않았나 만져 보기도 했다. 물론 아무리 춥다 해도 코가 떨어져나갈 리는 없었다.
   텟드가 태양전지 충전을 시작했다.
   바안즈 원정대 대원들은 뉴우요오크에서 가져온 인조 식품과 수재배 야채로 아침 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나자 천막을 개고 전원이 두 대의 썰매에 분승했다. 기계를 잘 다루는 텟드가 벌써 썰매 조작 기술서를 연구하여 일동에게 설명했다.
   "태양 에너지를 두 시간 흡수하면 3, 40킬로는 달릴 수 있어요. 전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다시 썰매를 세우고 한 두 시간 충전하면 됩니다. 그 동안에는 보조전원을 작동시켜서 하루쯤은 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태양이 나오지 않으면 난처해지지요. 그 점만이 이 썰매의 결점입니다."
   해가 뜬 지 두 시간 후 두 대의 썰매는 동쪽―태양을 향하여 출발했다.
   두 대의 썰매는 몇 세기 동안 창고에 틀어박혀 있었는데도 새 것처럼 잘 달렸다. 그러나 시속 22.3킬로가 고작이었다.
   짐 부자, 카알, 데이브가 앞의 썰매에 탔다. 텟드, 로이, 댐, 체트가 뒷 썰매에 탔다.
   찬바람이 동쪽에서 불어닥쳐 오자 썰매의 속도가 떨어졌다. 사람들은 썰매 안에서 웅크리고 앉아서 방한복으로 몸을 싸고 얼굴만 내밀었다. 그리고 단조로운 풍경만 물끄러미 주시했다.
   한 그루의 나무도 한 마리의 새도 보이지 않았다. 짐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런던까지 4천 800킬로, 계속 하얀 사막뿐일까요?"
   "아마 그럴걸. 바다에 도착하면 조금 다를지 모르지만 큰 변화는 없을 거다. 그런데 바다가 결빙되어 있지 않으면 큰일이야. 잘못하면 런던 행도 포기해야 될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어디로 가야 하지요?"
   카알의 물음에 박사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남쪽으로 가 보는 거지. 어쩌면 플로리다나 텍사스에서는 이미 얼음이 후퇴했을지도 모르거든. 만약 여기와 다름없다면 그대로 달려서 멕시코로 가는 거야."
   "런던은 아예 포기하고 처음부터 남쪽 나라로 가는 게 어떨까요?"
   데이브가 입을 열었다.
   "그것은 안 돼. 우리의 목표는 무엇보다도 이웃 지하도시와 연락을 취하는 거야. 남쪽 나라들은 빙기에 접어든 그 당시보다도 더욱 더 냉담해졌을지 몰라. 우리와 같이 얼음이 덮쳐 있는지도 모르는 남쪽 나라로 남하하기에 앞서 지하도시끼리 공동전선을 만들 필요가 있지, 그것이 제일 우선의 목표야."
   박사의 대답에 일동은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두 대의 썰매는 18킬로를 달린 후에 재충전을 위해 정지했다. 그 만큼 달렸는데도 하얀 풍경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출발점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육분의는 썰매가 많이 달려온 것을 나타내고 있었고 태양도 머리 위에 와 있었다.
   그런데 현재 멈춘 곳이 출발점과 다르다는 것을 한 가지 발견하게 되었다. 이 지점에 머무른 것은 바안즈 원정대뿐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평선 쪽에 무엇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시커멓고 이상한 모양을 한 것이었다. 그것이 그들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텟드가 얼음에 반사되는 눈부신 빛에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것 좀 빌려 주게."
   그는 짐에게서 쌍안경을 받아서 두 눈에 대었다.
   "동물이다! 모양이 이상하게 생긴 동물임이 분명해!"
   "인간이 아닙니까?"
   놀란 짐이 물었다.
   "아니야. 저것은 분명히 짐승이야. 무슨 짐승인지 모르겠지만 무서운 짐승 같아."
   전원이 쌍안경을 꺼냈다. 짐도 텟드에게서 쌍안경을 받아 들었다.
   정확하게 보였다. 12, 3마리의 동물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긴장한 짐은 쌍안경을 힘껏 쥐었다. 동물의 크기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비교해서 볼 만한 나무라든가 바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척 큰 것만은 첫눈에 알 수 있었다.
   인간의 신장의 1.5배는 됨직했다. 털이 덥수룩한 네 다리 동물로서 코 끝이 늘어졌고 머리에 뿔 같은 것이 솟아 나와 있었다. 이런 괴상한 것들이 지금 무리를 이루어 이 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지하 뉴우요오크에는 네 다리 동물은 한 마리도 없었다. 개나 고양이도 없었다. 인간 이외의 동물은 역사책에서만 보았을 뿐 한 번도 실지로 본 적이 없었다.
   짐승의 무리는 이따금 머리를 숙이고 얼음을 핥는 듯 했다.
   "뭐야, 저건?"
   짐이 중얼거렸다.
   "말이잖아?"
   "무슨 소리야. 말이 뿔이 난 것 보았어? 저것은 큰 사슴이 아닐까? 아니야, 순록일지도 몰라.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런 종류의 동물이야."
   동물학자인 체트가 말했다.
   "공격성이 있을까?"
   로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겠지. 성나게 만들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그런데 아무래도 먹이를 찾는 것 같군. 그렇다면 육식동물은 아니야……."
  
   "먹이? 어떤 먹이?"
   짐이 물었다.
   "이끼야, 짐. 자네는 수재배법을 배웠으니까 이끼를 알고 있을걸."
   "알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무배식물이죠."
   "그래 맞아. 얼음 속의 이끼를 먹고 있는 거야. 그런데 생존해 갈 수 있을 만큼 이끼를 먹는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일 텐데……."
   짐은 긴장감에 추운 줄도 몰랐다. 동물의 냄새가 조금씩 풍겨 왔다.
   "저 짐승들은 바람을 타고 오니까 아직 이 쪽 냄새를 맡지 못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순록은 심한 근시거든. 그렇지만 열선발사기의 준비는 해두는 게 좋겠어. 저 놈들이 놀라기라도 해서 덤벼들게 되면 모두 짓밟히고 말 거야."
   체트가 경고했다.
   그 때 갑자기 텟드가 남쪽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 쪽에서도 달려오는데!"
   전원이 일제히 남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처음에는 한 줄기 검은 선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차츰 가까와지자 선이 흐트러지면서 선명하게 보였다. 바안즈 박사가 외쳤다.
   "동물이 아니야. 인간이다!"
  

5. 빙원의 유목민

  
   순록을 쫓고 있던 사냥군은 20명 이상이나 되었다. 아직 1킬로미터쯤은 떨어져 있지만 이 쪽을 향하여 몽둥이를 휘두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빙원 유목인의 무리다."
   바안즈 박사가 침착하게 말했다.
   "우리들을 잡으러 오는 걸까요?"
   짐이 물었다.
   "그건 모르겠지만 열선발사기는 준비해!"
   사냥군들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이제 육안으로도 분명히 보였다. 짤막하고 단단한 몸집에 두툼한 모피를 걸치고 있었다.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려서인지 사람처럼 생긴 짐승같이도 보였다. 굵은 몽둥이―짐승의 뼈로 만든 것 같았다.―를 가지고 있는 자도 있고 활을 들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바안즈 일행은 상관치도 않고 짐승을 향해 돌진했다. 바람을 안고 순록을 에워싸는 대형을 만들면서 반원형으로 전개했다.
   순록 무리 가운데 제일 큰 놈이 별안간 목을 쳐들었다. 무슨 냄새를 맡은 것이 분명했다.
   대장격인 큰 순록이 불안스런 몸짓으로 얼음 위를 두어 발짝 왔다갔다 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공격자들을 노려보았다.
   사냥군들은 앞으로 30미터 정도까지 육박했다. 짐은 그 사람들의 몸집과 비교해서 처음으로 순록의 크기를 확인했다. 거대한 동물이었다. 어깨쭉지까지 2미터는 넘을 것 같았다.
   사냥군 중 한 사람이 활을 쏘았다. 한 순록의 목줄기에 정확히 박혔다. 그 거대한 짐승은 뒷다리를 들고 한 번 회전했다. 그러나 화살 한두 개로 쓰러질 짐승이 아니었다.
   사냥군들이 점점 간격을 좁혀 가자 다른 순록들이 일제히 날뛰며 짖어댔다.
   마침내 화살이 빗발치듯 날았다.
   놀란 짐승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짐은 세 마리의 순록이 무서운 힘으로 포위망을 뚫고 달리며 두 사나이를 인형처럼 받아 버리는 것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사나이들은 얼음 위에 곤두박질했다. 그러나 남아 있는 다른 순록들은 포위망 속에서 절망적으로 날뛰기만 했다. 그 짐승들에는 모두 털 깊숙히 화살이 몇 개씩 꽂혀 있었다.
   인간과 순록의 격렬한 투쟁이 계속되었다. 한 쪽 눈에 화살이 박힌 채 얼음 위를 딩구는 순록을 두 사나이가 몽둥이로 내려친다.
   수십 군데에서 피가 뿜어 나왔다. 빈사상태인 순록이 뒷다리로 일어서서 고막이 터질 듯이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양 무릎을 얻어맞은 순록은 비틀거리면서, 그래도 최후의 힘으로 공격자들을 향해 돌진해 갔다.
   다시 여섯 마리가 상처 투성이인 몸을 이끌고 도망쳤다. 그러나 나머지 세 마리는 이미 기진맥진하여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다. 사냥군들이 그 세 마리에게 모두 모여들어 남은 숨통을 끊어 버렸다. 짐은 이 잔혹한 광경에 차라리 눈을 감았다.
   3, 4 분쯤 지나자 만사가 끝이 났다. 세 마리의 순록은 구슬 같은 두 눈을 뜬 채 뻣뻣이 쓰러져 있었다.
   사냥군들은 동물 뼈로 만든 칼로 작업에 착수했다. 가죽을 벗기자 고기덩어리와 지방을 그 가죽으로 쌌다.
   그제서야 유목민들은 여덟 명의 이방인에게 다가왔다.
   세 명의 사나이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모두 키가 150센티미터도 채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어깨는 딱 벌어졌고 근육으로 당당한 양 팔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추위쯤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흰 머리에 수염을 기른 사나이가 대장인 듯했다. 뒤에 서 있는 다른 사람들은 대개 젊은이들이었다.
   흰 머리의 대장이 뭐라고 말했다.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바안즈 박사가 천천히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당신들을 방해하지 않을 거요. 사이좋게 지냅시다."
   그러자 아무 대답이 없었다. 대장 옆에 서 있던 두 젊은이는 자기들끼리 뭐라고 수군거렸다. 대장이 바안즈 박사를 노려보았다.
   "이걸 가지고 있거라, 짐."
   박사는 열선발사기를 아들에게 넘겨 주고 두 손을 펼쳐 보였다.
   "우리들은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소. 싸울 생각은 전혀 없소. 사이좋게 지냅시다."
   "……."
   대장이 뭐라고 지껄였다 박사는 비교언어학자인 댐을 돌아다 보았다.
   "뭐라고 하는 거요?"
   "본디 이 말은 영어였던 것 같군요. 그런데 지금은 변형되어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잡은 짐승을 다 묶은 사나이들이 다시 몇 명 이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험악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의심이 깊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들의 몸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났다. 하기야 얼음 천지에서 목욕 따위를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 자들은 우리가 자기들의 사냥터에 들어온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가 봐. 대장이 해치우라고 하는 것 같아."
   로이가 말했다.
   텟드가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
   "야만인들, 열선으로 해치우고 말까?"
   "열선이라니, 당치도 않아요. 우리가 침입한 것이 사실인 이상, 우리가 저들을 죽일 권리는 없어요."
   짐이 말했다.
   "그렇지만 저 놈들이 선수를 치면 하는 수 없잖아. 정당방위가 성립되는 거지."
   로이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사냥군과의 회담은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바안즈 대장과 사냥군의 대장은 서로 손짓을 하면서 의사를 전달하려고 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자네는 경찰에서 응급치료 훈련을 받았겠지, 카알?"
   "네. 구급법 정도지만……."
   "좋아, 즉시 구급상자를 들고 나를 따라와. 짐, 오해를 받게 될지도 모르니까 만약을 위해서 열선발사기로 경계하고 있거라."
   짐과 카알은 박사 뒤를 따라 순록에게 밟히어 얼음 위에 쓰러져 있는 사나이 옆으로 갔다.
   그 사람은 순록의 발톱에 채여서 머리 뼈가 부서졌고 가슴도 찢어져 피가 하얀 눈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이었다.
   "가엾지만 손을 댈 수가 없겠군. 저 사람에게로 가 보세."
   또 한 명의 부상자는 아직 숨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이 사나이도 가슴을 받히어 쓰러진 것이다. 상처 부위가 부어올랐고 피부도 보라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 외에도 몇 군데인가 상처가 있었으나 치명상은 아니었다.
   카알이 구급상자를 열었다. 메스와 핀셋과 살균용 겸자, 그리고 상처를 벌리는 리트랙트 등 의료기구를 꺼내어 재빠르게 치료를 했다. 그는 응급처치를 마치자 자신 없는 듯 말했다.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군요, 박사님. 근육조직의 접합은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아. 잘한 것 같아. 자네 덕분에 이 사람은 생명을 구했어."
   사냥군들은 번쩍번쩍 빛나는 금속 기구에 겁이 났던지 멀리서 떨어져 지켜 보고 있었다. 짐은 열선발사기를 등 뒤로 꼭 잡고 사냥군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카알은 흉부의 상처를 꿰매고 열압축기로 접합시켰다. 다른 상처도 모두 접합했다.
   잠시 후에 부상자가 꿈틀거리더니 눈을 떴다.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가슴의 상처를 더듬어 본 그는 믿어지지 않는지 눈을 크게 뜨고 생명의 은인인 카알을 올려다 보았다. 이 사나이는 죽음 일보 직전에서 살아난 것이다.
   그런 광경을 지켜 보던 사냥군들은 곧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들은 느닷없이 모두 칼을 뽑았다!
   짐은 깜짝 놀라서 열선발사기의 보턴에 손가락을 댔다. 그러나 곧 안심했다.
   사냥군들은 들고 있던 칼을 카알의 발 옆으로 모두 내던졌다. 그리고 두어 걸음 물러서더니 눈 위에 무릎을 꿇었다. 빈사상태인 동료의 목숨을 건져 준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 분명했다. 카알이 기적을 이루는 사나이로 보였던 것이다.
  
   카알은 자랑스러운 듯 활짝 웃었다. 그러자 흰 수염의 대장이 다가와서 자신의 칼을 집어던지고 그 자리에 앉아서 카알에게 존경을 뜻을 표했다. 카알은 박사를 보고 물었다.
   "어떻게 해야 되는 겁니까?"
   "대장의 칼을 주워서 던져 주게."
   박사가 말했다.
   카알과 대장 사이에 칼 던지기가 행해졌다. 이것은 바안즈 원정대와 사냥군들의 우호관계를 맺는 결연식과 같았다.
   그 후로는 그들과의 사이에 별 어려운 문제가 없었다. 흰 머리 대장은 이따금 누런 이빨을 드러내고 활짝 웃었다. 조금 전까지의 험악한 공기가 가시고 편안한 분위기가 되었다.
   박사는 자신과 일곱 명의 동료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그 손가락으로 동쪽을 가리키며 걸어가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대장이 뽐내는 얼굴로, 칼을 들어 눈 위에 선을 하나 긋고 자기의 가슴을 자랑스럽게 두드렸다. 그리고 다시 바닥을 두드리면서 현재 위치를 확인하는 듯했다. 다음에 그 선의 한 쪽 끝에서 두 개의 짧은 선을 그어 갔다. 그런 행동을 몇 번 반복했다.
   바안즈 박사가 그의 동작을 보고 그 의미를 해석했다.
   "대장은 자기네 영토 안에서는 우리들이 안전하게 여행하도록 보호하겠다는 뜻 같아. 그런데 이 대장의 영토는 앞으로 몇 킬로미터에 지나지 않나 봐."
   어느 새 카알의 응급치료를 받은 부상자는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빙원의 유목민들은 동료의 시체를 얼음 속에 매장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에 태양 전지는 계속 충전되고 있었다. 출발할 시간이 되었다.
   바안즈 박사와 그 일행은 썰매에 올라 탔다. 작별이 섭섭한 듯 유목민들은 함께 타려고 했으나 카알이 말렸다.
   썰매가 얼음 위를 미끄러져 가자 사냥군들은 넋을 잃은 사람처럼 텟드의 선조, 인디언들이 내던 괴성과 같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따라왔다.
  
   두 대의 썰매는 속력을 냈다.
   이윽고 유목민들의 모습이 작아지고 마침내는 지평선 저 쪽으로 사라지더니 시야는 다시 무인의 은백색 세계로 바뀌었다.
  

6. 바다를 향하여

  
   두 대의 썰매는 동쪽을 향해 계속 달렸다. 그 날 오후에는 인간의 모습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았다.
   태양이 머리 위를 지나고 드디어 서쪽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닥치고 온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시 32, 3킬로미터 더 달리자 태양이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일행은 썰매를 멈췄다.
   짐과 텟드와 카알은 천막 준비를 했다. 체트와 로이는 불을 피우고 조그만 합성연료를 불 속에 계속 집어던졌다. 댐과 데이브는 저녁 식사 준비를 했다. 바안즈 박사는 열선발사기를 겨누고 야영지를 순찰했다.
   여덟 명의 사나이들은 저녁 식사를 끝마쳤다. 이미 기온은 영하 30도까지 내려갔다. 전날 밤보다도 크고 밝은 달이 떠올랐다.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며 나타났다.
   대빙원의 무서운 침묵. 들리는 것은 바람소리와 얼어붙은 눈을 밟는 동료들의 발자국 소리뿐이었다. 모든 것이 영원한 동결 속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그 때 까마득히 먼 곳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왔다. 으르렁대는 소리 같았다.
   "저 소리 들리지요?"
   짐이 말했다.
   "바람소리겠지."
   데이브가 대답했다.
   "아니에요. 바람소리가 아닌 것 같아요."
   짐이 말하자 텟드가 끼어들었다.
   "그래, 바람소리와는 달라."
   그는 쌍안경으로 사방을 살폈다.
   "짐승이다! 무리를 지어 이 곳으로 달려온다! 개인가?"
   "이리일 거야. 이 불빛을 발견하고 먹을 것을 뺏으러 오는 거겠지."
   체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텟드가 열선발사기를 꺼내 들었다.
   이윽고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이 왔다. 새하얀 달빛을 받으며 한 무리의 짐승들이 날듯이 달려오고 있다.
   14, 5마리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짐은 쌍안경으로 유심히 보았다. 몹시 마른 몸에 번들거리는 붉은 혀, 침이 줄줄 흐르고 있는 턱, 쫑긋 세운 두 귀, 반짝반짝 빛나는 눈―틀림 없는 이리였다.
   '지상의 빙하지대는 죽음의 세계로 고양이 한 마리 없다고 하더니 그것은 큰 착오였어! 빙원의 사냥군들, 그리고 이번에는 이리떼…….'
   텟드가 갑자기 외쳤다.
   "썰매를 붙여서 바리게이트를 만들자!"
   전원이 두 대의 썰매 뒤로 모였다. 짐 부자, 텟드, 로이가 열선발사기를 겨누었다. 나머지 네 명은 손도끼와 칼 등을 들었다.
   한 무리의 이리떼가 전진해 왔다. 그런데 천막 가까이 다가오자 경계태세를 취하는 듯 속력을 늦추더니 살금살금 다가왔다. 드디어 공격태세로 바뀌었다.
   "보통 놈들이 아니야!"
   텟드가 속삭였다. 열선발사기 보턴에 손가락을 댄 채 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떼의 숨소리, 그리고 불꽃 같은 눈동자에서 살기의 빛이 번뜩거렸다. 드디어 7, 8미터 전방까지 다가왔다. 열선의 사정권내로 육박한 것이다. 이 때다!
   "발사!"
   박사의 명령이 떨어졌다.
   짐은 보턴을 눌렀다. 녹색 열선이 불을 뿜었다. 달려들던 이리 한 마리가 쓰러졌다. 열선을 맞은 두 다리에 불이 붙었다. 순간 털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박사가 한 마리를 죽였다. 텟드가 연속 발사로 두 마리의 이리에게 열선 세례를 퍼부었다.
   짐은 세 마리째를 죽일 때 다른 두 마리의 그림자가 바리케이트를 넘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너무 근거리에서는 이 열선발사기를 사용할 수가 없다. 보턴을 누르면 썰매까지 파괴되고 마는 것이다.
   이리는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 놓고 으르렁대며 짐에게 달려들었다. 짐승 특유의 냄새가 고약했다. 짐은 이리의 눈을 노려보고 견제하면서 열선발사기를 거꾸로 잡고 그 자루로 이리의 코잔등을 내리찍었다.
   놀란 이리는 기가 죽어서 물러섰다. 눈 위에 그 놈의 이빨이 떨어지고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피투성이가 된 이리는 4, 5미터 후퇴하고 다시 짐을 향해 공격태세를 취했다. 좋아, 이번에는 열선발사기를 사용하겠다! 짐은 보턴을 눌렀다. 이리는 뛰어오르는 순간 재가 되었다.
   한편 이리가 체트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체트는 가늘고 검은 그림자가 썰매를 뛰어넘는 순간 손에 쥐고 있던 손도끼로 이리의 옆구리를 쳤으나 뿜어 나오는 피로 손도끼가 손에서 미끄러졌다.
   체트는 몸의 균형을 잃고 얼음 위에 자빠졌다. 손도끼를 맞은 이리가 체트의 목줄기를 향하여 덤벼들었다. 체트는 그 놈의 주둥이를 두 손으로 붙잡고 필사적으로 집어던지려고 했다.
   짐은 재빨리 열선발사기를 데이브에게 던져 주고 칼을 뽑아들어 이리에게 덤벼들었다. 그리고 그 놈의 배를 힘껏 찔렀다.
   이리는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체트와 짐은 재빨리 몸을 피했다.
   "상처는?"
   짐이 물었다.
   "할퀴기만 했어."
   데이브가 짐에게서 받은 열선발사기로 날뛰는 이리들과 싸우고 있었다. 이 기상학자는 싸움의 흥분으로 평소 약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용기백배했다.
  
   데이브는 동시에 덤벼드는 두 마리의 이리를 노려보며 미친 황소처럼 괴성을 질렀다. 등줄기가 오싹할 정도로 무서운 소리였다. 그러자 이리도 기가 죽었는지 멈칫했다. 그는 이 때다 하고 열선발사기를 발사해서 두 마리를 모두 쓰러뜨렸다.
   인간과 이리의 싸움은 끝났다.
   열선발사기를 잡은 채 바안즈 박사가 전원 이상 여부를 조사했다.
   "모두 이상 없나? 로이? 댐? 텟드? 짐? 체트? 카알, 자네도 이상 없나? 좋아. 그럼 체트의 상처를 응급치료해 주게. 이제 이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언제 또 덤벼들지 모르니 오늘 밤은 철저하게 경계해야겠어.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3시간 교대로 불침번을 서지."
  
   새하얀 달빛이 싸움터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바안즈 박사와 텟드가 첫 번째 불침번이 되어 경계에 임했다.
   어느 사이에 짐은 깊은 잠에 빠졌다. 누가 짐을 흔들어 깨웠다. 데이브였다.
   "기상! 불침번 교대야. 일어나, 짐."
   짐은 겨우 눈을 떴다.
   새벽이 가까와 오고 있었다. 짐과 카알은 열선발사기를 가지고 천막 주위를 경계했다.
   달이 구름 속으로 숨었다. 하늘이 컴컴해지더니 은회색으로 바뀌고 주위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태양이 서서히 얼굴을 내밀었다.
   동료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가벼운 아침 식사를 끝내고 태양전지가 충전되기를 기다리면서 텟드가 무선기를 꺼냈다.
   "뭐 하는 거야?"
   체트가 물었다.
   "런던을 불러 보려고. 우리가 방문한다는 것을 미리 알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텟드는 다이얼을 조절해서 발신했으나 전혀 응답이 없었다. 출발시간이 되자 두 대의 썰매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다음 날은 눈이 내렸다. 회색 하늘에서 하얀 눈발이 휘날렸다. 그리고 눈송이가 점점 커져 갔다.
   '대빙원의 눈경치는 멋있긴 해도 이렇게 많이 쏟아지니…… 귀찮군…….'
   짐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입 밖에 내서 말을 하지는 않았다.
   흐린 날씨에는 태양전지의 충전이 안 되는 까닭에 여행은 중지되었다. 썰매는 22.3킬로미터 달린 지점에서 멎은 것이다. 오후 늦게야 눈이 그쳤다.
  
   눈이 온 그 다음 날은 꽤 따뜻했다. 어제 그제의 추위에 비하면 여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맑고 푸른 하늘에 금빛 태양이 빛나고 온도는 상승했다. 어제 내린 눈은 거의 녹고 썰매가 달리자 물까지 튀었다.
   썰매는 잘 달렸다. 재충전을 하기 위해 정지하기까지 60킬로나 질주했다.
   4일째 되던 날 아침, 먼 남쪽에서 유목민의 야영지가 보였다. 처음에는 지평선 끝에 검정 낱알처럼 보였기 때문에 순록이나 이리떼인 줄 알았었다. 그러나 하늘로 연기가 피어올랐다. 짐승들이 불을 피울 리는 없다. 유목민이 불을 피우는 것이 분명했다.
   "나무도 석탄도 없을 텐데, 도대체 무엇을 땐담?"
   짐이 중얼거렸다.
   "동물성 기름을 때고 있을 거야."
   텟트가 말했다.
   계속 전진하는 중에 짐은 묘한 것을 알아냈다. 빙하가 동쪽으로 약간 경사져 있는 것 같다고 느낀 것이다. 확실히 조금씩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혹시 새하얀 빙원만 줄곧 보아 왔기 때문에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짐은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확인했다. 역시 틀림이 없었다. 대지는 약간의 경사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두 대의 썰매는 약간이기는 하지만 사면을 내려가고 있었다. 착각은 아니었다.
   그 날 오후 늦게 식사를 하기 위해 썰매를 멈추었을 때 짐은 아버지에게 물어 보기로 했다.
   "아버지, 빙원이 조금씩 내려가는 것 같아요. 내 눈이 착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빗면을 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일까요?"
   아버지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눈의 착각이 아니야. 빙하의 동쪽 끝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란다. 우리들은 얼마 안 가서 빙하가 끝나는 지점에 도착하게 될 거야."
   "정말입니까?"
   짐이 묻자 아버지는 손으로 동쪽을 가리켰다.
   "저 방향이다. 우리들은 대서양에 들어서는 대륙의 끝 근처에 있는 거야."
   짐은 아버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렸다. 하얀 벌판뿐, 별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 앞에 보이는 평원은 평평하게만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경사가 져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방향의 하얀 벌판 어딘가에서 육지가 끝나고 결빙된 대서양이 이 여덟 명의 사나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대서양!
   그 건너에 목적지인 런던이 있다. 짐은 옛 지상 인류의 선조 컬럼버스 탐험대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자기 일행을, 유럽을 재발견하기 위해 신세계로부터 출발한 제2의 컬럼버스 원정대라고 생각했다. 제5빙기의 컬럼버스 원정대…….
   짐은 서쪽을 돌아보면서 대빙원을 빨갛게 물들이는 낙조를 바라보았다. 거꾸로 가는 컬럼버스 원정대가 대서양을 향해 전진을 계속할 수 있도록 내일도 빛나는 태양이 떠올라 주기를……. 짐은 기도했다.
  

7. 도오니 족의 통행료

  
   얼음세계는 여름이 멀지 않았다.
   그 다음 날도 날씨가 좋았다. 뉴우요오크의 용감한 사나이들은 밤이 새자 즉시 출발했다.
   두 대의 썰매는 경사진 얼음 위를 달려갔다. 틀림 없이 빙하는 해면을 향해 점차 경사져 있었다. 그리고 옛날에는 해저였던 대륙붕을 지금은 두꺼운 얼음이 덮고 있는 것이다.
  
   바안즈 원정대는 지상 뉴우요오크가 있던 지점, 바로 위를 통과했을 것이다. 그 대도시의 마천루는 천여 미터 얼음 밑에 질식한 채로 있을 것이다. 옛날의 해안선도 지나갔다. 대서양은 동결되어 있었다.
   빙하와 바다 경계는 분명치 않았다. 그러나 빙하의 경사가 끝나고 빙원이 수평으로 된 곳에서부터 바다가 시작되는 것이리라.
   현재의 해면은 옛날의 해면보다 수백 미터나 낮았다. 빙하의 내부에서 엄청난 양의 물이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면에는 지상의 것보다 얼음이 얇게 얼어붙어 있었다. 그 빙판이 어느 정도 튼튼한 것인가는 그 후 하루 이틀만에 알게 된 것이다.
   16킬로미터 달렸을 때 까마득한 전방에 유목민의 이글루(얼음집)가 보였다. 검은 점과 같은 것들이 지평선 위에서 아물아물 움직이는 것 같았다. 아마도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리라.
   시력이 좋은 텟드가 말했다.
   "박사님. 적어도 이글루가 12개는 되는 것 같습니다."
   "좋아, 행로를 조금 변경해서 그들을 피해 가지."
   "시간이 더 걸릴 텐데요."
   텟드가 항의했다. 박사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하는 수 없어. 썰매를 멈추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는 빠를 거야. 북쪽으로 방향을 전환해서 돌아가도록 하세."
   바안즈 원정대는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러나 돌아가는 작전은 허사가 되고 말았다. 상대방에서도 야영지를 출발하여, 두 대의 썰매를 마중이라도 하듯이 북쪽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방해할 생각인 것 같군. 100명도 넘는 것 같아!"
   체트가 말했다. 박사는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들이 불법 침범을 한 거니까……."
   "더 북쪽으로 가면 어떨까요, 아버지?"
   짐이 물었다.
   "안 돼. 그들은 어디까지라도 쫓아올 거야. 그리고 우리는 곧 재충전을 하기 위해서 썰매를 멈춰야 해. 저들과 대화를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군."
   두 대의 썰매는 다시 코오스를 동남쪽으로 돌려서 유목민의 대열 정면으로 전진해 갔다. 상대방에 가까워짐에 따라 자세히 보니 이번의 유목민은 지난번에 만났던 사냥군들보다 체격이 훨씬 크고 생김새도 험악했다. 그리고 무장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바안즈 원정대가 전진해 가는 방향에 일렬 횡대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늘어섰다. 그러다가 정열한 양 끝이 썰매를 향하여 에워싸듯 좁혀 왔다. 부채꼴의 포위대형을 만들려는 것이다.
   양 쪽의 간격이 7, 80미터로 육박했다. 빙원족들이 떠들어대는 소리가 기분 나쁘게 들려 왔다.
   "오웃!"
   별안간 100명 이상이나 되는 사나이들이 적의를 품고 손에 들고 있던 무기를 치켜들었다.―몽둥이에 칼 정도가 아니라 날카로운 뼈촉이 박힌 창이었다.
  
   데이브가 말했다.
   "지난번 사냥군처럼 다루어서는 안 될 것 같군."
   짐이 굳은 표정으로 농담을 했다.
   "구급상자를 또 준비해야겠어요."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구급치료 정도로 통할 것 같지 않다고 짐은 생각했다.
   썰매가 멈추었다. 바안즈 박사가 긴장한 얼굴로 썰매에서 내려 앞으로 걸어 나갔다. 짐은 열선발사기를 꼭 쥐었다. 박사는 이 쪽과 상대편 중간 지점까지 가서 우뚝 섰다.
   박사는 양 쪽 중간 무인지대에 서서 놀라울 만큼 큰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들은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소! 평화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소!"
   상대방의 반원형에서도 한 사나이가 나왔다. 중년의 단단한 체격을 가진 사나이로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시커먼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이 사나이도 바안즈 박사에 못지 않게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 언어는 틀림 없는 영어였다. 짐은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대들은 무슨 족인가?"
   "우리는 무슨 족도 아니오. 태양이 없는 나라에서 와서, 태양이 떠오르는 나라로 가는 길이오."
   박사가 대답했다.
   "그대들은 우리 영토에 무단히 들어왔다. 이 곳은 도오니 영토야. 불법 침입자!"
   검은 수염의 추장이 냉정하게 말했다.
   "우리는 도오니 영토를 지나서 태양이 떠오르는 나라로 갈 것이오. 당신들의 사냥을 방해하지는 않을 거요. 통과하게 해주기 바라오."
   "그럼 통행료를 지불하라!"
   "통행료?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듣겠소!"
   도오니 족의 추장은 교활하게 웃었다. 번뜩이며 빛나는 시커먼 두 눈이 두 대의 썰매에 타고 있는 일곱 명의 사나이를 훑어보았다.
   "그대의 군대 중 한 명의 생명을 요구한다. 그것이 통행료다!"
   박사의 몸이 휘청거렸다. 짐은 숨이 막혔다. 검은 수염의 추장은 도오니 영토 통행료로 동료 한 명의 생명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거절한다! 그런 엉터리 통행료가 어디 있어! 절대로 내놓을 수 없어!"
   "그러면 너희들은 통과하지 못해!"
   화가 난 데이브가 욕을 퍼부었다.
   "이 야만인들아!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를 통과시킨다고 해서 너희에게 무슨 손해가 있느냐?"
   이어서 박사가 부드러운 말투로 달래 보았다.
   "왜 구태여 인간의 생명을 요구하는 건가? 다른 통행료라면 지불하겠다……."
   "생명을 지불하라! 다른 통행료는 필요치 않아!"
   검은 수염은 안하무인으로 호통쳤다.
   "죽은 사람이 왜 필요하단 말이오? 일도 할 수 없으려니와 사냥도 못할 텐데. 그리고 한 사람의 시체라면 그대 부하들의 하루분 식량도 되지 않을 텐데…… 설마 인간의 고기를 먹지는 않겠지? 그러니 다른 물건을 주겠소."
   박사는 벨트의 칼집에서 칼을 뺐다. 칼날이 태양빛에 반사되어 예리하게 빛났다.
   "이것 봐! 이것은 무엇이든지 자를 수 있는 금속제 칼이야!"
   방한복 왼쪽 소매를 쳐들고 안감을 잘라 보였다.
   "어때? 이렇게 잘 베어지지. 자아, 이 칼을 주겠소."
   검은 수염은 이 쪽의 태도를 무시하고 침을 탁 뱉았다.
   "웃기지 마라. 그대의 칼은 무디기 짝이 없군. 내 칼은 더 잘 들어."
   "그럼 손도끼를 주겠소."
   박사가 썰매 쪽을 뒤돌아 보면서 손짓을 했다. 짐이 얼음을 깨는 데 쓰는 손도끼를 가지고 갔다. 박사가 발 밑의 얼음을 순식간에 두툼한 조각으로 잘라내 보였다.
   창을 들고 있던 도오니 족 군사들도 이것을 보자 감탄하는 것 같았다. 뼈로 만든 칼로 얼음을 잘라내는 것보다 훨씬 훌륭한 것임이 틀림 없었다. 군사들은 슬그머니 서로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나 추장만은 그까짓 게 뭐 대단하냐는 투였다.
   "이 손도끼를 통행료로 주겠소."
  
   박사가 손도끼를 내밀었다.
   "필요 없어! 통행료는 너의 군사의 생명이야. 내놓기 싫거든 빨리 후퇴해!"
   두 사람의 통솔자는 서로 무섭게 노려보았다. 숨막히는 침묵이 흘렀다.
   박사는 실망한 걸음걸이로 썰매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이야기가 안 통해. 추장은 요구 조건을 들어 주지 않으면 제 고집을 꺾지 않을 거야. 그런데 텟드, 동력 사정은 어때? 뭐라고? 앞으로 반 시간은 달릴 수 있다고? 좋아. 그럼 전진하세. 도오니 족의 영토 밖으로 나갈 때까지 정북쪽으로 방향을 잡는 거야. 비록 1주일이 더 걸리더라도 하는 수 없지."
   박사는 앞 썰매에 올라탔다. 그러나 도오니 족은 물러설 것 같지 않았다. 창을 비껴든 군사들이 썰매에서 4, 5미터 되는 곳까지 다가섰다. 추장이 뭐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갑자기 도오니 족의 군사들이 원형을 이루며 재빠르게 두 대의 썰매를 에워쌌다.
   바안즈 원정대는 창을 들고 에워싼 포위망 속에 갇히고 말았다.
   "썰매를 출발시키시오, 데이브. 열선발사기를 내게도 줘. 텟드, 로이, 짐……. 발사 준비다. 그러나 저 놈들이 공격해 오기 전에는 쏘지 마!"
  
   바안즈 박사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짐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열선발사기 보턴에 손가락을 댔다.
   100명 이상의 도오니 족을 격퇴시키는 것은 이리떼를 처치하는 것과는 사정이 다르다. 이들은 창을 비껴든 인간의 무리들이다. 짐은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다. 지금이라도 열선발사기로 그 생명들을 죽일지도 모른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다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썰매의 모우터가 회전하기 시작했고 제트 추진은 새하얀 불꽃을 토했다. 도오니 족의 군사들 얼굴마다 새로운 공포로 긴장감이 가득했다.
   "출발! 정북쪽으로 향하는 거다. 저 놈들은 틀림 없이 대열을 흐트릴 거야."
   박사가 명령했다.
   두 대의 썰매는 기어가듯 서서히 전진했다. 점점 좁혀오는 원형의 포위망 속도에 맞추어 조심스레 움직였다.
   짐의 가슴은 긴박감으로 터질 것만 같았다. 4개의 열선발사기와 100개의 창―어느 쪽이 승산이 있을까? 전투개시의 신호와 함께 4개의 발사기로 3, 40명은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다음엔 어떻게 할 것인가. 나머지 적들이 창을 던지며 달려들게 되면 그것으로 만사는 끝이 난다. 그것도 불과 몇 초 사이에 런던 행은 커녕 여덟 사람의 운명은 끝이 나는 것이다.
   썰매는 서서히 전진했다. 추장이 눈을 번뜩이며 가로막고 섰다.
   "멈춰라! 통행료를 내지 않으면 너희들 모두를 죽여버리겠다!"
   바안즈 박사가 발사기를 겨냥했다.
   "짐! 모자를 위로 똑바로 집어던져라. 알겠니? 될 수 있는대로 높게. 텟드! 드로틀 전개 준비!"
   짐은 아버지의 의도를 짐작했다. 그는 모자를 벗어서 힘껏 높이 던졌다.―모자는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도오니 족의 모든 시선은 모자를 따라서 움직였다.
   박사가 발사기를 모자를 향해 조준했다. 보턴을 눌렀다. 녹색 열선이 번쩍 빛나더니 떨어지던 모자에 맞았다.
   모자가 자취를 감추었다.
   도오니 족들은 공포의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전속 전진!"
   박사의 명령이 떨어졌다.
   도오니 족은 모두 줄행랑을 쳤다. 다만 추장만이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었다. 박사의 전진 명령과 동시에 추장이 창을 던졌다.
   뒤에서 따라오던 썰매의 텟드가 소리를 쳤다.
   "정지! 카알을 보내 줘요!"
   "누가 부상을 당했나?"
   박사가 물었다.
   "댐이 다쳤습니다. 추장의 창에 맞았습니다!"
   짐은 깜짝 놀랐다. 잊고 있었구나! 도오니 족의 포위망을 뚫는 데만 신경을 쏟느라 추장이 힘껏 던진 창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던 것이다.
   짐은 썰매 위에 서서 5, 6미터 떨어져 달려오고 있는 썰매를 뒤돌아 보았다. 댐은 접어 놓은 천막에 기대고 있었다. 가슴에 추장의 창을 맞고 방한복이 새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두 대의 썰매는 얼음 파편을 튀기면서 멎었다. 도오니 족에게선 이미 멀리 달려왔으므로 걱정할 것이 없었다. 카알이 구급상자를 들고 텟드의 썰매로 달려갔다 데이브와 짐, 그리고 바안즈가 뒤따랐다.
   짐은 그렇게 창백한 얼굴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댐은 생명이 없는 파란 인형처럼 온 몸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카알이 응급치료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에 박사가 의식불명이 된 댐의 방한복을 가위로 찢었다. 상처가 드러났다. 짐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동물의 뼈를 뾰족하게 깎은 창 끝이 심장 바로 밑에 꽂힌 것이다.
   카알이 얼굴을 들었다. 그의 얼굴도 하얗게 핏기가 가셨다. 카알은 구급법 훈련을 받은 경찰관이지 외과 의사는 아니었다. 짐은 그 장소를 떠나서 자기 썰매로 돌아갔다.
   시간이 많이 지났건만 텟드의 썰매에서 아버지와 카알은 돌아오지 않았다. 태양이 하늘 높이 떠 있었다.
   한참 후에야 돌아온 카알의 두 손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바안즈 박사는 짐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 더 이상은 손을 쓸 수가 없어. 기적에 맡기는 수 밖에……."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7명의 사나이는 얼음 속에 무덤을 파야 했다. 그리고 댐 핸논의 시체를 2미터 밑 얼음 구덩이 속에 넣고 얼음을 덮었다.
  
   사나이들은 다시 썰매에 올라타고 커다란 슬픔을 안은 채 전진을 계속했다.
   결국 도오니 족은 통행료을 징수한 것이다.
  

8. 얼음 바다

  
   다음 날 아침, 얼음판의 경사는 수평이 되었다. 드디어 대서양에 들어온 것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7명의 사나이들은 아무도 기뻐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들이 지나는 뒤 쪽에는 빙설의 북미대륙과 한 동료의 주검이 누워 있는 것이다.
   이 지점부터 바안즈 원정대의 여행 방법이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두께가 천여 미터의 얼음으로 덮인 육지를 전진해 왔지만 지금부터는 다르다. 유럽 대륙에 당도할 때까지는 언제 갈라질지 예측할 수도 없는 얼음 바다를 가야 하는 것이다.
   썰매가 달리고 있는 그 아래의 얼음 두께가 200미터인지, 단 20센티미터인지 알 수가 없다. 썰매가 무섭게 갈라지는 얼음 바다 밑으로 들어갈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바안즈 박사가 명령을 내려 두 대의 썰매가 멈췄다. 누군가 한 사람이 선두에 나서서 얼음의 강도를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한 사람의 무게를 견뎌 낸다고 해서 썰매 무게를 지탱한다고는 보장할 수 없어. 그러나 이 방법밖에 얼음의 강도를 예측할 도리가 없어. 심지를 뽑지."
   체트가 선발대 심지를 뽑았다. 그는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얼음 속에 빠지게 되거든 빨리 구해 줘야 돼."
   하고 부탁한 그는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유리 다리를 건너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계속 걸어 나갔다.
   얼마를 걷던 그는 자신이 생긴 듯 뚜벅뚜벅 힘차게 걷기 시작했다. 400미터쯤 간 곳에서 뒤돌은 그는 썰매에 있는 동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안전한 것 같아요. 박사님, 전진하세요."
   텟드가 말하자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전진하지. 그러나 따로 따로 가는 게 좋겠어. 함께 가다가 두 대 모두 빠지는 날에는 끝장이야."
   텟드의 썰매가 앞서 출발했다. 그 썰매에는 로이와 텟드 두 사람만 타고 있었다. 앞서 간 썰매가 체트에게까지 간 후에야 뒤의 썰매가 출발했다. 이 해안선 부근의 얼음은 꽤 두껍게 언 것 같았다. 수십 미터의 두께는 됨직해 보였다.
   오후 3시경 두 대의 썰매는 정지했다. 가까운 전방에 얼지 않은 수면이 보였기 때문이다. 선발대인 체트가 박사에게 보고했다.
   "바다 안의 호수입니다. 썰매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살펴보았는데 직경이 2킬로미터 정도는 될 듯합니다. 돌아갈 수밖에 없겠지요?"
   "얼음길의 맨홀이라는 편이 어울리겠는걸."
   로이가 피식 웃으며 농담했다.
   7명의 사나이들은 썰매에서 내려서 얼지 않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기묘한 일은 호수 가장자리까지 얼음이 튼튼하게 언 것이었다. 마치 거대한 인간이 커다란 숟가락으로 얼음을 찍어내서 뚫린 구멍 같았다.
   "여름철의 해빙기가 시작되고 있는 거야. 아마 따뜻한 난류가 흐르고 있는 거겠지."
   하고 설명한 데이브는 물가에 엎드려서 얼음 조각을 떼어냈다.
   "이것 봐요. 녹기 시작한 거지요? 이 구멍은 여름에는 뚫렸다가 겨울이 되면 다시 얼어붙는 거야."
   "밑바닥까지 녹아 있겠지요?"
   카알이 물었다.
  
   "그럴 것 같아. 아마 바닷물과 연결되어 있을 거야."
   데이브가 대답했다.
   짐도 구멍 가장자리에 가서 들여다 보았다. 물빛은 무척 파랬다. 손으로 물을 떠서 입에 대 보았다. 짜다. 바닷물이 틀림 없었다.
   체트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렇지. 낚시질을 해보자!"
   전원이 웃었다. 그러나 체트는 정색을 해서 다시 말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동물학자이면서도 진짜 물고기를 관찰할 기회가 없었어. 단지 책에서 그림으로만 보았을 뿐이지. 그리고 물고기를 잡게 되면 먹어도 맛이 좋을 거야……."
   "어느 쪽이 진짜 목적이지? 관찰인가? 먹는 쪽인가?"
   로이가 껄껄대며 웃었다.
   "둘 다……."
   체트는 계면쩍게 웃고 썰매로 달려갔다. 그리고 짐 속에서 10미터쯤 되는 가느다란 철사줄을 찾아냈다. 철사줄 끝을 낚시바늘처럼 구부리고 미끼로 인조고기를 꿰었다. 그는 물가에 서서 임시 낚시줄을 물 속에 넣었다.
   짐은 군침을 삼키면서 지켜 보았다. 짐도 역시 모든 생물은 놀랍기만 했다. 물고기를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비늘도 만져 보고 싶고 지느러미라는 것도 관찰하고 싶었다.
   그러나 10분이 지나도 낚시줄은 꼼짝하지 않았다.
   짐이 포기하고 썰매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텟드가 무선기 다이얼을 조정하고 있었다.
   갑자기 무선기가 수신되었다.
   "이 곳은 런던. 이 곳은 런던. 그 곳은? 여보시오!"
   "이 곳은 뉴우요오크! 레이몬드 바안즈 원정대의 텟드 캬리슨. 그 쪽은 노엘 헌트인가?"
   "무슨 소린지 잘 들리지 않는다, 뉴우요오크."
   "거기는…… 노엘…… 헌트인가?"
   "그렇다. 계속 말하라, 뉴우요오크. 이제 잘 들린다."
   텟드가 팔을 풍차처럼 돌리면서 동료들에게 신호를 했다. 체트만 빼놓고 모두 무선기 주위에 모여들었다.
   "뉴우요오크를 출발했다고? 사실인가?"
   "사실이다. 일행은 8명, 아니 7명, 목하 빙원을 횡단하여 런던을 향하고 있다."
   "공식 파견대인가?"
   텟드는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바안즈 박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박사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비공식이다. 이미 우리 원정대는 240킬로미터나 전진했다. 그 곳에는 1개월 후에 도착할 예정."
   "어떤 방법으로 여행하고 있나?"
   "두 대의 빙상 썰매로 전진하고 있다."
   "빙상 썰매? 그럼 수역은 어떻게 넘지?"
   "수역이라니? 수역이 뭔가?"
   "대서양을 말한다."
   "바다는 지금까지 온 것으로 보아 얼어 있다. 횡단할 수 있을 것 같다. 곧 만나게 될 것이다, 런던."
   "그런데 왜 이 곳에 오나? 방문 목적은?"
   "목적?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연락재개를 위해서지. 서로 350년 이상이나 땅 속에서 고립되어 있었잖나? 하여간 바안즈 원정대는 그 곳을 향하여 전진한다."
   상대는 잠시 침묵했다. 짐은 얼굴을 긴장시켰다.
   '왜 런던은 우리를 격려해 주지 않는 것일까? 우리들의 여행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잠시 후에 텟드가 다시 불렀다.
   "아직 수신하고 있나, 런던?"
   "수신하고 있다. 그런데……. 좋다. 알았다. 그 곳의 의도는 알겠다. 뉴우요오크, 그럼 이상 교신을 끊겠다."
   "여봐, 기다려! 런던!"
   텟드가 외쳤으나 상대방은 교신을 끊었다. 런던은 호의를 갖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더욱 확실해졌다.
  
   출발시간이 되었다. 체트가 보이지 않았다. 동물학자 체트는 점심 식사도 잊은 채 아직도 물가에 서서 낚시질에 여념이 없었다. 텟드가 빈정대며 말했다.
   "체트는 물고기를 잡아서 점심 식사로 대신할 건가?"
   "그런데 아직 한 마리도 못 잡았으니 점심을 굶어야겠군."
   로이도 빈정거렸다. 체트는 동료들의 농담을 무시하고 낚시에만 열중했다. 그 때 갑자기 낚시줄이 움직였다.
   "잡혔다!"
  
   체트가 외쳤다.
   "그럼 빨리 줄을 끌어당겨. 고래라도 잡혔으면 내가 도와 주지."
   텟드가 여전히 비웃었다. 낚시줄을 끌어 올렸다. 10센티 정도의 물고기가 인조고기 미끼를 물고 올라왔다. 구경하던 일동이 일제히 웃었다. 체트는 실망한 나머지 관찰도 하지 않고 그 물고기를 물 속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기다려요! 보여 주세요!"
   짐이 달려가서 물고기를 손바닥에 올려 놓았다. 귀엽게 빠진 몸통에 잔잔한 비늘이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손에 닿은 촉감이 뭐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물고기예요, 물고기."
  
   "짐. 어떻게 된 게 아니니? 물고기가 어떻게 되었다는 거야?"
   텟드가 말했다.
   "이건 감격적인 일이에요! 서기 2300년 이후 뉴우요오크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물고기를 실제 눈으로 본 사람은 우리가 처음입니다."
   "쳇, 그랬던가……?"
  
   그 날 늦게 바안즈 원정대는 아주 이상한 종류의 동물과 만나게 되었다. 예의 '호수'를 피하여 돌아서 가던 길이었다. 두 대의 썰매가 물가에서 120여 미터쯤 달려가고 있자니, 그 동물이 물 속에서 상반신을 내밀고 짐 등을 지켜 보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동물이었다. 큰 머리에 두 개의 이빨이 돌출해 있고 앞다리는 몸통과 나란한데 발은 물갈퀴로 되어 있었다. 짐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게 뭐지요?"
   "해마……일 거야. 바다표범 종류지. 찬물을 좋아하고 옛날에는 북극지방에서 살던 바다동물이야."
   체트가 대답했다. 짐은 열선발사기의 보턴 위치를 확인했다.
   "공격성은?"
   "없을 것으로 생각하네. 해마는 조개, 새우, 개 따위를 먹고 살기 때문에 인간을 해치지는 않을 거야."
   "정말 적의는 없는 것 같군."
   로이가 바다동물을 유심히 살피면서 말했다.
   그 날 늦게 일행은 또 한 번 해마를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의 만남은 조용한 만남이 아니었다. 해마가 인간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모피를 입은 사냥군의 한 무리가 해마를 얼음 위로 유인해 내고 물로 돌아갈 퇴로를 막은 다음, 날카로운 창으로 찌르고 있는 것이었다.
   해마 사냥 현장에 다가간 두 대의 썰매는 전속력으로 그 곳을 빠져나갔다. 창을 휘두르는 빙원의 주민들은 도오니 족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사냥군들은 해마 잡기에 열중하여 썰매가 지나가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해마는 4미터 정도나 되는 큰 몸집을 뒤척이며 공격자에게 무서운 콧바람을 불었으나 사냥군들의 집중적인 공격에는 지쳐 버린 듯 곧 움직이지 못했다.
   짐은 달리는 썰매에서 그 현장을 돌아보면서 슬픈 생각에 사로잡혔다. 저 죄 없는 해마가 피투성이가 되어 불쌍하게 죽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감정은 가지지 말자.'
   짐은 자신에게 타일렀다. 인간은 먹지 않으면 살아 가지 못한다. 더구나 얼음의 세계에서는 수재배 농장도 없으려니와 인조식 제조공장도 없지 않은가. 해마가 희생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미 전쟁은 끝이 났다.
   그런데 갑자기 사냥군들 가운데 두 사나이가 달려 나왔다. 그리고 큰 소리를 지르면서 썰매를 쫓아왔다.
   "정지!"
   박사는 명령했다. 데이브가 깜짝 놀란 얼굴로 쳐다보았다.
   "저 두 사람은 창을 안 갖고 있어. 하여간 썰매를 세우고 상대방의 행동을 보기로 하지."
   데이브가 썰매를 멈췄다. 텟드도 속도를 줄였다.
   "여행하는 자여! 기다리시오!"
   쫓아오고 있는 사냥군들은 영어로 외쳤다. 두 사람 모두 키가 크고 어딘가 품위가 있어 보였다. 빙원의 야만인답지 않았다. 짐승 가죽을 두른 뉴우요오크 시민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았다.
   30세 가량 되었을 듯한 금발 사나이가 말했다.
   "왜 당황해서 도망치는 거야. 손님이면 손님답게 행동하시오!"
   "손님? 알 수 없는 일이로군."
   박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금발 사나이는 사냥 현장을 가리켰다.
   "우리는 사냥할 때 구경한 사람에게는 사냥한 것을 나누어 주게 돼 있소. 그러므로 우리는 당신들을 손님으로 모시지 않으면 안 되오. 왜 도망을 치는 거요?"
   박사가 얼굴을 긴장시켰다.
   "우리는 당신네 관습을 모르고 그랬소. 그리고 우리가 도중에 만난 사냥군 가운데는 우리의 동료를 죽인 일도 있고……."
   "어디에 있는 어떤 놈들이오?"
   "도오니 족이라고 합디다."
   "쳇, 그 놈들은 야만족이오."
   금발의 사나이가 외치자 또 한 사나이가 해안 쪽을 향하여 주먹을 휘둘렀다.
   "도오니 족은 거친 종족이오. 그 누구든 놈들과 만나게 되면 무사히 통과하지 못하오. 그러나 우리들 쟈아지 족은 다르오. 자아, 갑시다. 당신네들은 훌륭한 손님이오."
  

9. 쟈아지 족의 환영회

  
   금발의 사나이는 쟈아지 족 추장의 아들로서 케나아트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케나아트는 바안즈 원정대 일행을 손님으로 대접하려는 것 같았다.
   쟈아지 족의 사나이들은 거의가 금발이었고 눈은 파랬다. 카알도 금발에 파란 눈의 소유자였으므로 카알은 그들의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당신도 쟈아지 족의 혈통인가?"
   "글쎄……, 모르겠는데."
   "우리들과 똑같군. 그럼 어느 종족이야?"
   "저어, 뉴우요오크의…… 경, 경찰족이야."
   "경찰족? 그런 종족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들었는데? 그건 그렇고 북쪽에서 왔나?"
   "아니, 북쪽이 아니야."
   카알이 도와달라는 표정으로 짐을 바라보았다. 짐이 대답했다.
   "우리는 서쪽에서 왔어요. 태양이 떨어지는 쪽에서요."
   "서쪽에서 왔다고? 그럼 벽지에서 왔단 말인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우리의 손님이 된 이상 거짓말을 하면 못써! 어디서 왔나?"
  
   "우리는 서쪽에서 왔지만 벽지가 아니에요. 뉴우요오크라고 하는 얼음 속의 도시에서 왔어요."
  
   케나아트는 놀란 나머지 말도 나오지 않는 듯했다.
   "얼음 속의 도시라고? 나를 놀리고 있는 거겠지?"
   "놀리다니요. 4, 5일 전에 얼음 속 도시에서 나와 동쪽으로 가는 길입니다."
   "얼음 속의 도시라! 그것은 가롤르드 노인의 이야기에 나오는 곳이야. 실제로 그런 곳이 있을 리 없어! 거짓말하지 마라, 손님이여!"
   그러나 케나아트는 금방 입술을 꼭 깨물며 떨었다. 그리고 짐의 볼에 거친 손가락을 대 보았다.
   "그대의 피부는 부드러워. 우리들과는 달라. 그리고 이상한 이야기만 하는군……. 모두가 처음 보고, 듣는 것 뿐이야. 정말로 얼음 속에서 왔나?"
  
   "정말이고 말고요."
   짐이 분명하게 대답했다.
   한 시간 후, 바안즈 원정대와 사냥군 일행은 쟈야지 족의 야영지에 도착했다. 태양이 떨어지고 황혼이 깃들었다. 쟈아지 족은 호수 반대 쪽에 야영하고 있었다. 30개 이상의 이글루가 버섯처럼 나란히 서 있었다.
   7명의 손님이 야영지에 들어가자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아이들은 썰매와 짐을 만져 보고는 무척 신기해 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모여 서서 웅성웅성 뭐라고들 떠들었다.
   "벽지 족은 아닌 것 같아."
   "얼음 속 도시에서 왔대."
   케나아트는 뉴우요오크의 손님들을 야영지 중앙에 있는 이글루로 데리고 갔다.
   "우선 아버지와 만나도록 합시다. 그런 다음에 연회를 열겠소. 이 곳에서 잠깐 기다려 주시오."
   케나아트는 그 이글루를 가리키면서 그렇게 말했다.
   이글루 안에는 오일 램프에 불이 켜져 있었다. 정면 벽 앞에는 세 사람의 노인이 앉아 있는데 호우크스 시장처럼 주름 투성이로 90세 이상 되어 보였다.
   가운데 앉아 있는 가장 근엄한 듯한 노인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잘 와 주었소. 나는 쟈아지 족의 추장 로울린이오. 아들 케나아트로부터 들었는데 손님들은 얼음 속 도시에서 왔다고요? 뉴우요오크 족? 난 그런 종족은 알지 못하지만 여기 있는 가롤르드의 이야기에 의하면 먼 옛날에 멸망한 도시의 하나인 듯하구려. 그게 사실인가요?"
   바안즈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들은 먼 서쪽의 얼음 밑에 있는 뉴우요오크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동쪽의 런던이란 도시로 가는 길입니다."
   "뉴우요오크 족은 몇 명쯤이나 되오?"
   "80만 명."
   로울린은 너무나 놀라서 입을 크게 벌렸다. 그는 곧 옆에 있는 고목과 같은 상담역에게 물었다.
   "그 수는 어느 정도를 가리키는 건가, 가롤르드?"
   가롤르드 노인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저어, 80 백 백 배일 거요, 추장."
   "80…… 백…… 백 배라……."
   로울린은 다시 한 번 천천히 반복했다.
   "80 백 백 배!"
   갑자기 추장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아들에게 호통을 쳤다.
   "케나아트, 너는 나를 놀리려고 이 여행인들을 데려 왔느냐? 80 백 백 배? 나는 그런 바보가 아니야!"
   케나아트가 부드럽게 말했다.
   "전세계를 다 다녀 보아도 그 만한 사람은 없어. 그런데 뉴우요오크 족만으로 80 백 백 배! 그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야."
   "거짓이 아닙니다, 추장. 뉴우요오크는 큰 도시입니다. 지하로 몇 킬로미터나 되는 통로가 연이어 있어요. 얼음이 덮치기 전까지는 80 백 백 백 배의 인간이 살고 있었답니다."
   박사는 대답했다.
   로울린은 다시 두 사람의 상담역과 의논한 끝에 겨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좋소. 당신들을 손님으로 결정했소. 단 한 가지 80 백 백 배 이야기를 더 들려 주시오. 케나아트! 연회 준비를 해라!"
   세 명의 노인들은 젊은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서 불 옆에 가서 앉았다. 7명의 손님도 케나아트가 장로들의 양 쪽으로 갈라서 앉혔다. 이글루 밖에는 전 쟈아지 족의 남자들이 집합하여 얼음 위에 짐승 가죽을 깔고 앉았다.
   '날고기를 먹으라면 어쩌지?'
  
   짐은 은근히 걱정이 되었으나 그것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쟈아지 족은 요리를 해서 식사를 내놓았다.
   생전 요리가 나왔다. 30센티미터나 되는 큰 물고기였다. 텟드가 짐에게 속삭였다.
   "물고기를 보고 싶어 했지? 좋은 기회다."
   케나아트가 짐에게 물었다.
   "뉴우요오크에서는 물고기를 어떻게 해서 먹나?"
   "물고기는 없습니다. 동물이라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케나아트는 깜짝 놀라는 듯했다.
  
   "물고기도 동물도 없다면 무엇을 먹지?"
   "수재배한 야채라든가 합성한 식료품 따위를 먹습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으시죠?"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군. 나는 들어 본 일조차 없어."
   고기 요리가 나왔다. 짐은 망설였다. 그러나 뼈로 만든 칼로 고기를 잘라서 입에 넣었다. 맛이 이상했다.
   "아까 잡은 해마의 심장이야. 맛있지?"
   짐은 토해내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참고 꿀꺽 삼켰다. 손님 입장에 그래서는 안 돼지, 참고 열심히 먹자.
   쟈아지 족의 소년이 손님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고기를 접시에 덜어 놓았다. 짐의 아버지는 아들의 식성에 놀랄 뿐이었다.
   연회가 끝났다. 짐은 지금까지 먹은 것이 목구멍으로 넘어올 것만 같았다.
   추장 로울린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우리들은 오늘 밤, 먼 서쪽 뉴우요오크라고 하는 얼음 속 도시에서 온 손님과 자리를 같이 했다. 그 도시에는 80 백 백 배의 인간이 살고 있다!"
   전원이 웅성거렸다. 로울린이 헛기침을 하며 신호를 하자 젊은이 두 사람이 생가죽에 싼 물건을 지고 들어왔다.
   "손님, 우리들의 우정의 표시요. 받으시오."
   7명의 사나이 앞에 갖가지 물건이 놓여졌다. 창 두 벌, 멋진 뼈칼, 모피, 쟈아지 족의 여성이 정성껏 수놓은 샌들…….
   이번에는 뉴우요오크 족의 추장이 로울린 이하 모두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우리들도 여러분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선물도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그 답례로 대단치는 않지만 이것을 드리겠으니 받아 주십시오."
   이번에는 짐이 선물을 늘어 놓았다. 도끼, 칼, 방한복 한 벌, 무선기 고장난 부품 등…….
   로울린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선물을 하나하나 만져 보았다.
   "훌륭한 물건들이오, 고맙게 받겠소."
   선물 교환이 끝나자 가롤르드 노인의 영가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어떤 연회 때나 반드시 볼 수 있는 중요 행사의 한 가지였다.
   가롤르드 노인이 무슨 말을 읊고 있는 것인지 손님들은 정확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쟈아지 족의 사투리가 이상하기도 했고 노인 특유의 쉰 목소리 때문이기도 했다.
   짐은 멍청히 서서 듣고 있는 동안에 의미가 짐작되는 문구가 한두 개 있었다. 그는 흥미로와서 귀를 곤두세웠다.
   가롤르드 노인이 묘하게 가락을 붙여서 부르고 있는 것은 역사의 사실을 읊는 일종의 서사시와 같은 것이었다. 문자가 없는 얼음 세계에서는 사람의 입으로 역사를 전하는 길밖에 없었던 것이다.
   쟈아지 족의 모든 남자들도 가롤르드 노인의 시귀를 모두 암송하고 있는 것 같았다. 노인이 읊고 나면 전원이 그것을 받아서 외우는 것이다.
   가롤르드 노인의 영가는 얼음이 덮치기 전의, '백 백 배'의 사람들이 살고 있던 대도시의 이야기에서 시작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도시의 이름은 수백 년 동안 반복해서 외우는 동안에 변하여 이상한 발음이 되었다.―뉴우요오크가 나이요크로, 시카고가 치야고로, 필라델피아가 필라필라로…….
   노인은 계속 읊었다.
   "대지는 나무들로 싸였고 들에는 풀이 무성했으며, 고속도로에는 자동차가 달리고 하늘에는 비행기가 떴었다네……."
  
   "하늘에는 비행기가 떴었다네……."
   전원이 따라서 외웠다.
   '쟈아지 족들은 뜻도 모르는 채 외우고 있는 거야. 나무, 풀, 고속도로, 자동차, 비행기 따위가 무엇인지 알 까닭이 없지.'
   그렇게 생각한 짐도 책에서만 그런 것들을 보았을 뿐이었다.
   노인은 영가를 계속 불렀다.
   "……이윽고 얼음이 덮쳐 와서 들과 산과 도시를 매몰하고……."
   그래서 인간은 땅 속으로 피해 들어가거나 남쪽으로 도망했다. 그러나 신의 은총으로 큰 눈은 멎었고 최악의 사태는 끝이 났다. 제일 먼저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시이 족, 쟈아니 족, 닝글랜드 족, 캬로라이나 족 등의 해상 족이었다.
   대동결 속에서 살아 남은 다른 종족도 차례로 돌아왔다. 이 대목에선 잘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노인은 벽지 족, 해양 족, 사면 족 등의 타종족에 대해서 읊었던 것이다.
   그리고 길고 긴 서사시는 일단 과거로부터 미래로 뛰어넘는 예언으로 바뀌었다. 즉 세계는 다시 따뜻해지게 될 것이고 쟈아지 족이 지상의 낙원에 사는 날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백 백 배의 사람들이 땅 속에서 돌아와 우리 일족에게 기적을 가져다 주고 서로 사이좋게 지낼 날이 반드시 오도다……."
   여기서 쟈아지 족의 사나이들은 어리둥절해서 받아 부르던 것을 중단했다. 가롤르드 노인은 전해 내려오던 이야기를 끊고 엉뚱하게 자신의 창작을 흥얼거린 것이다.
   가롤르드 노인은 즉흥시의 명인인 것 같았다. 얼음 속 도시에서 온 손님들과 쟈아지 족과의 해후 광경을 한 마디 막힘 없이 유창하게 읊은 것이다. 영가는 거기서 끝났다.
   쟈아지 족 사나이들과 손님들이 감격의 갈채를 보내자 노인은 그 자리에서 자빠지고 말았다. 영창을 부르기에 기진맥진한 것 같았다.
  
   축하연 행사도 끝이 났다. 케나아트가 말했다.
   "손님들은 아버지 집으로 와 주시오."
   뉴우요오크의 사나이들은 케나아트와 로울린, 그리고 두 명의 상담역 뒤를 따라 추장의 이글루로 들어갔다.
   로울린이 박사에게 물었다.
   "손님들의 목적지인 런던이란 도시는 여기서 가까운가요?"
   "아아뇨. 이 바다 건너인데 40 백 백 배 킬로미터 이상이나 된답니다."
   "너무 멀군요! 손님. 이 바다를 건너서 그렇게 먼 곳까지 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저 썰매는 얼지 않은 바다도 건널 수 있나요?"
   "얼지 않은 바다? 건널 수 없습니다."
   "그럼 런던에는 갈 수 없습니다. 무리입니다. 갈 수 없어요."
  

10. 박빙 지대

  
   "그럼 이 넓은 바다는 중앙부가 얼지 않았나요?"
   "그럼, 얼지 않고 말고요."
   짐은 그 말에 바다 속 깊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대서양은 얼지 않은 것이다! 애써 여기까지 왔는데…….
   박사 역시 갑작스런 절망에 몸을 떨었다. 그는 낮은 소리로 힘없이 물었다.
   "지금까지 얼지 않은 바다를 건넌 사람은 없었나요?"
   그러자 케나아트가 대답했다.
   "바다를 건넌 사람이 있기는 하오. 그 자들은 나무로 배를 만들어서 건넜소."
   "나무배?"
   "뱃놈들이오. 그 놈들은 남쪽 나라에서 나무를 가져다가 배를 만들죠. 그리고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 얼지 않은 바다를 쏘다니고 있다오. 그러나 그 놈들은 말할 수 없는 야만인들이오."
   "추장, 그 뱃놈이란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바다를 건널 수는 없을까요?"
   박사가 부탁해 보았다.
   "안 돼요. 그 놈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아요. 설령 그들에게 사정을 하려고 간다고 해도 얇은 얼음 위를 어떻게 지나가겠소? 손님들은 얇은 얼음을 분별할 줄 아시오?"
   7명의 손님들은 실망한 나머지 얼굴만 마주보았다. 뱃사람들은 야만인이라 해도 같은 인간이다. 설득을 하면 들어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얇은 얼음은 분별할 길이 없다.
   "피해서 가는 길이 있기는 하오. 얼음에서만 사는 우리로선 그 곳을 알고 있지만 뉴우요오크의 손님들이 그 곳을 어떻게 알겠소?"
   이글루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느닷없이 케나아트가 외쳤다.
   "내가 길 안내를 맡겠소."
   "네가?"
   "네, 아버지. 뱃사람이 배를 몰고 오는 곳까지만 내가 손님들을 안내해 가겠습니다. 그 다음은 손님들이 알아서 가야죠."
   가롤르드 노인과 또 한 명의 상담역이 추장의 긴 소매를 잡아끌더니 뭐라고 속삭였다. 로울린 추장이 끄덕였다.
   "케나아트, 너는 우리 쟈아지 족의 사냥 대장이야. 그리고 앞으로는 추장이 될 사람이다. 그런 너에게 만약의 사고라도 생기면 나는 어떻게 하지? 너는 외아들이 다. 절대로 갈 수 없어!"
   케나아트의 얼굴에 가는 경련이 일었다.
   "이 사람들은 중요한 손님들입니다. 함께 불도 쪼였고, 함께 식사도 했어요."
   "그렇지만……."
   "다른 사람이라도 추장이 될 수 있어요. 손님들이 이렇게 난감한 궁지에 처했는데 대장부로서 겁을 먹고 주저할 수 없습니다. 모르는 체할 수는 없단 말입니다."
   로울린은 눈을 감았다. 상담역들이 또 추장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이번에는 추장이 그들을 뿌리쳤다.
   "좋아. 결정했다. 케나아트가 손님들의 길 안내를 한다!"
   그러나 박사는 두 손을 저으며 사양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추장의 아들을 데리고 갈 수 없습니다. 다른 청년을 안내역으로 내줄 수 없겠습니까?"
   "안 돼! 내가 데리고 온 손님이니까 데리고 가는 것도 나야!"
   로울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권리는 케나아트에게 있소. 손님들은 거절할 권리가 없소."
  
   다음 날은 화창한 날씨였다. 두 대의 썰매는 속력을 내서 달렸다. 선두의 썰매에 길 안내역 케나아트가 타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걱정도 없었다. 10시에 썰매를 세우고 가벼운 식사를 했다. 쟈아지 족의 야영지에서 벌써 65킬로미터나 전진해 온 것이다.
   사방팔방이 번쩍이는 얼음뿐이었는데 이 곳에서 처음으로 몇 마리의 새가 나는 것을 보았다. 얼지 않은 바다 가까이 왔다는 증거였다. 짐은 푸르른 하늘을 나는 새를 보고 가슴 벅차게 감동을 했다. 뉴우요오크를 나온 후에, 아니, 태어난 후 처음으로 새를 본 것이다.
   케나아트는 맛있게 말린 고기를 씹고 있었다.
   "그런데 케나아트 씨. 얼지 않은 바다까지는 며칠이나 걸릴까요?"
   케나아트는 한참 생각했다.
   "글쎄. 지금과 같은 상태로 달리면 7일 안팎일걸."
   "그럼 쟈아지 족의 사람들이 썰매 없이 걸어서 간다면 얼마나 걸릴까요?"
   "30일은 걸리지."
   "30일이나? 그렇게 많이 걸릴 줄은 몰랐어요. 케나아트 씨 미안합니다."
   "그런 소리 하지 마!"
   "그렇지만 혼자서 돌아갈 때는 30일씩이나……."
   케나아트는 빙그레 웃었다.
   "쟈아지 족의 사나이는 15세가 지나기 전에 여행을 갔다 와야 하지. 12개월은 종족에게 돌아오지 못하게 되어 있어. 도중에 돌아왔다가는 목이 달아나지. 그러므로 사냥이나 낚시질을 해서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거야. 그리고 무사히 돌아오면 한 사람의 사나이로서 인정을 받게 되는 거지. 이것은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끄덕도 하지 않고 대처해 나가는 힘을 기르기 위한 훈련이야."
   짐은 단 혼자서 빙원을 헤매는 쟈아지 족의 소년을 생각하며 몸부림을 쳤다.
   "매년 4, 5명은 돼. 그러나 그들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치고 곧 잊어 버리지."
  
   쟈아지 족의 야영지를 출발한 지 사흘이 지났다. 이제 빙상의 여행에도 익숙해져서 추위도 천막 속의 잠자리도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케나아트의 안내역은 아주 훌륭했다. 두 대의 썰매는 계속 나타나는 박빙지대를 피하여 갈지자로 전진했다. 물론 케나아트는 자석이나 방향 탐지기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케나아트는 이따금 썰매를 세우고 전방의 빙면을 뚫어지게 노려본다. 그리고 뭔가 입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썰매의 방향을 곧 바꾼다. 잠시 달리다가 뒤돌아보면 조금 전에 피해 온 자리에 무서운 얼음의 균열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그처럼 구별할 수 있는지 뉴우요오크의 사나이로선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4일째 되는 날, 케나아트가 긴장된 표정으로 경고를 내렸다.
   "여기서부터는 정말 위험해요. 얼음이 언제 갈라질지 나도 모르오."
   케나아트까지 자신을 갖지 못하는 위험지대로 접어들었다. 지금까지 7명의 사나이들은 케나아트가 있기 때문에 마음을 놓고 있었다. 얼음이 갈라져서 떨어진다면 그 속에는 심장이 얼어붙는 죽음의 찬물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얼음의 두께가 1킬로미터는 되겠지 하는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기다리시오. 어느 누구도 썰매 밖으로 나오면 안 돼요."
   케나아트는 재빨리 걸어갔다. 어깨가 딱 벌어진 케나아트의 뒷모습이 점점 작게 보였다. 텟드가 쌍안경으로 빙원 위의 한 점을 추적했다.
   "케나아트는 뭐하고 있는 거지?"
   카알이 물었다.
   "얼음 위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나 봐."
   텟드가 대답했다.
   20분쯤 있다가 케나아트가 돌아왔다.
   "얼음의 상태가 아무래도 이상해. 나는 얼음의 부르짖음을 들었어요. 인간의 피를 봐야겠다고 하더군. 그렇지만 주의해서 전진할 수밖에 없지. 얼지 않은 바다는 멀지 않았으니까요."
   두 대의 썰매는 기듯이 아주 느린 속력으로 전진했다. 케나아트가 말한 얼음의 부르짖는 소리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사실 그 때 천둥 소리와 비슷한 큰 소리가 났건만 케나아트는 못 들은 체했다.
   5일째 되던 날 아침, 기온이 더욱 상승했다. 한 시간쯤 전진했을 때 케나아트가 썰매를 정지시켰다.
   "여기부터가 제일 위험해! 우리들은 걸어서 전진합시다. 썰매는 뒤에서 따라오게 하고. 알겠소?"
   운전을 하기 위해서 카알과 데이브가 각각 썰매에 남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내렸다. 케나아트는 일행에게 역V자 모양의 대형을 이루게 하고 자신이 그 선두에 섰다. 다른 사람들은 그 뒤를 양 쪽으로 따랐다.
   역V자 대형은 그대로 전진해 갔고 두 대의 썰매가 그 뒤를 따랐다. 기온은 불안스레 더욱 상승해 갔다.
   점심 식사가 끝나고 한 시간쯤 지났을 때 갑자기 무서운 사건이 일어났다.
   케나아트는 멀리 선두에서 전진하고 있었다. 짐과 체트가 그의 뒤 26미터 지점에서 양 쪽으로 나란히 따르고, 다시 그 뒤를 박사, 로이, 텟드, 두 대의 썰매가 따르고 있었다.
   그 때 별안간 무엇인가가 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격렬한 물소리…….
   그러나 짐은 귀에 들어온 소리의 의미를 금방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깊은 잠에서 깬 사람처럼 서서히 반응을 일으켰다.
   짐의 왼쪽 얼음이 깨진 것이다. 그 순간 시커먼 물이 올라오며 사람의 손이 보였다……. 그 뿐이었다.
   짐은 깨진 얼음 쪽으로 달려갔다.
   "체트!"
   "안돼! 짐!"
   케나아트가 외쳤다.
   짐이 우뚝 서서 돌아보니 케나아트가 달려오고 있었다.
   "체트 씨가 빠졌어요!"
   짐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케나아트가 쫓아와서 짐의 목덜미를 뒤에서 잡았다. 짐은 뿌리치려고 했으나 케나아트의 손힘은 강철과 같았다.
   "이거 놔요! 체트 씨를 구해야 돼요!"
   케나아트는 냉정하게 말했다.
   "체트는 죽었어! 너도 죽고 싶으냐?"
   "아직 살릴 수 있어! 놔!"
   짐은 양 팔꿈치로 케나아트를 뿌리쳤다. 그러나 쟈아지 족의 사나이는 짐의 목덜미를 꼭 쥔 채 팔을 비틀었다. 짐은 하는 수 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케나아트는 팔을 풀어 주었다.
   깨진 얼음판은 다시 깜쪽같이 맞붙었다. 이제 체트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조차 없게 뇌었다.
   "그 손님은 죽었어. 얼음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람을 집어삼킨다. 그대가 도우려 하다가는 함께 죽고 마는 거야. 두 사람 모두 죽을 필요는 없지."
   케나아트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절망의 침묵이 사나이들을 엄습했다. 아무도 일순간의 악몽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또 한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짐꾼 동료의 생명을 삼킨 얼음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텟드가 주먹을 불끈 쥐고 얼음바닥을 아프게 내리쳤다.
   바안즈 박사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 저었다.
   "어떻소, 케나아트? 전진을 계속해도 괜찮겠소? 나는 더 이상 희생자를 내고 싶지 않소만……."
   "여기서 중단할 수는 없잖습니까? 이 위험한 고비만 빠져나가면 틀림 없이 얼지 않은 바다로 나가게 됩니다. 얼음은 희생물을 삼켰으니까……. 더 이상은 욕심내지 않을 겁니다."
  
   사나이들은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전진을 계속했다.
   체트의 시체는 얼음 무덤에 묻어 줄 수도 없었다. 뉴우요오크의 사나이들은 한낮 빙원의 얼음 조각처럼 그저 묵묵히 전진할 뿐이었다. 얼음은 통행료로 동료의 목숨을 받아낸 것이다.
   케나아트는 훨씬 앞에서 여느 때와 같이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짐은 발을 내디딜 때마다 주춤거렸다. 얼음은 튼튼한 것 같았지만 언제 갈라질지 믿을 수 없었다. 다음 내딛는 발 밑의 얼음이 종이조각처럼 찢어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일행은 위험한 박빙지대를 돌면서 역V자 대형을 흐트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짐의 왼쪽에서 카알이 걸어갔고 그 뒤를 로이와 텟드가 따랐다. 박사는 썰매에 타고 운전을 했다.
   그 날 밤 저녁 식사 시간은 조용하기만 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일행은 날이 새자마자 출발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역V자 대형을 유지하며 걸어갔으므로 여정은 진전되지 않았다. 그러나 10시가 되자 케나아트가 말했다.
   "이제부터의 얼음은 튼튼해요. 전원 썰매에 타시오."
   그는 자신있게 명령했다.
   일행이 모두 썰매에 오르자 그 때부터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카알이 불안스런 얼굴로 말했다.
   "앞으로의 얼음은 튼튼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믿어. 케나아트라도 보지 않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알지?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큰일이 아닌가."
   짐이 카알에게 말했다.
   "케나아트 씨인들 죽는 걸 좋아하겠어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으니까 저렇게 자신있게 말하겠지요."
   정오에 썰매가 정지했을 때 케나아트가 동쪽을 가리켰다. 그는 여전히 자신에 차 있었다.
   "내일은 얼지 않은 바다에 도착합니다. 내가 약속하겠소."
   "정말입니까?"
   케나아트가 얼굴에 미소를 띄었다.
   "정말이고 말고, 우리 아버지는 갈 수 없다고 했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었어. 하면 돼. 최선을 다해서 안 되는 일이 어디 있어?"
  

11. 바다에서의 폭력

  
   바안즈 원정대는 드디어 박빙지대를 탈출했다.
   6일째 되던 날 정오, 두 대의 썰매는 전진을 중지했다. 더 앞으로는 나갈 수가 없었다. 왜냐 하면 15미터 정도 전방에서 얼음은 끝이 났고 얼지 않은 바다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의 백색의 망망한 빙원이 암청색으로 바뀌었다.
   차가운 해풍이 바다 쪽에서 불어 왔다. 눈 앞의 해면에는 크고 작은 부빙(물 위에 뜬 얼음)이 서로 부딪히며 돌고 있었다.
   대서양!
   짐은 얼음 끝까지 가서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감격이 복받쳐 올랐다.
   뒤에서 케나아트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뱃사람들의 배가 틀림 없이 올 겁니다."
   "그 때가 언제일 것 같소? 얼마나 기다려야 하오?"
   박사가 물었다.
   "2일 후일지 20일 후일지 그건 뭐라고 말할 수가 없어요. 뱃사람들의 사정을 나는 알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그 자들은 얼음 위에서 사냥을 하기 위해 틀림 없이 이 곳으로 옵니다. 그 때까지는 나도 함께 기다릴 생각이오. 손님들이 무사히 배에 오르는 것을 본 다음에야 돌아가겠소."
   사나이들은 조급하게 기다렸다.
   3일째 되는 날 고함소리가 들렸다.
   "돛대다! 검은 돛대가 보인다! 배가 온다!"
   북쪽에서 범선 한 척이 부빙을 헤치며 다가왔다. 범선은 전장이 30미터 정도는 될 듯했다. 선체는 진홍색으로 칠해졌고 선수에는 기분 나쁘게도 용이 새겨져 있었다.
   짐은 쌍안경으로 살펴보았다. 갑판에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짐승의 가죽을 걸친 단단한 체격의 사나이들이었다.
   진홍색 범선은 부빙 사이를 교묘하게 피하며 다가왔다. 얼음 기슭에서 4, 5미터 되는 곳까지 오자 선원들이 선수로 달려와서 바닷속으로 닻을 던졌다.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사닥다리가 내려졌다.
   바안즈 원정대원들은 12명의 선원들이 사닥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것을 조심스럽게 지켜 보고 있었다.
   선원들은 완전무장을 하고 있었다. 뼈로 만든 창과 칼뿐 아니라 혁대에는 단검도 차고 있었다. 12명 가운데 8명이 빨강머리였다. 그 갈기와 같은 머리털과 수염이 한낮의 햇빛을 받아 빨갛게 불타는 듯했다.
   열 두 명의 뱃사람들은 적의를 품은 표정으로 얼음 기슭에 내리자 바다를 등지고 나란히 섰다. 그 가운데 한 사람―빨강머리에 넉살 좋게 생긴 큰 사나이―이 갑자기 이상한 말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거칠고 저질스런 말투였다.
   한 마디 한 마디 의미는 알 수 없으나 짐은 대강 짐작할 것 같았다. 빨강머리의 큰 사나이는,
   "너희들은 어디에 있는 누군가? 무슨 이유로 이 기슭에 와 있는 거야?"
   라고 말하는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케나아트가 바안즈 박사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자기가 추장이라고 말하고 있소. 뱃사람족은 우리들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아요. 그러니 내가 저들의 말로 이야기해 보지요."
   케나아트가 앞으로 나가더니 추장과 똑같이 험하고 거친 말투로 떠들어댔다.
   케나아트의 말이 끝나자 두 사나이는 잠자코 노려보기만 했다. 그리고 곧 큰 사나이가 다시 덤빌 듯이 외쳤다.
   심한 욕을 하는 것 같았다.―케나아트의 얼굴이 시뻘개지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도 지지 않고 외쳤다. 이번에는 선원들 전원이 새빨개졌다. 그들 중에는 칼자루에 손을 대는 성미 급한 자도 있었다.
   케나아트와 빨강머리 큰 사나이의 대화는 점차 열을 뿜었다. 서로 상대방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하여 펄펄 뛰며 떠들었다. 거리도 가까와졌다.
   짐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열선발사기를 꼭 쥐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상대방의 화를 돋구는 것은 우매한 일이다. 뉴우요오크의 여행자들은 뱃사람족의 범선을 타고 가는 길 외에 대서양을 넘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싸움을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두 사람의 대화는 끝난 것 같았다. 케나아트는 어깨를 늘어뜨리고 돌아왔다. 그리고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잘 안 되는데요. 저들은 마침 바다 건너 얼음나라로 가는 길이랍니다. 그러나 추장이란 놈, 손님을 태워 줄 생각은 없다는 겁니다. 첫째로 뉴우요오크 사람들의 인상이 좋지 않다는군요. 나는 그저 저 놈이 말한대로 통역을 했을 뿐이오……."
   박사는 껄껄 웃었다.
   "우리의 인상이 나쁘다고 해도 상관 없소. 그것보다 배삯으로 무엇을 주면 좋을까요? 선원들이 좋아하는 게 뭡니까?"
  
   "육지의 짐승 고기일 겁니다. 그러나 손님들에겐 그런 것이 있을 리 없으니 어려운 일이지요."
   "배 안에 환자는 없을까? 우리들은 약을 가지고 있고 또 치료해 줄 수도 있는데……."
   케나아트는 다시 한 번 대화를 해보았다. 이번에는 두 사람의 대화가 꽤 부드러웠다. 추장의 태도는 조롱을 하는 투였다.
   잠시 후에 케나아트가 돌아왔다.
   "전혀 이야기가 안 됩니다. 저 놈의 말로는 배에는 환자도 없고 약도 필요치 않다고 합니다. 배삯을 낼 만한 것이 없으면 배에 태울 수 없다는 거지요. 그것보다도 뉴우요오크 족들의 얼굴이 왜 그렇게 창백하냐고 묻기에, 손님들은 얼음 속에서 나왔고 그 동안의 여행을 간단히 이야기했더니 저 놈은 배를 붙잡고 웃는 거예요. 내 이야기를 믿지 않는군요. 그래서 나는, 그랬다간 벌을 받을 거라고 했고, 뉴우요오크 손님들에게는 하느님의 보호가 있다고 했더니 또 웃었어요, 우리들의 하느님과 뱃사람족의 하느님은 종족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추장이란 놈은 손님들을 모두 죽이고 남쪽 나라 상인들에게 그 썰매를 팔겠다고 했어요."
   바안즈 박사의 안색이 변했다.
   "저런 고약한 놈이 있나. 큰일인데, 다른 좋은 방법은 없을까, 케나아트? 우리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바다를 건너야 돼. 다른 조건은 없을까?"
   "한 가지 있기는 합니다. 손님 중 한 사람이 추장과 결투를 해서 이기면 이 쪽의 요구를 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대신 지는 날에는 이 쪽을 몰살시키겠다고 저 빨간 수염은 분명히 말했어요. 그는 자기 입으로도 사람을 죽이는 것이 취미라고 하는군요."
   "그런 엉터리 조건이 어디 있어! 결투라니……."
   박사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순간 옆에서 짐이 끼어들었다.
   "잠깐만, 케나아트!"
   케나아트는 짐을 돌아보았다.
   "내가 그 결투에 도전하겠어요! 추장에게 그렇게 전해 주세요. 무기는 이 쪽에서 선택합니다."
   케나아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안즈 박사를 바라보았다.
   "짐! 무슨 소리야. 너 미쳤니? 저 빨간 수염은 130킬로그램이나 될 것 같다!"
   "그래도 도전하겠습니다. 하고 말고요! 바안즈 원정대가 대서양을 횡단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입니다. 저 추장은 이 쪽이 이기면 배에 태워 주겠다고 약속했잖아요. 이 조건을 수락하지 않는다면 저 놈은 우리를 모두 죽일 것입니다. 기회를 주세요. 로울린 추장도 외아들을 말리지는 못했습니다. 아버지도 뉴우요오크 원정대의 추장이시지요? 제 부탁을 들어 주십시오. 멋지게 해치우겠습니다."
   바안즈 박사는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케나아트가 박사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외치며 저 쪽 추장에게 다가갔다.
   "좋아. 이것으로 결정이 났어."
   저 쪽 추장은 팔짱을 끼고 뉴우요오크 원정대의 회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짐의 결투 승낙을 전해 듣자 배꼽을 잡으며 웃어댔다.
  
   케나아트가 돌아왔다.
   "추장이 마음대로 무기를 고르라고 하는데…… 짐, 칼? 창? 단검?"
   "모두 필요 없어요. 나는 맨주먹으로 도전하겠어요."
   케나아트가 깜짝 놀랐다.
   "맨손? 설마 농담을 하는 건 아니겠지?"
   "농담이 아닙니다. 나는 맨손으로 싸울 겁니다."
   케나아트가 또 상대방에게 짐의 의사를 전했다. 빨강머리 사나이는 두 발로 얼음을 구르면서 웃어댔다.
   그러나 뉴우요오크의 여행자들에게서는 웃음소리는 커녕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 결투는 어느 한 쪽이 죽을 때까지 하자는 것을 짐이 제안하여 어느 한 쪽이 항복하면 끝내기로 했다.
  
   뱃사람족과 바안즈 원정대는 얼음 위에서 서로 마주보았다.―뉴우요오크 사나이들은 두 대의 썰매를 배경에, 그리고 뱃사람족들은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마주 섰다. 그 중간에 직경 13, 4미터의 결투장이 만들어졌다. 짐은 그 속에 들어가서 상대방을 기다렸다. 이미 방한복은 벗고 있었다. 가급적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였다.
   추장도 칼, 단검을 집어던지고 가죽 외투를 벗자 가설링으로 들어왔다. 짐은 이런 1대 1의 격투라면 자신이 있었다.―그러나 이번과 같이 동료의 운명을 걸고 싸운 경험은 없었다.
   지하도시 뉴우요오크에는 각 레벨마다 전용 체육관이 있었다. 시민들은 수영을 하기도 하고 체조를 하면서 몸을 단련했다. 항상 운동을 할 필요가 있었다. 지하도시에서는 근육의 노화현상이 빨리 오기 때문이다.
   짐은 스포오츠에는 만능이었다. 펜싱과 레슬링은 뉴우요오크에서 선수권을 가진 터였다. 그리고 그 밖에도 유도를 누구보다도 잘하는 투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 중에도 업치기는 일품이었다.
  
   추장과 짐은 뚫어지게 서로 노려보았다. 키는 짐이 2센티미터 정도 컸지만 체중은 50킬로그램 정도 가벼울 것 같았다. 추장의 팔은 짐의 허벅지까지 내려올 정도였고 몸통은 두 배나 될 것 같았다. 승부는 누가 보더라도 결정적이었다. 거인과 어린 아이의 결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추장이 양 팔을 벌리고 덤벼들면서 그 큰 손으로 짐의 두 어깨를 잡으려는 순간, 짐은 재빨리 몸을 낮추어 옆으로 굴렀다. 추장은 이 뜻밖의 행동에 당황하여 두 손을 허공에 허우적거렸다.
   얼음 위에서 한 번 돌고 일어난 짐은 상대방의 굵은 팔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추장이 몸의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고 있을 때 그 정강이를 걷어찼다. 추장은 엎드러지면서 3미터쯤 미끄러졌다.
   짐은 쫓아가지 않았다. 그대로 서서 조용히 호흡을 조절하며 상대방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추장은 두 눈에 살기를 번뜩이며 일어섰다. 그리고 괴성을 지르며 독수리가 먹이에게 덤벼들 듯이 돌진해 왔다.
   짐은 상대방의 왼팔을 붙잡으려는 태세를 갖추고 있다가 추장이 덤벼들자 반대로 옆으로 편 오른팔을 붙잡았다. 그 순간 짐은 옆구리에 펀치를 한 대 맞았다. 짐은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마치 총을 맞은 듯이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잡은 팔을 놓지 않고 한 바퀴 힘껏 비틀었다. 큰 사나이가 꿈틀했다. 짐은 업어치기 자세를 취했다.
   다음 순간 추장은 짐의 머리 위를 넘어서 얼음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 소리는 마치 천둥소리와 같았다.
   빨강머리 거인은 아까보다도 더 천천히 일어났다. 짐은 이를 악물고 헐떡거리며 두 팔을 비스듬히 벌렸다. 이 사나이의 급소만 한 번 적중시키면 싸움은 끝나는 것이다.
   세 번째, 추장은 허공을 긁듯이 손을 휘저으며 짐의 주위를 조심껏 돌기 시작했다. 이따금 그는 일부러 손을 내려 헛점을 보이기도 했다. 짐은 재빨리 그 손을 나꿔채 상하로 흔들면서 상대창의 등 뒤로 비틀어 올렸다. 그리고 팔꿈치를 꺾었다.
   짐은 추장에게 명령했다.
   "자아, 앉아! 앉지 않으면 팔을 꺾어 버리고 말겠다!"
   추장은 붙잡힌 팔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몸을 비틀면 비틀수록 팔은 점점 더 꺾이었다. 그는 무릎을 탁 꿇었다.
   "그렇지. 좀더 엎드려서 얼음을 핥아!"
   짐이 외쳤다.
   짐은 추장의 왼팔을 다시 비틀어 올렸다. 얼굴이 일그러진 추장은 괴로운 듯 상반신을 뒤틀었다. 턱수염이 얼음에 닿았고 입술이 떨렸다. 뱃사람족 추장이 마침내 얼음에 키스를 한 것이다.
   승부는 끝났다고 짐은 생각했다. 그래서 추장을 천천히 일으키면서 '항복' 소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항복'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추장은 실로 완강했다. 고통으로 얼굴이 새파래졌건만 절대로 패배를 자인하지 않았다.
   짐이 케나아트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추장에게 '항복'하지 않으면 팔을 진짜로 꺾어 버리겠다고 말해 주시오! 싸움은 끝난 거예요. 내가 이겼어!"
   케나아트가 추장에게 뭐라고 말했다. 추장이 중얼거렸다. 케나아트가 짐에게 통역했다.
   "아직 지지 않았다는 거야. 팔이 부러져도 싸우겠다는군!"
   짐은 이렇게 완강한 상대를 만난 적이 없었다. 비록 한쪽 팔이 부러져도 계속 싸우겠다는 것이다. 지독한 사람이다.
   '진짜로 팔이 부러져도 괜찮단 말인가? 아니, 이 놈은 차라리 죽을 때까지 싸우자는 게 아닐까?'
  
   짐은 다시 케나아트에게 외쳤다.
   "내가 이겼어! '항복'만 하면 팔을 풀어 주겠다고 해 주시오!"
   케나아트가 당황하며 주의를 주었다.
   "짐!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팔을 풀어 주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케나아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말이 증명이 되었다. 짐이 약간 풀어 주자마자 추장은 그 틈을 타서 몸을 비틀더니 오른손으로 짐을 힘껏 쳤다.
   짐은 결심했다.―이제는 어쩔 수 없군. 최후의 수단을 취할 수밖에…….
   '이런 관절 꺾는 방법은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완강한 놈에게는 하는 수 없지. 좀 아프겠지만 참아라!'
   짐은 팔꿈치로 한 번 친 다음에 왼팔을 다시 비틀었다. 추장이 신음했다. 팔이 부러지는 대신 왼쪽의 어깨뼈가 탈구되고 만 것이다.
   왼쪽 팔을 늘어뜨린 채 추장은 일어서서 다시 공격을 해 왔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며 그는 덤벼들었다. 짐은 이제 지긋지긋해졌다.
   갑자기 추장이 오른팔을 크게 흔들면서 덤벼들었다. 상대의 자세가 흐트러졌다.
   '이 때다.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집어던져 주마.'
   짐도 덤벼들었다. 늘어뜨린 채 덤벼드는 왼팔을 붙잡고 업어치기를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실수였다. 스탭이 맞지 않아서 몸을 비틀거렸다. 추장은 오른팔을 마구 휘두르며 덤볐다. 짐이 뒤로 넘어질 듯이 중심을 잃고 있자 추장의 거센 오른팔이 짐의 가슴을 감싸 안았다.
   굵은 팔이 가슴을 조여 왔다. 폐에서 공기가 빠져나가고 갈비뼈가 부서지는 것 같았다. 차츰 눈 앞이 아득해졌다. 이제 끝장이다. 거대한 바이스에 물려서 꼼짝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러나 짐은 전력을 다했다. 추장의 그 힘세고 거친 팔 속에서 있는 힘을 다해 버티었다. 양 어깨를 꿈틀거려 보았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그의 팔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짐의 얼굴에서는 핏기가 가시고 심장의 고동이 멎는 것 같았다.
   그 때였다. 짐에게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다! 짐은 머리를 힘껏 숙였다가 있는 힘을 다해 쳐들었다. 추장의 턱을 자신의 뒷머리로 힘껏 받은 것이다.
   그 순간 추장이 뒤로 자빠지면서 짐을 꽉 끌어안은 팔이 풀어졌다.
   '이 때다!'
   짐은 빠져나옴과 동시에 상대방의 오른팔을 붙잡고 2, 3미터쯤 질질 끌다가 '에잇!' 하고 기합을 넣으면서 집어던졌다.
   추장은 공중에서 한 바퀴 돌더니 얼음 위에 '쾅!' 하고 떨어졌다. 그 소리란 굉장히 엄청난 것이었다. 추장은 그대로 5미터나 미끄러져서 11명의 부하가 있는 데까지 갔다.
   그는 빈사상태가 된 고래처럼 얼음 위에 나딩굴었다. 이번에는 쉽게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11명의 부하는 이 뜻밖의 일을 보고 정신이 나간 사람들처럼 멍청히 서 있을 뿐이었다.
   한참 후에야 가까스로 일어난 추장은 연상 고개만 가로 저었다. 그리고 탈구된 왼팔을 늘어뜨린 채 괴로운 듯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그는 케나아트를 향하여 뭐라고 말했다. 케나아트가 흥분한 목소리로 짐에게 외쳤다.
   "이겼다, 짐! 추장이 '항복'이라고 말했어. 약속한대로 손님들을 배에 태워 주겠는데, 한 가지 조건이 있대!"
   "조건이라니요?"
   짐이 의아해서 물었다.
   쟈아지 족의 젊은이는 빙그레 웃었다.
   "……지금 한 싸움의 기술을 가르쳐 달래!"
  

12. 드디어 유럽으로

  
   케나아트의 통역으로 두 대의 썰매를 배에 싣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짐와 한바탕 싸워서 진 선장이 아직도 시무룩한 얼굴로 부하들에게 부축을 받고 있었다.
   짐은 케나아트를 옆으로 불렀다.
   "우리들 동료들 중에 어깨뼈가 탈구된 것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선장에게 말해 주세요. 그리고 결투에 졌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나를 미워하지 말아달라고 해주세요."
  
   케나아트가 이 말을 선장에게 전했다. 선장이 무뚝뚝하게 대답하자 그것을 케나아트가 통역해 주었다.
   "빨리 치료사를 보내 달라고 하는군. 그리고 결투에서 졌다고 그것을 언제까지나 마음 속에 두는 쩨쩨한 인간은 아니라는 거야."
  
   카알이 가서 탈구된 어깨를 응급처치했다. 경찰관 출신인 카알은 추장의 빠진 뼈를 원상태로 맞췄다. 선장은 몹시 고통스러운 것 같았으나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출발 준비가 끝났다. 얼음 기슭에는 바안즈 원정대의 짐과 장비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이제 뉴우요오크 사나이들이 가죽 사닥다리를 오르기만 하면 된다.
   검은 돛이 스르르르 올라갔다. 짐은 마음이 울적해졌다. 케나아트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쟈아지 족의 사나이 케나아트도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얼음 기슭에 서 있었다.
   "유감입니다. 케나아트 씨와 함께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짐이 말했다.
   "나도 손님들과 같이 가고 싶고 배도 타 보고 싶어. 그러나 안 돼. 나를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여러 가지로 고마왔습니다. 뭐라고 감사의 뜻을 전해야 좋을지……."
  
   "그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짐! 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는 당신들은 우리의 손님이니까…….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나도 큰 사나이를 집어던지는 기술을 배우고 싶어. 가르쳐 줄래?"
   짐은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은 무리예요. 오랜 시간을 두고 연습을 해냐 되거든요. 케나아트 씨도 나에게 위험한 얼음 위를 안전하게 지나 다니는 기술을 금방 가르쳐 줄 수 없지요?"
   "그렇겠군……. 알았어. 그럼 이제 작별이다. 무사히 항해할 것을 빌겠네. 그리고 짐, 다시 이 길을 되돌아오는 일이 있거든 꼭 쟈아지 족의 야영지를 찾아 주게."
   같은 길을 되돌아오는 일이 생기면 그야말로 큰일이라고 짐은 생각했지만,
   "네, 꼭 찾겠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케나아트의 손을 꼭 쥐었다.
   선원들이 소리를 지르며 닻을 감아 올리는 동안 케나아트는 손님 한 사람 한 사람과 뜨거운 악수를 했다. 짐은 가죽 사닥다리를 타고 배로 올라갔다.
   진홍색 범선은 출항했다. 짐은 난간에 기댄 채 차츰 작게 보이는 케나아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윽고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다. 그 용감하고 선량한 쟈아지 족의 사나이가 무사히 야영지까지 돌아가기를 기원하면서…….
  
   배를 타는 여행은 육지인으로서는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얼음 벌판을 썰매에 몸을 싣고 달리는 편이 훨씬 수월했다.
  
   바다는 변덕스러웠다. 거울처럼 잔잔하던 수면에 갑자기 거센 파도가 치솟아 금방 배를 집어삼킬 듯했다. 그런가 하면 거짓말처럼 달빛이 수평선 위를 비추며 환상의 세계로 돌변한다. 짐은 그 시커먼 바다 속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신비한 마법사가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
   뉴우요오크 사람들은 배멀미로 무척 고생을 했다. 모두 안색이 창백해져서 기둥을 붙잡고 늘어졌다.
   배는 물 위에 떠 있는 부락과 같은 것이었다. 아래 갑판에는 여자와 아이들이 타고 있었고 각각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6명의 손님은 선미에 가까운 갑판 위에 자리를 할당받았다. 자리라고는 하지만 좁은 배 안에서는 한 사람이 차지하는 면적은 겨우 사방 60센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특별석에는 차가운 물거품이 튀어올라 나중에는 천막을 치고 그 안에 들어가 있어야 했다.
   배는 동쪽을 향해 계속 전진했다. 턱수염을 기른 선원들은 서풍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6명의 뉴우요오크 손님들은 배 위에서 심심하기 짝이 없었다. 선원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 데다가, 특별히 할 일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독서라든가 게임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배멀미에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이따금 부빙이 밀집해 있는 수역에 접어들기도 했다. 6명의 사나이는 육지가 가까왔다며 마음을 조이기도 했으나 다시 해면에 나오곤 했다. 그것은 한낱 착각에 불과했다. 유럽은 아직도 까마득하다.
   어느 화창한 날, 빨간 수염의 선장이 짐에게 예의 격투기에 대하여 모든 것을 공개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짐은 승낙했다.
   "좋소. 해봅시다. 전에 당신이 제시했던 조건이었으니까……."
   비번 선원 전원이 집합하였다. 윗 갑판 앞부분이 링이 되었다. 짐의 상대로는 뼈대가 튼튼하게 생긴 젊은 선원이 선발되었다.
   시합은 일방적이었다. 상대방 선원이 계속 돌진해 왔으나 그 때마다 갑판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러나 그 선원도 선장 못지 않게 끈질겼다. 나자빠지고 넘어져도 악착같이 덤벼들었다.
   실기 수업은 30분쯤 계속되었다. 선장 이하 선원들은 짐의 솜씨에 혀를 내두르며 경탄했다.
   짐이 선원들에게 유도를 가르치는 동안에 바안즈 박사와 텟드가 무선기 앞에서 런던을 열심히 불렀다.
   몇 시간이나 걸려서 겨우 런던이 나왔다.
   바안즈 박사는 원정대의 현재까지 상황을 보고했다. 런던은 뉴우요오크 원정대가 대서양 상에서 송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몹시 놀라는 듯했다. 그리고 즉시로 런던 측 대책을 알려 왔다.
   박사가 말했다.
   "런던은 연락대를 파견한 것 같아. 우리들은 유럽 대륙붕 어딘가에서 런던 연락대와 만나게 될 거야."
   그 유럽 대륙붕이 하루 하루 가까와 오고 있었다.
   진홍색 범선은 동쪽을 향해 암청색 대해원을 가르고 항해를 계속하였다. 배가 지나간 자리에 꼬리처럼 한 줄기 거품이 일었다가 스러지듯이 시간은 흐르고 사라졌다.
  
   '케나아트와 헤어진 지 며칠이나 지났을까? 미국의 빙하지대를 썰매로 달리던 때가 먼 옛날처럼 아득히 생각되는군…….'
   하고 짐은 생각했다.
   어느 날 갈매기 떼가 무리를 지어 날아왔다. 6명의 손님은 이번에는 틀림 없이 기슭에 가까이 왔다며 환성을 질렀다. 짐은 쌍안경으로 새를 쫓아갔다.
   갈매기 무리는 울어대면서 돛대를 스쳐 날았다. 그 중에는 물고기를 노리고 해면에 돌진하는 갈매기도 있었다. 짐은 갈매기에 도취해 버렸다.
   그 날 오후 선원들이 갑판에 정열했다. 키 큰 선장이 시의 한 귀절 같은 문구를 읊었다. 그것이 끝나자 젊은 선원이 말린 고기를 담은 널빤지를 받쳐들고 나왔다. 선장이 그 말린 고기를 바다 속에 집어던졌다. 의식은 이것으로 간단히 끝났다. 안전한 항해를 감사하고 바다의 신을 위로하는 의식이었다.
  
   그리고 유럽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하얀 선이 레이스처럼 수평선을 수놓았다. 얼음임이 틀림 없었다. 해면에는 부빙이 많아지고 바다 새와 바다 짐승의 수도 많아졌다.
   커다란 부빙에는 바다표범과 물개가 한가롭게 잠을 자고 또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배가 가까이 가자 놀라 당황하며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배는 부빙을 헤치면서 기슭으로 접근해 갔다. 눈 앞의 얼음 기슭은 케나아트와 헤어졌던 그 자리와 똑같았다. 평평한 얼음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검은 돛이 내려지고 얼음판 가까이에 닻이 내려졌다. 그리고 우선 두 대의 썰매가 육지로 내려지고 6명의 손님이 한 명씩 상륙하기 시작했다.
   짐이 가죽 사닥다리로 내려가려고 하자 선장이 와서 손을 힘껏 잡았다. 의미 있는 힘찬 악수였다.
   선장은 빙그레 웃으며 짐의 등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뭐라고 중얼거렸다.
   "알겠어요, 선장님. 이제 나에게 아무런 미움도 갖고 있지 않다는 거지요? 하여간 여러 가지로 신세를 졌습니다. 나도 당신의 안전한 항해를 빌겠어요. 그런데 이 악수하는 손에 힘 좀 빼 주지 않겠습니까? 이 손은 앞으로도 할 일이 많답니다……."
   선장은 손을 놓았다. 짐도 활짝 웃으면서 사닥다리를 내려갔다. 얼음 위로 내려왔는데도 한참 동안 선장이 잡았던 손이 저려 왔다.
   뉴우요오크 손님들의 짐이 모두 내려지자 배는 닻을 올리고 돛을 올렸다. 그리고 조용히 남쪽을 향하여 미끄러져 갔다. 턱수염의 선원들이 갑판에 나와서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카알이 말했다.
   "저 사람들도 나쁜 사람은 한 명도 없어."
   "그래요. 누구든 사귀고 보면 나쁜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짐이 대답했다.
   이렇게 해서 6명의 사나이는 뱃사람족과 작별하고 유럽의 얼음 위에 첫발을 내디뎠다.
   두 대의 썰매는 넉넉하게 충전되었다. 바안즈 박사가 제안했다.
   "달리 남은 일이 없으면 곧 출발하도록 하지."
   "이 지점은 런던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나요, 아버지?"
   "글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략 1천 500여 킬로미터쯤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나중에 데이브가 조사할 거야.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는 벌써 반 이상 왔다는 사실이다, 짐."
   반 이상이나 왔다면 나머지를 가지 못할 리가 없다. 그러나 짐은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이 곳까지 오기까지 이미 동료 두 사람이 희생된 것이다.
   그리고 최후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또 다시 동료의 희생이 생길지 모른다. 그런데다가 목적지인 런던에 도착하더라도 일행이 환영을 받게 될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어처구니없이 쫓겨나게 되면 어떻게 하지? 그렇다면 다시 바다와 얼음을 횡단하여 뉴우요오크로 돌아가야 되나?
   아니다, 그럴 수는 없어. 6명의 사나이는 뉴우요오크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돌아가면 호우크스 시장으로부터 극형을 받게 될 뿐이다. 미리 최악의 사태를 염려하지 말자. 나중에 닥칠 일은 그 때 가서 염려하자. 어떻게든 뚫고 나갈 길이 생기겠지. 이 시점에서는 오로지 런던을 목표로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6명의 사나이는 오랫만의 얼음 감촉에 감동하였다. 썰매는 태양이 떠오르는 방향을 향하여 출발했다.
   그 지대는 쟈아지 족의 야영지와 얼지 않은 바다 사이에 펼쳐져 있는, 그 위험한 얼음 벌판과 같은 곳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길 안내를 해주던 케나아트도 없다. 적당히 분별하면서 얼음 벌판을 전진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행히 바안즈 원정대의 행운이었다. 얼음이 무척 튼튼한 것이다. 유럽에 내린 첫날은 뉴우요오크를 출발한 이래 최고의 주행 기록을 세웠다. 썰매는 60킬로미터나 달린 것이다.
   텟드는 런던과 무선 연락을 하고 있었다. 이미 유효 교신거리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감도는 양호했다. 런던에서도 연락대가 출발하여 서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왔다.
   뉴우요오크의 원정대와 런던 연락대의 접촉 예정지는 아일랜드의 에머럴드 군도 부근의 빙하지대로 결정되었다. 런던에서는 그 지점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텟드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런던의 사람들은 가끔 지상에 나와 보는 것 같아. 그들은 빙하지대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걸."
   짐이 끄덕였다.
   "그래요. 런던에는 지상에 나오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 않은가 봐요. 그것 참 잘 되었어요."
   박사가 한 마디 덧붙였다.
   "그렇지만 런던은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것이 있어. 목소리만 들어도 느낄 수 있거든. 나는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로이가 박사에게 말했다.
   "그러나 런던은 파견대를 보내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우리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 같아요."
   "글쎄, 그랬으면 좋으련만……."
   박사가 대답했다.
   짐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런던이 연락대를 파견한 것은 우호적인 뜻일까? 아니면 반대로 뉴우요오크 원정대가 유럽 대륙 깊숙히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함일까? 그러나 그것은 곧 알게 될 것이다. 에머럴드 접촉지점에 도착하면 그 의문은 곧 풀릴 테니까.
   사흘째 되던 날 늦게 일행은 처음으로 유럽의 사냥군들과 만났다. 순록의 껍질을 벗기고 있던, 원시인과 비슷한 모습의 사나이들이었다.
   모피를 두르고 머리를 산발한 자들을 보고, 짐은 미국의 빙하지대에서 만났던 유목민들을 생각해 냈다. 그들은 카알의 응급처치를 고마와했었으나 처음에는 도전적이었다.
   그런데 이 유럽의 빙원 유목민은 마음이 약한 듯했다. 두 대의 썰매를 보자마자 그들은 겁을 먹고 부리나케 도망을 치는 것이었다.
   짐은 그 날 밤 깊이 잠이 들었다. 그는 아직도 진홍색 범선의 갑판에서 북유럽의 해적과 같은 선원들을 바닥에 집어던지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 꿈이 갑자기 깨지고 말았다. 누군가가 그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일어나, 짐!"
   "누구야? 몇 시인데?"
   잠에 취한 눈으로 보니 텟드였다.
   "나는 불침번을 끝냈어요. 잘못 깨운 게 아닙니까?"
   "아니야. 불침번이 아니야. 나는 지금 전원을 기상시키고 있는 거야. 큰일났어, 짐."
   "큰일? 무슨 일인데요?"
   "로이 말이야. 로이가 급성병이야. 열이 굉장해.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
  

13. 런던 순찰대

  
   로이는 천막 구석에서 괴롭게 신음하고 있었다. 땀으로 범벅이가 된 얼굴은 밖의 눈처럼 창백했다. 두 눈은 감겨져 있고 입술은 경련을 일으켰다.
   바안즈 박사가 로이 옆에서 무릎을 꿇고 이마에 손을 얹고 있었다.
   "정말 큰일인데. 열이 대단해. 헛소리까지 하니……. 구급상자 속에 무슨 약 좀 없나, 카알?"
   카알은 기적의 지팡이라도 찾듯이 상자 속을 뒤졌다.
   "두통약과 외상 치료약뿐인데요……."
   카알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을 했다. 로이가 꿈틀거리더니 눈을 떴다. 충혈된 눈이 게슴츠레했다.
   "괴로와. 몸이 타는 것 같아. 눈, 눈 속에 눕혀 줘. 모…… 몸을 차갑게 해줘……."
   고통으로 지친 쉰 소리였다.
   "로이! 정신차려! 약을 줄께. 금방 나을 거야."
   박사가 로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살려 줘! 괴로와! 몸이 타는 것 같아. 밖에 나가서 눈 속에……."
   로이는 계속 신음했다.
   카알이 구급상자에서 초음파 이용 스프레이 주사관을 꺼냈다.
   "이것을 쓰면 어떨까요? 전염병과 종기시 효과가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해볼까요?"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알은 주사관을 로이의 팔에 대고 보턴을 눌렀다. 로이는 계속 헛소리를 했다.
   짐은 마음이 답답해 천막 밖으로 나왔다. 텟드와 데이브도 따라 나왔다. 텟드가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로이하고도 이별이로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로이 씨는 열이 날 뿐인데요."
   짐이 놀라서 화내듯이 말했다.
  
   "그게 아냐, 짐. 로이는 세균성 열병에 걸린 거야. 아까 그 사냥군들이 놓고 간 순록의 고기를 우리가 먹었잖아. 그 고기 때문일지도 몰라. 우리들에게는 이 지방 특유의 병원균에는 면역성이 없거든. 전원이 걸리지 않은 것이 기적이야."
   천막 안에서 들려 오는 신음소리는 점점 높아만 갔다. 그 날 밤은 모두가 초조히 밤을 새웠다.
   그리고―날이 샐 때쯤―그 신음소리는 멎었다…….
   5명의 사나이는 아침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로이의 시체를 얼음 속에 묻었다. 드디어 세 번째의 희생자가 생긴 것이다. 동료가 한 사람 또 한 사람, 마치 빙원에 날리는 눈발처럼 그렇게 사라져 갔다.
   남은 사람들은 슬픈 전진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 날은 내내 침묵의 하루였다. 누구도 입 열기를 두려워했다. 이야기가 시작되었다가는 먼저 보낸 세 명의 동료들 생각에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지상의 세계에서는 죽음이 돌연히 찾아온다고 짐은 생각했다. 도오니 족 추장이 던진 한 자루의 창. 느닷없이 입을 벌린 얼음구덩이. 순록의 고기 속에 들어 있던 무서운 병균…….
   짐은 몸부림을 쳤다. 로이의 생명을 앗아간 병원균이 5명의 동료들 혈관 속에도 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 밤에 전원이 눈 속에서 죽어 가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발열하지 않았다. 로이가 동료들 대신 희생된 것이란 말인가?
   저녁 때는 로이의 얼음 무덤으로부터 160킬로나 멀리 와 있었다. 그 부근부터 빙원이 조금씩 위로 경사가 진 것 같았다. 즉 동결된 해면에서 이제는 빙하지대에 들어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오직 위안이 되었다.
   밤 늦게 텟드가 런던과 교신했다. 상대방의 연락대도 곧 이 가까이에 오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 날 정오, 런던의 연락대가 지평선에 모습을 나타냈다. 한 줄기의 검은 선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쌍안경으로 보면서 짐이 말했다.
   "런던의 연락대도 썰매를 타고 옵니다. 무서운 속력인데요!"
   "그리고 인원도 많은데. 런던 친구들, 연락대를 보낸 것이 아니라 군대를 파견한 것 같군."
   텟드가 말했다.
   30분쯤 후에 양 쪽이 만났다.
   런던의 파견대는 어느 정도 간격이 좁혀지자 먼저 정지하였다. 타고 온 다섯 대의 썰매에서 그들은 내려 섰다. 그리고 그들은 팔짱을 끼고 뉴우요오크의 사나이들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 보았다.
   '역사적 순간이 다가오고 있군.'
   짐은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이 마구 뛰었다.
   수백 년 동안의 침묵을 깨뜨리고, 지금 북아메리카와 유럽 대륙 사이에 접촉이 이루어지려고 하고 있다. 실로 역사적인 순간인 것이다.
   그러나 런던 파견대 사나이들의 표정은 엄숙하기만 했다. 그들은 새하얀 지하시민이라기보다, 오히려 우락부락한 야만인과 같은 인상이었다. 그리고 벨트에는 소형총이 꽂혀 있었다.
   바안즈 원정대의 썰매는 런던 파견대로부터 5미터 거리까지 가까이 갔다. 썰매에서 내린 박사가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한 쪽 손을 높이 쳐들고 큰 소리로 외쳤다.
   "뉴우요오크 원정대 방금 도착했습니다! 마중 나온 것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런던 파견대에서 턱이 모가 나고 회색 눈의 사나이가 나와서 쌀쌀한 말투로 말했다.
   "당신은?"
   "레이몬드 바안즈 박사. 당신은?"
   "존 몬스클리이프 대위. 런던 순찰대의 대장이오."
   "경찰관이오?"
   "군인이오."
   퉁명스럽게 대답한 대위는 부하에게,
   "빨리 천막을 쳐라."
   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다시 박사를 돌아보았다.
   "나는 귀대의 대장과 부대장 두 명과 이야기를 하고 싶소. 다른 대원은 천막 밖에서 대기시키시오."
   "대장은 나지만 부대장은 없소. 우리는 모두 평등하니까요."
   "그럼 대원 중 한 명만 선발하시오. 나는 두 사람하고만 이야기를 하겠소. 졸병은 상대하지 않겠소."
   "실례되는 말을 하는구려. 우리 원정대에는 졸병이 없소. 우수한 대원뿐이오. 당신은 우리 5명 중 어느 사람과 대화를 해도 마찬가지요."
   대위의 표정이 굳어졌다.
   "시끄럽소, 뉴우요오크! 그대들은 이미 런던 순찰대의 관할구역 안에 들어와 있지 않소. 그러니 내 말을 들어야 하오. 나는 두 명하고만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소, 알겠소?"
   박사는 하는 투 없다는 표정으로 텟드를 가리켰다.
   "텟드, 자네는 나와 함께 수고 좀 해야겠네. 다른 세 사람은 천막 밖에서 기다려 주게."
   뉴우요오크 원정대에서 바안즈와 텟드, 그리고 런던 파견대에서 몬스클리이프 대위와 두 사람의 부하가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순찰대원들은 적의와 호기심이 섞인 표정으로 나머지 세 사람의 뉴우요오크 원정대원들을 감시했다.
   그 때 아까부터 짐을 힐끔힐끔 쳐다보던 한 순찰대원이 짐에게 다가왔다. 갈색 머리의 젊은이였다.
   "이름은?"
   "제임즈 바안즈."
   "나는 코우린 소운튼이야. 나이는?"
   "열 일곱 살."
   "나하고 동갑이군. 그런데 나보다 어른스러워 보이는걸."
   짐은 피식 웃었다.
   "바빠서 면도도 하지 못했어."
   런던 순찰대의 소년병 코우린은 묻고 싶은 말이 산더미처럼 많은 듯했다.
   "군대에는 얼마나 있었지?"
   "군대에는 들어간 적이 없어."
   "그래? 그럼 뉴우요오크에서는 무엇을 했는데?"
   "양성소에 다녔어. 수재배 기술자가 되려고."
  
   "수재배? 그런 것은 런던에서도 하고 있지만 나는 취미 없어. 나는 13세에 입대했지. 그런데 뉴우요오크에는 군인이 얼마나 있어?"
  
   "군대는 없어."
   "뭐라고? 웃기지 마라, 뉴우요오크!"
   "거짓말이 아니야. 얼음 속의 도시에 무슨 군대가 필요하겠니? 그러나 경찰은 있어. 여기 있는 카알도 원래는 경찰관이야."
   "침략자가 무섭지 않아?"
   "무섭긴 뭐가 무서워? 뉴우요오크와 지표 사이에 얼음이 천여 미터나 덮여 있는데 무슨 침략자가 있겠어? 런던은 어떤데?"
   "약 30년 전에 야만인들이 터널을 통해서 내려왔었어. 모두 소탕시키기는 했지만 굉장한 소동이었어. 그 때부터 군대가 생기게 된 거야. 우리들은 침략자를 제일 두려워한단다."
  
   "으응, 그렇게 된 거로구나."
   갑자기 코우린의 눈이 빛났다.
   "총은 어디에 있지?"
   "가지고 있지 않아."
   "무기는 아무 것도 안 가졌어?"
   "있기는 해도 총은 아니야."
   "그럼 내 총을 보여 줄까?"
   "네가 괜찮다면……."
   "상관 없어. 자아, 봐."
   코우린은 소형총을 빼어서 짐에게 건네 주기 전에 레버를 잡아당겼다. 조그만 금속통이 떨어졌다.
   "뭐야? 그것은?"
   짐이 물었다.
   "파워 유니트라는 건데 이게 없으면 총은 발사되지 않지. 네가 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주의하는 거란다."
   짐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가 왜 총을 쏘겠니, 코우린?"
   "그렇겠지만 만약을 생각해서 그런 주의는 해두는 게 좋아."
   짐은 총을 받아들고 유심히 쳐다보았다. 총신이 손바닥 크기의 소형총이었다. 뉴우요오크에서는 본 적이 없는 정교한 무기였다. 칼과 손도끼, 열선발사기만으로 무장하고 있는 자기네들과는 굉장한 차이가 있었다.
   "총의 성능을 보고 싶어?"
   코우린이 말했다. 짐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함께 가자. 천막회의는 길어질 것 같으니 그 사이에 적당한 짐승을 찾아서 쏘아 보자."
   짐은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회담의 내용이 짐작도 되지 않을 뿐더러, 이제 단 세 명이서 전 순찰대를 견제해야 한다. 이 코우린 한 명만을 상대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또 혹시나 어떤 계략으로 자기를 동료들에게서 떨어지게 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짐은 곧 그런 억측을 떨어 버렸다. 의심을 하려면 한이 없다. 그보다 우선 두 사람 사이의 불신감을 없애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번만은 코우린의 유혹을 들어주기로 하자.
   "좋아. 가 보자, 코우린."
   짐은 카알과 데이브의 만류를 뿌리치고 코우린과 함께 회담 천막에서 북쪽으로 향했다. 그 일대는 눈 쌓인 모양이 일정하지가 않고 2, 3미터 높이의 작은 언덕으로 되어 있었다. 짐은 동료들의 시선 밖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걸어가면서 코우린은 계속 질문 세례를 폈다.
   "짐, 뉴우요오크의 인구는 얼마나 돼?"
   "80만."
   "런던은 90만이야. 뉴우요오크 시장의 이름은?"
   "호우크스 노인이야."
   "런던 시장은 나이가 100세야. 뉴우요오크도 그래?"
   "비슷해. 곧 100세가 될걸."
   "아직도 미국에는 대통령이 있니?"
   "내가 알기로는 없어. 대통령은 수도 워싱턴에 살고 있을 텐데, 그 도시와는 수백 년 동안 소식이 끊어졌거든."
   "우리에게는 국왕이 있어. 지금도 런던에 있는데 국왕이라고는 해도 이름뿐이고, 실권은 런던 시장과 의회가 쥐고 있지. 뉴우요오크에도 의회가 있니? 국회 말이야."
   "응. 옛날에는 있었어. 그러나 지금은 뉴우요오크의 시의회가 있을 뿐이야."
   "뉴우요오크란 어떤 도시니? 왜 대통령도 없고 국회도 없니?"
  
   "뉴우요오크는 제일 큰 도시일 뿐, 수도가 아니기 때문이야. 그렇지만 런던은 영국의 수도이니까 국왕도 있고 의회도 있는 것이 당연하지."
   "지금의 국왕은 헨리 20세라고 해. 그의 아버지는 킹 찰즈 4세이고. 작년에 서거했어. 그런데 너는 영국의 역사를 좀 아니, 짐?"
   "자세한 것은 몰라. 우리 아버지는 역사학자야."
   "퀸 엘리자베드 1세를 알고 있니?"
   코우린은 계속 물어 왔다.
   "그럼 헨리 8세는? 리차아드 3세는?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는? 20세기의 처어칠 수상은? 그리고 잘 알고 있겠지만 뉴우요오크의 기초를 만든 사람은 우리 영국인이었어."
  
   "그렇지 않아. 뉴우요오크의 창시자는 네덜란드 인이었어."
   "더 옛날에는 영국인이 전 미국을 지배하고 있었어. 이것은 틀림 없는 역사적 사실이야. 그리고 얼음이 엄습해 오기 훨씬 전―1776년이었지, 아마―너희 나라는 해방을 맞았던 거야. 조오지 3세는 양키들이 싫어서 손을 뗐던 거지."
   짐은 할 말이 없었다.
   "마음대로 생각해라! 네 학설은 엉터리야, 코우린. 킹 조오지 3세를 몰아낸 것은 미국이었어. 독립전쟁이라고 하지……."
   "억지쓰지 마라! 나는 역사를 조사해 보았어. 하여간 영국이 전 미국을 다스렸던 것은 사실이야. 그리고 미국에 독립을 준 거지. 너희……."
   짐은 화가 나기보다 웃음이 나왔다. 코우린의 지식은 전부 엉터리이다. 이 녀석의 멱살을 잡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엉터리도 정도가 있어! 사실은 그렇지가 않아. 못 믿겠다면 우리 아버지가 흑백을 가려줄 거다. 그리고 너 양키니 뭐니 함부로 지껄이지 마. 만약 그 따위로 나온다면…….'―그러나 그런 말을 해서 무엇하랴. 코우린은 자신이 배운대로 믿고 있는 것이다. 타국인의 이야기 따위가 귀에 들어갈 리가 없다.
   "……조오지 워싱턴이 우리 킹 조오지에게 예를 드리기 위해서 일부러 런던까지 왔었거든……."
   코우린은 갑자기 역사 강의를 중단했다.
   "이것 봐, 저기야! 순록이 나왔다! 자, 총의 위력을 보여 주마!"
   커다란 순록이 눈 속에서 어슬렁거리며 나와서 두 사람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순록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는 수상하다는 듯 코를 벌름거렸다.
   코우린이 달려갔다. 그러나 순록은 그대로 서 있었다. 이 동물은 몸집만 컸지 위험신호가 뇌까지 전달되는 데는 둔한 까닭에 재빨리 도망치지 못하는 것이다.
   15, 6미터로 접근한 코우린은 총을 겨누고 한 발 쏘았다. 총알이 빗나갔다.
   큰 순록은 어깻죽지에 피를 흘리며 뒷발로 우뚝 섰다. 코우린이 당황하여 두 발째를 쏘았다. 또 빗나갔다. 순록의 등에서 살점이 튀었다.
   상처를 입은 순록은 도망가지 않았다. 그 뿐 아니라 오히려 코우린을 향하여 역습해 왔다.
  

14. 위험한 함정

  
   코우린이 위험하다!
   순록이 머리를 숙이고 돌진해 온다.
   젊은 병사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꼼짝도 못하고 서 있었다.
   짐은 숨을 크게 쉬었다.
   "코우린!"
   코우린이 겨우 반응을 일으켰다.―그와 동시에 순록이 달려들었다. 거대한 동물의 옆구리에 채여서 코우린은 얼음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총이 5, 6미터나 날아갔다.
   코우린은 일어나지 못했다. 쓰러질 때의 충격으로 기절한 것 같았다. 순록은 빙그레 방향을 돌더니 다시 돌진해 왔다.
   '코우린이 짓밟히고 말겠어.'
   짐은 총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총을 집어들려면 달려오는 순록과 코우린 사이에 몸을 던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위험한 일이다.
   짐은 엎드리며 뛰어들었다. 얼음 위에 있는 총에 손이 닿았다. 순록의 날카로운 발톱이 그 손 몇 센티미터 앞을 지나갔다.
   총을 잡은 짐은 몸을 일으키면서 무의식중에 방아쇠를 당겼다. 정말 눈 깜짝할 순간이었다. 탄환은 순록의 왼쪽 앞발을 관통했다. 순록의 돌진이 멈췄다.
   짐은 일어서면서 또 한 발을 쏘았다. 순록의 머리에서 피가 흩날렸다. 순록은 온몸을 뒤틀면서 쓰러지고 말았다. 짐은 총을 내려 놓고 코우린 곁으로 걸어갔다.
   코우린은 비틀거리며 일어나서 순록의 시체 옆으로 걸어갔다.
   "위험했었어."
   "상처는 어떠니?"
   "괜찮아. 네 덕분이야. 정말 위기 일발이었어. 오늘 밤은 재수가 좋았어."
   짐은 총을 돌려 주면서 말했다.
   "다음부터는 한 발에 쏘아 죽여."
   코우린은 총을 꽂으면서 언뜻 이상한 눈초리로 짐을 쳐다보았다.
  
   "너는 나를 살려 주었어. 총을 집으려다가 저 놈에게 밟혀 죽을 뻔했어. 그런데도 나를 도와 주었어. 왜 그런 위험한 짓을 했지?"
   짐은 그 질문에 대답하기가 난처했다.
   "왜라니? 이상한 질문을 하는구나. 네가 짓밟히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 안 그래? 순록은 돌진해 온다. 너는 쓰러진 채이고 총은 옆에 있다. 나는 그 총에 달려들어서 집어들고 쏜 것뿐이야."
   "그렇지만 너에게 내가 뭐 그렇게 소중한 사람이라고 자신의 생명까지 던져 가면서 나를 구해내는 거니?"
   코우린은 갈수록 알 수 없는 말만 했다.
   "너는 성격이 좀 비뚤어졌구나.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냐? 나는 최선을 다했을 뿐이야. 그런데 너는 내가 너를 살려 준 것이 마땅치 않은 것처럼 말하니……."
   "네가 바보일지도 몰라. 알겠다, 이제 이 이야기는 그만두자. 나를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 그건 그렇고 천막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을 데리고 오자. 이 큰 순록은 너무 커서 우리의 힘만으로는 가지고 갈 수 없어. 어때? 멋진 짐승이지! 오늘 밤에는 런던, 뉴우요오크의 연락 재개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순록 고기로 축하연을 열자! 내가 대위에게 전하겠어."
   천막으로 돌아가는 길에 코우린은 무엇인지 결심을 하는 듯했다. 짐의 생각엔 코우린이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을 애써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역시 너에게 이야기하는 게 좋겠어."
   "무엇을?"
   "너는 내 목숨을 구해 주었어. 나는 그 은혜를 갚아야 해. 터놓고 솔직히 말하겠어."
   "무슨 이야기인데. 어서 말해 봐, 코우린."
   코우린은 신고 있던 방한화를 내려다 보았다.
   "그럼 말할께. 실은 축하연 말인데……, 축하연이라고는 하지만 너희 5명에게는 불행한 축하연이야. 런던의 순찰대는 너희들을 사살하기로 되어 있어."
   짐은 눈이 동그래졌다.
   "뭐, 뭐라고?"
   이렇게 된 이상 모두 털어 놓을 수밖에 없다고 코우린은 생각했다.
   "너희는 침략자라는 거야. 즉 우리 런던 쪽에서는 뉴우요오크 원정대를 전혀 신용하지 않는다는 거지. 런던군 당국은 너희들을 전면적 침략작전의 선발대라고 생각하고 있어. 자기네들이 가지고 있는 원자연료가 바닥이 났기 때문에 그것을 노리고 런던에 오는 거라는 거야. 진짜로 그래? 나도 조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그렇지 않으면 수천 킬로미터가 넘는 험한 길을 헤쳐 올 이유가 없지 않겠니? 그래서 런던 원자력 발전소는 이미 긴급경계태세에 돌입했고 그와 동시에 뉴우요오크 원정대를 저지하기 위해서 우리들 순찰대가 파견된 거야. 그리고 너희들과 만나면 가급적 정보를 입수한 연후에……."
   코우린은 말끝을 흐렸다. 짐은 입술을 깨물었다.
   "연후에?"
   "……전원을 사살하라! 이런 명령이 떨어졌어."
   "거짓말!"
   "거짓말이라니? 우리는 뉴우요오크 원정대의 전장비를 빼앗아서 돌아가기로 되어 있어."
   "세상에 그럴 수가! 런던 놈들은 미치광이로구나. 침략 공포증에 걸려 있어. 우리는 두 도시의 연락재개를 꾀하기 위하여 온 거야. 전원 사살? 희롱하지 마!"
   짐은 화가 치밀었다. 코우린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미안하다. 지금까지 너에게 했던 질문도 모두 명령대로 한 거였어. 그러나 나는 목숨을 구해 준 너에게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었어."
   그 때였다. 코우린의 놀라운 이야기를 증명이나 하듯 먼 데서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와 총소리가 시끄럽게 들려 왔다.
   순찰대가 발포했다.
   '사살 명령이 내린 것일까? 큰일이다. 네 명의 동료가 1개 소대의 순찰대에게 총격을 받고 있다!'
   짐은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어떻게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회담 천막에서 1.5킬로미터나 떨어져 있고 몸에 지니고 있는 무기라고는 칼 한 자루뿐이다.
   "드디어 시작된 것 같구나."
   코우린이 중얼거렸다.
   "나는 가야 돼!"
   짐이 외쳤다.
   "그럼 너도 죽게 돼."
   "좋아. 동료들을 배신할 수는 없어. 싸우다가 죽을지언정!"
   짐이 행동을 개시했다. 그는 느닷없이 칼을 빼서 코우린에게 들이댔다.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코우린이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그의 등 뒤에서 팔로 목을 휘감아 조르고 목줄기에 칼을 댔다.
   "왜 이래? 어떻게 할 셈이야? 아까는 나를 구해 주고 이번에는 죽일 셈이냐?"
   코우린이 숨을 헐떡이며 외쳤다.
   "총을 내놔!"
   짐도 외쳤다.
   "좋을대로 해. 가져 가. 그런데 너는 나를 아직도 적으로 생각하니?"
   "그래. 내가 납득할 때까지는. 런던 놈들은 모두가 적이야!"
   짐은 코우린의 총을 뽑아 들고 생각했다. 코우린을 이 자리에서 사살하고 말까? 아니야. 그만두자. 그런 잔혹한 짓은 할 수 없어. 하여간 코우린은 비밀을 털어 놔 주지 않았나. 그런데 코우린은 적일까? 아니면 우리 편을 들어 줄까?
   코우린도 실은 난감했다. 짐이 손을 떼자 코우린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너와 행동을 함께 할 거야, 짐."
   짐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 말을 믿겠다. 이걸 받아라."
   짐은 자기 칼을 코우린의 발치에 던졌다. 그리고 총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회담 천막에 불이 붙어서 시뻘건 불기둥과 연기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때마침 서쪽에 있는 두 대의 썰매 뒤에서 녹색 섬광이 빛났다. 동료들이 열선을 발사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 현장에 다가가자 전투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뉴우요오크 원정대는 두 대의 썰매 뒤에 숨어 있었다. 그들을 향하여 순찰대원들이 얼음 위에 큰 활 모양을 그리며 흩어져서 격렬한 총격을 퍼붓고 있었다.
   짐은 눈 위에 엎드렸다.
   '순찰대의 뒤로 돌아가서 이 총의 실탄이 떨어질 때까지 저 놈들을 한 놈씩 쏘아 죽일까?'
   아니다. 그것은 안 될 일이다. 짐은 냉정히 생각하기 시작했다.―싸우고 죽이는 일은 어느 상황이든 옳은 행동이 아니다. 런던 쪽의 오해로 말미암아 인간의 피를 본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코우린이 짐 옆으로 와서 엎드렸다.
   "어리석은 짓이야. 전투를 중지시켜야 해."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코우린?"
   "당연하잖아. 이런 야만스런 방법으로는 아무 해결도 나지 않아. 어떻게든 중지시켜야 돼. 같은 인간끼리 싸워서 뭐하겠다는 거야? 우리들에게는 더 무서운 적이 있어, 짐."
  
   "공동의 적?"
   "그래. 그것은 얼음이야, 짐. 인류의 적은 이 얼음인 거야."
   "오우, 코우린. 다시 봐야겠다. 너는 역시 우리 편이었구나."
   "올렸다 내렸다 네 마음대로구나. 좋아, 그건 그렇고 저기를 봐! 너의 동료가 포로가 되었어."
   코우린의 말이 맞았다. 산병선(군인이 각자 흩어져서 공격 태세를 취하고 있는 위치) 후방에서 몇 명의 군인이 바안즈 박사와 텟드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짐은 가슴이 아팠다. 이렇게까지 사태가 악화된 이상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투를 중지시키고 두 사람을 구해야만 한다. 그리고 썰매 뒤에서 분투하고 있는 카알과 데이브도 구해야 한다.
   짐은 코우린에게 지시했다.
   "좋아. 너는 몬스클리이프 대위에게 가서 이야기해 줘. 나는 썰매 뒤에 있는 동료들에게 이야기해 볼께. 우리들이 각각 설득시키면 뭔가 될 거야."
   코우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몸을 일으켰다. 짐이 아군의 썰매 쪽으로 달리기 시작하자마자 한 순찰대원이 눈을 털며 일어섰다. 금발의 젊은 군인이었다. 열선에 맞은 듯 오른 쪽 얼굴이 꺼멓게 타 있었다. 제복도 엉망이었다.
   그 순간 짐과 금발 군인 사이에 한 사람이 뛰어들었다.
   "저 사람을 쏘지 마!"
   코우린이었다.
   놀란 금발의 군인은 몹시 당황해서 총을 든 채 소리를 질렀다.
   "비켜, 코우린! 너, 미쳤니?"
   "쏘지 말아 줘!"
   코우린은 애원했다.
   무참한 몰골이 된 군인은 자기 동료가 적을 보호하는 이유를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코우린을 무시하고 다시 짐을 겨냥했다.
   그러자 칼이 그 군인의 눈 앞에서 번쩍 날았다. 놀란 군인이 몸을 벌렁 젖히자 총성이 공중에서 울렸다.
   이 총소리에 짐이 뒤를 돌아보았다.
   코우린은 칼을 던진 손이 믿어지지 않는 듯 쳐다보더니, 짐을 향하여 얼굴을 찡그려 보였다. 그리고 순찰대의 산병선을 향하여 달려갔다.
   '아까 진 빚을 갚은 셈이군.'
   짐은 헐떡이며 아군의 썰매 뒤로 돌아갔다. 썰매와 평행이 되는 지점까지 다가가자 데이브와 카알이 열선발사기를 겨누고 있는 것이 보였다. 카알이 인기척이 나는 것을 알아차린 듯 얼른 열선발사기를 옆으로 돌렸다.
   "쏘지 마세요. 납니다."
   짐이 외쳤다.
   카알이 얼른 알아차리고 손짓을 했다. 짐은 20여 미터 전방에 있는 썰매를 향하여 기어갔다.
   피융! 피융!
   탄환이 계속 날아왔다. 짐은 정신없이 기어갔다. 8미터…… 5미터…… 3미터…….
   "어디 갔다가 온 거야!"
   카알이 버럭 화를 냈다.
   "미안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짐이 묻자 데이브가 설명했다.
   "박사님과 텟드가 천막 안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아무리 기다려도 회의는 끝이 나지 않잖아. 그런데 갑자기 두 사람이 밖으로 뛰어나오더니 순찰대원들에게 붙잡히고 만 거야. 두 사람이 포로로 잡힌 것을 알게 된 카알과 나는 당황해서 일단 이 곳으로 도망해 온 거지. 그리고 느닷없이 저 놈들이 총질을 해 온 거야. 알겠나? 이제 세 사람이 끝까지 싸우는 거야. 정신을 바짝 차려야 돼, 짐."
   "그렇게 되었군요.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싸워도 우리에게는 승산이 없어요."
   짐이 말했다.
   "죽기까지 싸우는 수밖에!"
   카알이 그렇게 말하고 열선발사기를 순찰대 쪽으로 겨냥하더니 보턴을 눌렀다. 녹색 열선이 번쩍였다.
   "어리석은 짓은 말아요. 죽어서 어쩌자는 겁니까? 서로 죽여서 무엇을 얻자는 겁니까?"
   "이것 봐, 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데이브가 말했다.
   "전투를 중지해야 합니다. 열선발사기를 썰매 앞에 던지는 겁니다."
   카알의 안색이 변했다.
   "머리가 돈 게 아닌가, 짐? 싸움을 중지하면 우리는 모두 죽게 돼!"
   "그렇지 않습니다. 이 싸움은 엉뚱한 오해에서 비롯된 겁니다. 상대방은 우리들을 침략군의 첩보대로 오해하고 있는 거예요. 나는 한 군인과 말을 하다가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지금 그 군인은 몬스클리이프 대위에게 전투 정지를 간곡히 권하고 있을 겁니다. 무모한 싸움입니다. 빨리 중지해야 돼요."
  
   "이렇게 당하고도 너는 적의 말을 믿는 거냐, 짐?"
   데이브가 화를 불끈 내며 물었다.
   "상대방을 믿느냐, 여기서 개죽음을 당하느냐 둘 중에 한 가지입니다 믿는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아니면 순찰대를 전멸시키느냐야. 그러면 적어도 우리는 살아 남게 돼."
   카알이 덧붙였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전멸되는 것은 우리 쪽이에요. 그걸 왜 모르십니까? 열선발사기의 파괴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어요. 곧 이 발사기도 무용지물이 되고 말 거예요. 제발 내 말을 들으세요."
   짐은 두 사람을 열심히 설득했다. 이미 전투를 더 계속할 상황은 아니었다. 데이브와 카알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열선발사기가 사용불능이 되면 매사가 끝장이다. 강력한 총으로 무장한 1개 소대의 순찰대에 비하여 단 두 자루의 칼과 한 자루의 총!
   "승산이 없는 싸움입니다. 싸움의 결과는 우리의 패배뿐이에요. 동료들의 회생을 무릅쓰고 우리는 너무나 어렵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빼앗긴 소중한 생명들을 생각해 보세요. 여기서 이대로 죽겠습니까? 그래서는 안 돼요. 쓸데없는 저항은 그만두고 코우린의 설득 공작을 믿어 보세요."
   데이브와 카알은 주저하다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짐은 손수건을 꺼내어 바리케이트 위에서 흔들며,
   "휴전! 전투중지를 요구하오!"
   라고 상대방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무기를 버려라!"
   순찰대에서 명령했다. 곧 총성이 멎었다.
   "그 열선발사기를 썰매 앞에 버려요."
   짐이 두 사람을 달랬다.
   카알과 데이브가 우물쭈물하면서 무기를 앞으로 내던졌다. 짐도 코우린에게서 빼앗은 총을 집어던졌다.
   싸움은 중단되었다.
   몇 명의 군인이 바안즈 박사와 텟드를 데리고 왔다. 뉴우요오크의 5명의 사나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짐은 아버지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하였다.
   몬스클리이프 대위가 허리에 찬 권총에 손을 대고 그들 쪽으로 걸어왔다. 바안즈 박사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는 무기를 버렸소. 그대도 버리시오. 무장을 모두 해제시키시오. 휴전은 공평해야 하오."
   대위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회색 눈동자가 빛났다.
   "우리는 휴전으로 생각지 않소. 그대들의 항복을 수락한 것이오. 그대들은 첩보대요. 언제 불온한 행동을 할지 알 수가 없소. 그러므로 우리 군대의 무장을 풀 수는 없소. 나는 뉴우요오크 원정대 전원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고 왔소. 지금 당장에라도 사살을 집행할 수도 있단 말이오."
   짐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우리를 죽여서 무엇을 얻겠단 말입니까? 우리가 첩보대라니요? 그런 엉뚱한 억측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단 다섯 명에 지나지 않아요. 그것도 군인이 아닙니다. 게다가 자기네 도시에서 쫓겨난 추방자들이에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첩보대로 몬단 말입니까? 당신들의 멋대로 하는 상상에 지나지 않아요……."
  
   대위는 쌀쌀하게 웃었다.
   "우리들의 오해일지도 모르지. 그렇다고 그대들을 어떻게 무조건 신용할 수 있겠나? 첩보대가 아니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어? 사전에 주의하는 것이 큰일을 막는 데 첫째 조건이야. 그대들 전원을 죽이는 편이 런던을 위해서는 안전……."
   대위의 말이 갑자기 끊어졌다. 하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왔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짐승의 신음소리처럼 작게 들려 왔다. 그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나중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 엄청나게 큰 괴성이 되었다.
  
   짐으로서는 짐작할 수 없는 커다란 소리였다.
   "저게 무슨 소리지?"
   런던과 뉴우요오크의 사나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고 쳐다보았다.
   청명한 하늘에 은빛의 괴상하게 생긴 커다란 새가 유유히 돌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독수리가 지상의 먹이에 덮치듯이 얼음 들판 위에 춤추며 내려왔다.
   눈부신 은빛 날개가 번쩍번쩍 빛났다. 짐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이상하다? 새가 태양광선을 반사할 리가 없는데……. 그리고 저 날개는 뒤로 제치고 있을 뿐 흔들지 않는군. 금속새? 저것은 분명히 갈매기 같은 새가 아니야. 인간이 만든 것이다. 비행기…….'
   마치 신화의 세계로 들어간 것 같았다. 아주 옛날 이 하늘에는 전세계를 10여 시간에 일주하는 거대한 비행기가 날았었다고 한다. 짐은 감격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비행기는 다시 기수를 곤두세우고 급상승하여 하늘을 한 바퀴 선회한 다음 남쪽으로 날아갔다. 폭음도 차츰 멀어져 갔다. 얼음 들판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들었다.
   짐은 동료들의 얼굴을 차례로 보다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비행기……. 아버지, 저게 비행기죠?"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짐. 분명히 비행기야. 그런데 어디서 왔을까? 다른 지하도시에도 비행기가 없을 텐데……. 아마 열대 지방의 나라에서 온 걸 거야. 이 빙하지대의 생물 상태를 조사하러 왔는지도 모르지. 그 기종은 지상정찰기였어."
   "정찰기? 혹시 어떤 나라의 첩보대일지도 모르겠네요?"
   짐이 물었다.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바안즈 박사가 말했다.
   코우린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다가 큰소리로 외쳤다.
   "그래, 간첩이다. 지금 왔었던 그 비행기야말로 진짜 간첩이다! 대장님, 아셨습니까? 그 비행기는 남방권 어느 나라에서 보낸 간첩이란 것을 모르시겠어요? 맞아요, 우리를 정찰하러 온 겁니다. 적은 런던 침공작전을 세우고 있는 거예요. 곧 사령부에 보고하세요. 우리들의 진짜 적은……."
  
   여기서 코우린은 잠깐 말을 끊고 짐을 쳐다보았다.
   "……이렇게 소규모의 뉴우요오크 원정대가 아닙니다. 남쪽에서 날아온 놈들입니다."
   몬스클리이프 대위는 턱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
   "네 말이 맞다. 코우린. 이 전투는 어리석은 짓이었어. 우리가 방어해야 할 것은 머리 위의 적이다. 나는 사령관에게 긴급보고를 해야겠다."
   대위는 짐을 돌아보았다.
   "자아, 우리 부대와 함께 런던으로 돌아갑시다. 뉴우요오크 원정대 제군!"
  

15. 첩보대는 귀찮다

  
  
   은빛 정찰기의 출현으로 사태는 급전하고 말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네 편, 내 편 하던 것이 지금은 함께 출발준비를 서두르게 되었다.
   "지금부터 런던에 귀환한다. 런던 순찰대, 뉴우요오크 원정대 순으로 즉시 출발!"
   몬스클리이프 대위가 명령을 내렸다.
   코우린은 뉴우요오크 원정대의 길 안내역으로 짐과 텟드의 썰매에 탔다. 바안즈 박사와 카알, 그리고 데이브도 다른 썰매에 올랐다.
   한 시간쯤 전진했을 때 국적불명의 수수께끼 정찰기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두어 번 선회하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도대체 어느 남쪽 나라에서 날아온 것일까?
   얼마 후에 썰매는 정지하고 야영 천막을 쳤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에 짐은 코우린의 뒤를 따라 런던 순찰대의 천막으로 들어갔다. 군인들이 무선기 주위에 모여 있었다.
   "이제 대장님이 사령관에게 보고할 거야."
   통신병이 말했다. 몬스클리이프 대위가 뚜벅뚜벅 천막 안으로 들어오더니 무선기 앞에 앉아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사실 그대로 보고했다.
   사령관의 겁먹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짐은 귀를 곤두세웠다.
   "알았어, 몬스클리이프. 국적불명의 비행기가 날아왔단 말이지. 보통 일이 아니군. 아마 대대적인 첨략작전의 정찰일 거야. 좋아, 즉시 긴급방위회의를 소집하겠네. 그리고 몬스클리이프. 자네 부대는 그 위치에서 그대로 대기하고 있게. 알았나? 명령이 있을 때까지 런던에 돌아오면 안 돼! 절대로 안 돼!"
   몬스클리이프 대위는 이제 와서 귀환하지 말라면 곤란하다고 항의했다. 그러나 사령관은 발작적으로 외쳐댔다.
   "돌아오면 안 돼, 몬스클리이프! 자네 부대가 돌아오면 적의 비행기가 따라오게 돼! 대위가 돼 가지고 그런 것도 모르나? 적을 이끌고 오는 것은 사양하겠어! 런던은 즉각적으로 터널 입구를 폐쇄한다. 자네의 부대는 그 장소에서 대기해. 알겠나?"
   대위는 한숨을 쉬면서 다시 항의했다.
   "사령관님. 런던 시장 각하를 만나게 해주십시오. 지금의 명령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나는 좀더 권위 있는 분에게 호소해야겠습니다. 본대는 식량, 장비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귀환을 못하면 얼마 안 가서 전멸하고 맙니다. 나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53명의 부하와 뉴우요오크 원정대 5명의 대원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사령관님, 듣고 계십니까?"
   짐은 지금까지 몬스클리이프 대위를 미워했으나 이제 이 사람을 다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뉴우요오크 원정대에 대한 불신도 자신의 뜻이 아니라 군인으로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령관의 대답이 들려 왔다.
   "듣고 있다, 몬스클리이프. 자네가 뭐라고 하든 명령은 명령이다. 비록 자네 부대가 전멸을 해도 하는 수 없어. 귀환은 할 수 없다. 전 런던 시민을 위해서 자네 부대가 희생하는 거야. 군인으로서 최대 명예가 아닌가. 이 곳으로 돌아오면 안 돼. 절대로 안 돼네. 그리고 앞으로 무선 연락도 하지 말도록. 적에게 도청되면 안 되니까. 알겠나?"
   "모를 일이군요. 그런 명령이 어디 있습니까? 시장 각하를 연결해 주십시오. 최고 명령권은 시장에게 있습니다. 내가 시장과 대화하는 것을 방해할 셈입니까? 그렇다면 중대한 책임 문제로 발전해도 좋다는 겁니까, 사령관님?"
   사령관 쪽에서는 침묵했다. 몬스클리이프 대위는 하는 수 없다며 천막에서 나가려고 했다. 그 때 무선기에서 잡음이 났다.
   "대장님! 기다리십시오. 시장 각하가 나왔습니다!"
   통신병이 외쳤다.
   잡음에 섞여서 힘찬 목소리가 들려 왔다. 100세 노인의 목소리 같지 않았다.
   몬스클리이프 대위는 런던의 최고 권력자에게 사정을 설명했다.―뉴우요오크 원정대는 첩보대가 아니라는 것, 괴비행기가 날아온 것, 런던 귀환을 일방적으로 거부당한 것 등등…….
  
   잠시 후에 시장의 회답이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잡음이 심하여 짐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윽고 대위가 얼굴을 들었다.
   "됐어. 이 엉터리 같은 드라마의 막이 내리게 됐어. 역시 시장 각하는 생각이 깊은 분이야. 본대의 귀환을 허락해 주었어. 터널 입구는 열려 있을 거야. 그렇지, 뉴우요오크의 제군들에게도……."
   몬스클리이프는 그렇게 말하고 짐을 향하여 한 쪽 눈을 감아 보였다.
   런던의 전 시민이 침략 공포증에 걸려 있던 것은 아니었다. 노시장과 같이 냉담한 사람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혹시 런던이 뉴우요오크 원정대에게 터널 입구를 열어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짐 일행은 빙설의 세계를 영원히 방황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다음 날 아침―.
   "지금부터 런던으로 귀환한다. 런던 순찰대, 뉴우요오크 원정대 순으로 즉시 출발!"
   몬스클리이프 대위가 어제와 똑같은 명령을 내렸다.
   매서운 추위가 몰아쳤다. 사나이들은 썰매 속에서 몸을 웅크렸다. 며칠이 지났다. 기후는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식품은 점점 줄어 갔고 런던은 아직도 멀었다…….
   5일째 되던 날 오후, 회색의 하늘에서 함박눈이 날리기 시작했다. 밤새 내린 눈은 날이 새자 썰매 위에 15센티미터나 쌓여 있었다. 텟드가 중얼거렸다.
   "좀 따뜻해질까 했는데 점점 추워지는군. 예상이 빗나갔어!"
   그리고 그 다음 날 오후, 흩날리는 눈발을 헤치며 가까스로 전진하고 있던 중 불행히 짐 등이 타고 있던 썰매는 다른 6대의 썰매를 잃고 말았다. 길 안내를 맡았던 코우린이 열심히 변명했다.
   "이런 눈 속에서 길을 잃는 거야 어쩔 수 없지. 나는 천리안이 아니니까……."
   세 사람은 썰매를 세우고 반 시간 이상이나 소리쳐 보았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나중에는 모두 목이 쉬고 말았다.
   "대답이 없군 어딘가 있기는 할 텐데."
   짐이 말했다.
   "눈이 멎으면 찾게 되겠지."
   텟드가 낙관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눈은 멎을 것 같지 않았다. 빙면에는 이미 50센티미터 이상이나 눈이 쌓였다. 썰매는 자석만 의지하고 동쪽으로 전진했다.
   게다가 며칠씩이나 태양이 나오지 않아서 예비 동력도 다 썼다. 이제 썰매는 눈 속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되고 말았다.
   세 사람은 천막을 치기는 했지만 그 안에서 잘 수는 없었다. 썰매가 눈 속에 깊이 파묻히는 것을 막기 위해서 밤새 제설작업을 해야 되었기 때문이다.
   진종일 눈은 계속 퍼부었다.
   짐은 미칠 것만 같았다. 이러다가 런던에 도착이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아버지와 카알, 데이브는 어찌 되었을까?
   썰매가 움직이지 못한 지 사흘만에 눈이 멎었다. 눈 경치는 솜사탕마냥 아름다왔지만 세 명의 미아는 그런 것에는 생각도 미치지 않았다. 아직 태양이 나오지 않아 썰매에 동력을 충전시키지도 못한 것이다.
   세 사람은 절망적이었다.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텟드가 코우린의 총을 들고 비틀거리며 사냥을 하러 나갔다. 그러나 두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멎었던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바람과 함께 몰아쳐 왔다. 짐은 눈을 움켜잡고 화를 부르르 냈다.
   "또 눈이 오는군!"
   "아니야. 내렸던 눈이 바람에 날리는 거야. 그런데 텟드 씨는 어떻게 된 거지?"
   코우린이 걱정했다.
   "돌아올 거야. 텟드 씨는 미아가 될 사람이 아니야."
  
   짐은 그렇게 말했지만 실은 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또 한 시간이 지났다. 짐은 점점 조바심이 나고 침울해졌다. 동료들이 차례로 떠난 것이다. 댐, 체트, 로이, 데이브, 카알, 아버지, 그리고 이번에는 텟드까지도. 코우린이라는 새 친구 외에는 아무도 없다.
   "야호우―."
   멀리서 사람 소리가 들려 왔다. 깜짝 놀란 짐과 코우린은 동시에 얼굴을 들었다.
   휘날리는 눈 속으로 텟드가 돌아오고 있었다. 그토록 남의 속을 태워 놓고 그는 나무 가지처럼 가느다란 들고양이 한 마리를 들고 왔다. 세 사람의 한 끼 식량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얼어붙은 이맛살을 펴면서 인디언의 후예 텟드는 말했다.
   "이 놈이 저녁 식사감이야."
   밤늦게 눈은 멎었다.
   다음 날 아침, 1주일만에 태양이 떠올랐다. 세 사람은 힘을 내어 태양전지에 충전을 하고 썰매를 전진시켰다. 그러나 그 날도 한나절이 채 안 되어 다시 눈이 내렸고 썰매는 또 멎었다.
   세 사람은 절망에 빠졌다. 식량도 떨어지고 사냥을 할 기력조차 없었다. 이제 여기서 이대로 굶어 죽는 수밖에 없는 것인가…….
   세 사람의 입에서는 한탄밖에 나오는 것이 없었다. 그들의 생각은 단 한 가지에 골몰했다.
   "끝까지 살아갈 수 있을까?"
   코우린이 절망적으로 말했다.
  
   "이제 막바지에서 패배를 한단 말이야?"
   텟드가 외쳤다.
   "현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어차피 우리는 눈 속에서 죽을 운명입니다. 쳇! 런던이고 뭐고 이제 다 끝났어."
   코우린이 푸념을 했다.
   "기다려. 어디엔가 길이 있겠지."
   짐은 그렇게 말했지만 그 역시 초조하게 절망하고 있었다.
   "길이 없다면?"
   코우린이 몸부림을 쳤다.
   "별 수 없이 굶어 죽어야지."
   짐이 말했다. 텟드가 힘빠진 목소리로 대꾸했다.
   "당장 굶어 죽겠어. 코우린의 말이 맞아. 우리는 어차피 끝장이야."
   "허약하게 당신까지도 그런 소리를 합니까? 정신차리세요, 텟드 씨!"
   짐이 격려했지만 소용 없었다. 텟드는 눈을 치켜 떴다. 흰자위만 보였다.
   "정신을 차리고 싶어도 배고픔은 이길 수가 없어. 짐, 현실은 너무 냉혹해."
   세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힘도 없거니와 헤어나지 못할 절망이 그들을 더욱 짓눌렀다. 짐이 겨우 입을 열었다.
   "어쨌든 우리는 최선을 다해 먼 길을 달려왔어. 그러니 이제는……."
  
   그 다음은 하느님의 뜻에 맡기자고 할 생각이었으나 말은 하지 않았다.
   눈이 멎었다. 태양은 구름 사이로 살짝 얼굴을 내밀었다.
   "동력 충전."
   쉰 목소리로 텟드가 외쳤으나 그것은 목소리뿐이었다. 동력이 끊어진 쪽은 인간이었다. 텟드와 코우린에게는 일어설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전진이다. 전진."
   짐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운전석에 올라갔다. 썰매는 눈길을 헤치고 2킬로미터 가까이 전진했다.
   텟드와 코우린은 배고픔과 추위에 지쳐서 썰매 바닥에 누워 있었다. 코우린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텟드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짐도 졸렸다. 이 설원 한복판에선 잠이 들게 되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어떻게 된다 해도 상관 없었다. 영원히 잠든다 해도 좋았다. 포근한 눈침대 속에 파고들어가서 잠만 자고 싶을 뿐이었다.
   그 때였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지만 무슨 소리가 들려 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몽롱한 의식 속에 동물의 울부짖는 음산한 소리……. 무슨 소리일까? 비행기의 폭음 같기도 하고……. 짐은 잠결에도 더럭 겁이 났다. 이곳에 은빛의 금속 날개를 가진 새가 날아올 리는 없지. 그래, 꿈이야. 꿈을 꾸고 있는 거야. 나는 지금 잠을 자고 있는 것이 분명해.
   모든 것이 꿈 속에서 일어나는 일인걸…….
  

16. 금빛깔 속의 기상

  
   짐은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딜까?
   눈도 얼음도 썰매도 없었다. 처음 보는 이상한 방이다. 높은 천정이 머리 위에 있었다. 새하얀 눈이 아니라 푹신푹신한 침대 속이었다.
   엷은 녹색 벽에 부드러운 햇살이 비치고―역시 눈과 얼음은 없었다. 이것은 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침대에서 일어났다. 낡은 방한복 대신 몸에 꼭 맞는 가운을 입고 있었다. 창가로 걸어가 보았다.
   짐은 몽유병 환자처럼 발코니에 나가서 난간을 붙잡았다. 마치 둥실둥실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섬뜩 현기증이 났다. 등줄기로 땀이 흘러내렸다. 지상까지 수직으로 150미터는 될 것 같았다. 여기가 어딘가.
   저 아래 도로에는 색색의 자동차가 달리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움직이는 점으로 보였다.
   차츰 의식이 돌아왔다. 하늘은 밝고 따뜻했다. 사방에 거대한 빌딩이 치솟아 있었다. 눈은 역시 없었다.
  
   그리고 그 강철과 플라스틱의 대도시는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빛나고 있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빌딩의 유리창이 한낮의 햇빛을 받아 거울처럼 반사하고 있었다.
  
   짐은 눈이 부셔서 방으로 돌아왔다. 문이 열리고 중년의 키가 작은 사나이가 들어왔다. 올리브 빛으로 그을은 얼굴에 검은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안녕, 짐?"
   "아, 안녕하십니까?"
   짐은 우물쭈물했다.
   "놀랐을 거야. 이 도시는 남아메리카 리오데자네이로야. 우리의 정찰기가 자네들을 발견하고 데려온 거지. 나는 칼바르호 박사라네."
  
   "남아메리카? 리오……? 그럼 영어로 이야기하나요?"
   칼바르호 박사는 활짝 미소를 띄었다.
   "그럼, 영어뿐만 아니라 우리는 몇 개 국의 국어를 함께 쓰고 있다네. 그런데 짐, 자네는 심한 동상에 걸렸기 때문에 발가락 두어 개를 잘라야 할지도 모른다고 의사가 말했었네. 그러나 이제 걱정할 것 없어. 절단하지 않고 치료가 끝났으니까. 하여간 자네는 줄곧 잠을 잤었어."
   "동료 두 사람이 있었을 텐데요?"
   "그 두 사람도 어제서야 눈을 떴어. 그리고 순조롭게 회복되고 있네. 만나러 갈까? 그리고 나서 리오의 거리도 구경하고."
   짐은 박사와 함께 방을 나와서 타일을 붙인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발광성 벽이 희미한 보라색 광선을 내고 있었다.
   "아래로!"
   박사가 한 마디 하자 엘리베이터는 조용히 내려갔다. 보라색 광선이 반응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야아, 짐, 너도 깼구나!"
   코우린이었다. 그도 가운을 입고 있었다. 그 뒤에서 텟드가 빙그레 웃으며 다가왔다. 두 사람 모두 혈색이 좋았다.
   그 방에서는 시가지가 잘 보였다. 햇볕에 그을어서 건강하게 보이는 시민들이 움직이는 보도에 올라타고 창 저쪽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리오데자네이로는 기적 위에 기적을 낳은 초미래의 도시처럼 보였다.
   그러나 짐은 어쩐지 불안하기만 했다.
   "왜 우리들이 리오에 오게 된 겁니까?"
  
   칼바르호 박사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이상한 질문을 하는군. 자네들은 눈 속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어. 죽는 것을 보고 그대로 놔둘 수는 없잖은가. 그리고 썰매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지하도시 사람이란 것은 금방 알 수 있었지. 나는 자네들이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길인지 알고 싶었다네. 그런데 그것은 이 두 사람에게서 이미 들었어. 런던 지하시민과 연락을 하기 위해서 뉴우요오크에서 출발했다는 것과 자네들이 상대방에게 크게 실망을 하게 되었다는 것 등. 정말로 어려운 여행이었던 것 같더군……."
   짐은 텟드와 코우린을 노려보았다.
   "두 사람 모두 입이 너무 가벼워. 쓸데없이 그런 이야기를 다 털어 놓을 게 뭐야!"
   코우린이 짐의 연막전술에 겁을 먹었다.
   "내가 잘못했나?"
   "잘못이고 말고. 속셈도 모르는 상대에게 비밀을 다 털어 놓다니."
   칼바르호 박사가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다른 뜻을 가지고 있지 않네. 자네들과 친해지고 싶을 뿐이야. 그런데 나를 의심하는구먼."
   코우린이 박사의 말에 동의를 표하며 짐을 나무랬다.
   "너는 우리 런던 사람들을 보고 의심 많은 놈이라고 하더니 너도 별 수 없구나."
   짐은 가만히 생각하니 그 말도 맞다고 생각되자 너털웃음을 웃었다. 사람을 무조건 믿지 않으려는 런던 시민의 나쁜 생각이 전염된 것인가. 의심처럼 상대방을 모욕하는 것이 없다.
   짐은 칼바르호 박사를 쳐다보며 화제를 바꾸었다.
   "우리는 일행이 많은 썰매부대였는데 눈 속에서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다른 썰매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다른 썰매들은 무사히 런던에 도착했네. 우리 정찰대가 확인했어."
   "정말입니까? 썰매에 타고 있는 전원이 무사합니까?"
   "그럼. 전원이 무사해. 도중에서 낙오된 사람은 자네들뿐이야."
   짐은 그 말을 듣자 안도의 긴 숨을 내뱉었다. 카알과 데이브와 아버지 등 세 사람, 그리고 순찰대원 전원이 런던에 도착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불안은 남아 있었다. 짐은 박사에게 다그쳐 물었다.
   "우리를 어떻게 할 셈입니까, 박사님?"
   "이것 봐, 짐 군. 그렇게 초조해 하지 말게. 우리 브라질은 자네네 나라 사람들을 돕기 위해 힘쓰고 있다네."
   박사가 조용히 대답했다.
   "300년 전, 빙하시대가 시작될 때에는 돕지 않았잖습니까? 그런데 왜 지금은 돕겠다는 거지요?"
   짐이 날카롭게 물었다.
   올리브 빛 피부의 박사는 아픈 곳을 꼬집힌 듯 계면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네. 우리는 그 당시 확실히 냉담했는지도 몰라.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어. 적도권에 있는 나라들은 얼음에 뒤덮인 나라의 원조 계획을 열심히 검토하고 있는 중일세. 정찰기를 띄운 것도 그 계획의 일부분일 것으로 생각하네. 우리는 북쪽 나라 사람들에게 보답을 해야 하니까. 알겠나? 얼음은 후퇴하고 있어. 지금은 대단치 않지만 장래에는 무척 빠른 속도로 후퇴할 거야. 세계는 머지 않아 분명히 본격적인 해빙기를 맞을 것이네. 우리는 자네네 나라 사람들이 다시 지상의 공기를 마실 수 있도록 전력으로 도울 계획이네."
  
   짐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잘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하시민들이 지상으로 나을 것 같습니까? 그들은 구멍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을 좋아한답니다."
  
   "생각을 고치게 되겠지. 지상의 인간이 들어가서 그들에게 태양과 지상의 진짜 공기가 얼마나 좋은가를 설득하면 그들도 생각을 바꾸게 될 거야."
   브라질의 박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구멍 속의 인간들은 모두 귀가 먹었어요!"
   짐이 성난 사람처럼 말했다. 칼바르호 박사는 짐과 코우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곧 깨닫게 될 거야. 아니 우리가 알려 줘야지. 어떤 가? 우리가 지하시민을 만나러 가세. 자네들 세 사람과 브라질 청년 한 명을 합쳐서 남방 제국의 특명대사단을 조직하는 거야. 나는 여태껏 빙하의 도시에서 누군가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러던 차에 자네들 세 사람을 만나게 된 거야. 한 번 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네. 어떤가? 우리가 지하시민들을 이끌어내지 않겠나? 해빙기가 다가오고 있네. 지금이 기회야. 도와 주지 않겠나? 자네가 결정만 하면 준비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대답을 하게."
  
   칼바르호 박사는 흥분해서 말했다. 그것은 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전의 남방 제국의 고립주의는 옛날 이야기가 되고 만 것 같았다. 그러면 국경지대의 경비대도 이미 철수했을 것이다.
   머지 않아 온 세계의 지하도시에서 수십 만, 수백 만의 인간들이 지상으로 올라오는 날이 찾아올 것이고, 남방 제국 사람들도 빙하에 덮였던 나라의 재건을 위해 도울 것이다. 상황은 이 만큼 변해 있었다.
   전세계의 지하도시 시민을 다 눈뜨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얼음에 뒤덮였던 운명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꼭 해야 할 일인 것이다.
   짐 일행은 우선 비행기를 타고 북쪽으로 간다. 그리고 첫 번째로 런던을 방문하여 세 명의 동료와 합류하고―멋진 재회의 날이 될 것이다.―그리고 온 세계의 지하도시를 순회하며 새날이 찾아온 것을 전해 주는 것이다!
   짐은 텟드, 코우린, 칼바르호 박사의 얼굴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하고 말고요!"
   눈과 얼음의 악몽 끝에 지금 이 남국의 따뜻한 햇빛 아래 눈을 뜨고 있는 것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꿈은 아니었다. 리오의 거리는 빛나고 있었고 따뜻한 태양도 현실이었다. 브라질 사람인 박사의 올리브 빛 얼굴도 검은 수염도 눈 앞에 모두 있었다.
   눈이 녹기 시작하고 있다. 기후뿐만 아니라 닫혀진 인간의 마음까지도…….
   칼바르호 박사가 말했다.
   "자네들에게 인터뷰를 청해 온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지금은 거절해 두세. 당분간은 충분한 휴식으로 체력을 회복해야 하니까. 그리고 모든 일은 그 후에 의논하기로 하세나……."
   "리오 시내 구경도 하고 싶은데요."
   짐은 기분이 상쾌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아무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눈과 얼음의 악몽이 사라지고 빛나는 태양이 있는 지상에서 숨쉬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앞으로는 얼음에 뒤덮인 세계를 구원할 사명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의기소침해지지 않는다. 짐은 어떠한 역경에도 견뎌내고 최선을 다해 목표를 향할 수 있는, 엄청난 시련을 겪은 경험자이기 때문이다.
   텟드가 말했다.
   "할 일이 많군."
   짐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작자와 작품에 대하여

   이 작품은 로버트 실버베르그가 1964년에 쓴 작품으로 원제명은 《대동결의 시대》(Time of the Great Freeze)이다.
   실버베르그는 뉴우요오크 태생으로 콜롬비아 대학 재학시부터 줄곧 작품 활동을 해왔다. 아직 30대로서 그의 저서는 이미 200권에 이르며, 클라아크, 하인라인, 라인스터 등의 대가에 이어 현대 미국 SF계의 중견작가로 주목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지리, 역사, 고고학 분야에서 논픽션 작가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다. 특히 멸망된 고대문명의 재발견에 대하여 쓴 작품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최근에는 《밤의 날개》라는 성인용 SF 중편 소설로 1969년도 휴우고 상을 수상한 바도 있다. 소년 SF 작품으로는 본 작품 외에 《제4 혹성의 반란》,《화성의 잃어버린 민족》등 10여 편이 있다.
   이 작품은 제5빙기의 최성기에 북아메리카와 유럽 대륙 사이를 횡단하는, 용감한 사람들의 모
   험을 그린 것이다.
   실버베르그의 작품은 마무리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경향이 있다고들 한다. 이 작품도 어느 정도 그런 경향이 있다고 하겠다.
   소년 짐이 망망한 빙원에서 겪는 갖가지 사건이라든가, 젊은 군인 코우린과의 대화 등, 나름대로 박력도 있고 유우머도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빙기라고 하는 가상적 미래의 한 시기를 설정했다면, 한 가지 더 파헤쳐 보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자연과 인간과의 숙명적 싸움이라든가, 과거 수십 억 년 동안 반복해 온 무서운 빙하기의 수수께끼 등, 그런 배경도 손을 대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욕심도 없지 않다.
   SF의 묘미는 끝없이 펼쳐지는 과학적 공상에 있다고 하겠다. 지구 창조의 혼란했던 시대에, 거대한 공룡, 프론트자우르스가 어슬렁거리며 걸어 다니는 백악기에, 끝없는 미래의 빙하 시대에, 태양이 사멸한 500억년 후의 얼어붙은 세계에……, 공상을 달리게 할
  
  
   때 우리들의 가슴은 두근거린다.
   그런 점에서 실버베르그의 공상력은 대단한 것이다. 서기 2600년대의 한 시기에 멀리 초점을 맞추어 북반구를 완전히 얼게 만들어 놓았으니 말이다.
   지질학상으로 보면 현재 이 시대는 이른바 빙기의 휴식시간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이미 제5빙기의 첨병이 슬슬 닥쳐오고 있는 게 아닐까?'라든가, '빙하시대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걱정할 것은 없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동안에는 얼음이 뒤덮여 올 염려는 절대로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빙하기 초인지 아닌지는 수천 년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얼음에 대처하게 되는 것은 우리들의 자손, 그리고 또 그 자손이 해야 할 일인 것이
   다.
   또한 그 무렵이 되면 인간의 지혜나 문명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발전되어, 인공적으로 빙기의 주기를 바꾸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초고열 원자로를 사용하여 양 극의 얼음을 녹이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그 뿐만 아니라 최고도로 발달된 공업으로 인해 방대한 양의 탄산가스가 대기 속에 함유되어 온도가 올라가서 빙기가 사라지고 마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오히려 녹은 빙하로 해면이 100미터 정도나 상승함으로써 인간은 그 쪽에 대책을 세우느라 급급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아무튼 작자의 의도는 얼음에 덮인 세계 속에게 강하게 싸워가는 용감한 인간의 군상을 그리는 데 있다고 하겠다.
  
  
   * 어린이를 위한 세계SF·추리문학 전12권
  
   1983년 5월 30일 인쇄
   1983년 6월 10일 발행
   발 행 인 고 석 봉
   발 행 소 서 영 출 판 사
   원색분해 삼 보 원 색 사
   사진제판 이 화 원 색 사
  
   서울특별시 중구 저동2가 47의11
   전화 265-0451, 269-3371·8658
   등록 1976. 8. 12 No. 2-358호
   정가〔전12권〕48,000원
  
   * 잘못된 책은 교환해 드립니다.